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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20. 2018

그곳에 있었다,
털보스테이크_Since1968

오래된 것은 맛있다 

그곳에 있었다_털보스테이크 Since1968

숙대입구역 사거리 한솥도시락과 닭꼬치 가게를 끼고 돌면 골목 하나가 펼쳐진다. 미군부대와 음식점, 러브호텔과 사무실이 혼재된 희한한 동네, 행정구역으론 남영동. 이들이 있다. 나름의 상호도 있다. ‘스테이크.’     


잠깐, 스테이크? 


아웃백이나 빕스와도 이백만 년은 떨어져 있을만한 이 골목에 어울리는 메뉴가 아닌 것 같다. 골목에 어울리는 적절한 분위기라면 ‘엄마손 백반’이라던가 ‘정림식당’ 간판이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토요일 점심의 나는 한량처럼, 혹은 먹이를 찾는 고양이처럼 슬렁슬렁 골목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공들여 스캔하며 가게를 찾는다. 아뿔싸. 오늘은 다 쉬는 날이네. 미리 찾아보고 오지 않은 못된 습관이 문제다. 

아쉬운 입맛을 다시다 유일하게 문을 연 곳으로 들어갔다. 식사 후 나쁘지는 않았으나 결코 좋지도 않았다는 감상만이 남았다(나중에 알게 되었으나 제일 별로인 집이었다).     



짠 듯이 같고 또 다른 골목 속 가게들 

그 뒤로도 가끔 이 동네 스테이크… 아니지, 부대찌개 투어를 했다. 부대찌개 민치(고기다짐)를 한우로 쓴다는 노부부가 하는 골목 안의 스테이크집도, 짠맛과 매운맛의 조화가 매력적이던 스테이크집도 다녔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던 그 집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 


무심히 놓이는 부추무침과 메추리알 장조림, 먹고 난 뒤에 주는 야쿠르트는 서로 짠 듯이 같았지만 부대찌개 자체에 서로의 개성이 살아있어 갈 때마다 즐거웠다.            


어느 날인가. 4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온 C와-서울 맛집 DB가 나보다 몇 수 위인- 이 골목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C는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남영 그 골목 스테이크집 얘기를 꺼냈다. 

상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맛있게 먹은 스테이크와 부대찌개 국물 맛은 기억한다는 그녀의 얘기에 그 집이 궁금해졌다. 대체 그 골목 어느 집인가! 이 동네는 다들 기본 40년은 깔고 가는 곳이라고!      



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몇 번의 문답이 이어진 뒤 추정되는 가게를 찾았다. C는 물론 일행을 꾸려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청운동에서 숙대 앞까지 1711번을 타고 구복만두 골목을 돌고돌아 털보 스테이크 앞에 섰다. 

사실 맛보다 C의 기억 속 가게가 맞는지가 더 궁금했다. 일단 스테이크. 알루미늄 호일 위에 버터를 바르고, 깍둑 썬 쇠고기와 베이컨, ‘미제 소시지’와 가지 등이 올라가 익어간다. 여기에 소스를 좀 뿌리고 익힌다. 소스와 고기가 어우러진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당긴다.

소주가 한 순배 돌고 스테이크가 익었다. 마요네즈에 버무린 양배추와 부추무침, 고기가 한 입에 들어간다. 한식인지 양식인지를 따질 겨를도 필요도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음식의 국적보다 맛이 우선하는 이 절대적인 순간이 즐겁다. 돼지고기 베이컨으로 쇠고기를 싸먹는 흉악한(?)짓도 이곳에선 용서가 된다. 


네 명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베이컨을 찾는다. 얇게 썰려 감자와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 베이컨은 그야말로 원초적인 고기 맛이다. 부대찌개를 또 안 먹을 수가 없지. 곧 빨갛게 끓여진 부대찌개에 라면사리가 곱게 얹혀 나온다. 살짝 불은 듯 라면사리와 튤립햄, 콘킹 소시지를 찾는다. 


부대찌개 밑에 깔린 ‘민찌가 콘비프냐 그냥 고기 다짐이냐’면서 한바탕 논쟁이 붙는다. 여기 소시지가 제대로 된 소시지라며, 부대찌개 맛은 역시 햄 맛이지 하는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진다.    

 






형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오래된 가게답게 지금은 노인이 되었을 ‘털보 스테이크의 젊은 털보 아저씨’사진과 지금은 이름도 잘 모를 연예인들의 사인, 신문기사 따위가 벽에 코팅되어 붙어있다. C는 몇 십 년 전 아버지와의 기억을 되살리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린다. K는 부지런히 베이컨 한 입,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 D는 국물을 연신 떠먹는다. 


안에는 미군부대 옆 부대찌개집답게 깡통 햄과 머스타드 소스가 매실주 병과 진열돼 있다. 새로 나온 맥주광고 포스터와 오래된 기사 쪼가리가 대비되며 가게의 세월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부대찌개가 ‘동탄식’과 ‘의정부식’이 있던, ‘숙대앞 스타일’이 있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육수를 뭘 쓰던 햄과 고기를 뭘 넣던. 

이미 부대찌개는 짜장면처럼 현대 한국인의 입맛에 깊이 파고든 메뉴가 아닌가! 


갑자기 C의 목소리가 커진다. 


“잠깐, 여기 베이컨 있었어?”     


다들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베이컨 지금 저 고기에 싸먹고 있었잖아요 누나, 베이컨 못 먹었어요?”     


“난 아예 베이컨이 있는 줄도 몰랐단 말이야! 하나 더 시켜!”     


사건은 이랬다. 쇠고기와 야채, 부대찌개에 정신이 팔린 C는 얇게 썰려 숨어있던 베이컨을 못 본 것이었다. 남들이 바쁘게 베이컨을 먼저 없앤 것도, 술과 이어진 수다도 C의 망각에 한 몫을 했다. 

베이컨을 추가로 주문 하느냐, 소시지를 추가하느냐의 기로에서 넷은 고민한다. 뭔가 아쉽다며 소시지로 의견이 모인다. 다시 아주머니는 소시지 한 접시를 가져온다. 미제 소시지라며 잔뜩 강조된 소시지는 삼겹살만큼의 몸값을 받고 호일 위에서 구른다. 젓가락은 또 바쁘다. 이날 C는 베이컨을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이렇게 정신없는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러온다. 들어갈 때 지고 있었던 해는 흔적도 없이 주변은 깜깜해졌다.      


C에게 물었다. “아빠랑 같이 오던 데 맞으세요?”     




기억 속 그 가게는 그곳에 있었다.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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