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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ug 08. 2019

튀김도 급이 있다(1) Since1983_명동돈가스

튀김도 급이 있다_Since1983 명동돈가스



돈까스에 대한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다이어트를 하는 시점에선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이야기다. 

원초적인 맛. 


고기를 튀겼는데 어떻게 맛이 없을 수가 있으며 거기에 진한 소스를 뿌리고 동그랗게 접시에 담아낸 밥이나 딸기잼을 곁들인 모닝빵까지 나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정갈히 담아낸 돈까스와 비후까스(비프가스로 발음하지 않아야 한다)를 마주하면 나는 1990년대로 돌아간다.

1990년대, 동네에는 2층에 경양식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무려 ‘레옹’ -영화를 감명 깊게 봤을 레옹 사장님의 가게 이름 선정은 그 후로도 10여 년이 지나 영화를 보고 의미를 깨닫게 되었지만-그 시대 어린이들이 다 그렇듯 레옹에 밥을 먹으러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딸의 그림 전시회에 초대받은 아빠가 액자 위에 붙여준 빨간 장미 한 송이, 그 장미를 들고 아빠와 밥을 먹으러 가는 딸. 


레옹에서 나오던 강낭콩과 마카로니, 돈까스가 그 시절의 기억이다.     

그 뒤 돈까스에 대한 기억은 목욕탕 갔다가, 초등학교 때 친구 생일 파티에, 도시락에 나오던케첩 뿌린 냉동 꼬마돈까스로 이어진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서울 돈까스집을 줄줄 꿰는 사람이 됐다. 서울에 돈까스집 참 많다. 물론 단골로 다니는 집도 두 세 군데 있다. 

인도 카레와 일본식 카레라이스가 다른 음식으로 인식되듯, 일본식 돈까스와 경양식 돈까스는 내게 다른 음식이다. 오늘은 일본식 돈까스 이야기니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2.

돈까스는 편의점 도시락부터 돈가스의 원조라는 긴자의 렌카테이까지 골고루 섭렵했으니 그래도 어디 가서 돈까스 좀 먹어 봤다고 어디 가서 참견은 할 수 있겠다. 


돈까스 좀 먹어본 자에게도 명동돈가스는 색다르다. 나오는 음식이 ‘저 세상 요리’처럼 눈이 튀어나오게 색다르지는 않지만, 수십 년간 이 맛을 이어오며 만들어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남다르다.


명동돈가스는 실제로 일본 돈까스 가게에서 레시피를 전수받아 탄생한 돈까스고, 내용물도 전형적인 일본식 돈까스 비주얼이지만 메뉴판 사이에 적힌 코돈부르는 ‘저는 명동 출신 돈까스에요’라고 존재를 알린다. 

코돈부르는 한 입 머금으면 꽤 다양한 맛이 난다. 좋게 말하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피자 맛과도 비슷한 맛이다. 밥을 같이 먹는 게 특이하지만.  



3.

 2016년 명동돈까스가 공사에 들어갈 때, ‘뭐, 돈까스야 어디든 먹을 수 있는 거니까. 대체제도 많고’라며 느긋하게 먹었던 마음이 일 년이 지나자 슬슬 초조해졌다.      


‘저놈의 가게는 언제 공사가 끝나는 거야?’


먹을 것 없는 명동 거리에서 꾸역꾸역 걸음을 옮겨 을지로로, 종로로 향하던 것이 몇 번이었던지. 돈까스 생각을 하다가도 중국 음식을, 국밥을, 갈비를 뜯었더란다.     


그리고 어느 날, 명동돈가스는 공사가 끝났고 나는 C와 명동 거리에 서 있었다.

밥을 안 먹으면 어지러워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새로운 가게를 좋아하는 C와 함께이지만, 이럴 땐 둘 다 입을 맞춘 듯 도전 대신 익숙한 가게를 찾는다.


공사가 끝난 명동돈가스는 옛날 느낌이 나는 듯 안 나는 듯 미묘하게 바뀌었다.      

디귿 자 다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새롭게 바뀐 메뉴판을 본다. 


멍하니 접시에 양배추가 쌓이고 핑크빛 고기가 돈까스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히레가스를 주문한다. 눈앞에서 음식이 조리되는 것을 보는 일은 항상 즐겁다. 시각과 후각에 ‘과정’이라는 조미료가 추가된다.     

 

소금을 조금 청해 돈까스에 찍는다. 고기와 육즙이 내는 원초적인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튀김옷이 분리되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갓 튀긴 고기의 맛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양배추에 돈까스 소스를 뿌리고 된장국을 한 입 먹고 돈까스에도 소스를 뿌린다.

몇 입 먹다 겨자를 곁들인다. 기름으로 둔해진 입에 악센트가 된다. 일련의 반복 행동 속에서 음식만이 줄 수 있는 충실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여행을 떠났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 들어선 기분처럼, 익숙한 맛에서 오는 기분 좋음을 만끽한다.

가게의 메뉴판은 새 걸로 바뀌었지만 음식은 예전 그대로다. 나는 그 점에 안도한다.              





*‘명동돈가스’는 상호이기에 그대로 표기했으나, ‘돈가스’는 ‘돈까스’가 맞다고 생각하기에 표기를 살렸습니다.


튀김도 급이 있(2)는 

사랑하는 경양식 돈까스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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