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초기투자를 받아보자(하)

오만한 년이 쓴맛을 보다

by 미미

당시는 2022년, 거짓말처럼 한 AC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다고?

그동안 스팸메일 급으로 뿌려대던 IR 덱의 최최최최최_최종이 드디어 먹힌 건가. 투자사가 있던 대전까지 A와 나는 당장이라도 KTX를 타고 뛰어갈 기세였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였던지라, 결국 화상미팅으로 진행했다.


컴퓨터 앞이었지만 웹캠 앞에 최대한 차려 입고,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하나 고민하며 줌을 실행했다. 화면 속 내 얼굴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한 티가 났다. A와는 미팅 직전까지도 “이거 질문 나오면 이렇게 말하자” 같은 시뮬레이션을 수십 번이나 돌렸고, 나는 머릿속으로 IR을 다시 한 번 빠르게 재생해봤다.


그리고 그렇게 줄줄 외우던 IR 자료를 읊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왔다. 누가 중간에 건드리기만 하면 끝까지 재생되는 녹음기처럼.


그때 그 투자사 팀장님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업 어떻게 하실 거에요?”


순간 머릿속이 잠깐 비었다. 우리는 그 말에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할 거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말 대잔치’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온라인도 하고, 제휴도 하고, 네트워크도 활용하고…


그리고 미팅은 끝났다. 마음 속에서는 억겁같았던 시간이 지나갔고, 곧 친절한 거절 메일이 도착했다.

늘 그렇듯 정중했고, 늘 그렇듯 명확했다. 사실 일을 감정으로 대하면 안된다 했는데, 마상은 어쩔 수 없었다. 거절 메일에 대고 '왜 안 됐냐'라고 묻는데도 역시 영업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뒤 또 한 AC에서 연락이 왔다. 이 투자사도 꽤 기묘했다. 원래는 VC만 할 예정이라 AC 면허를 반납할 계획인데, 우연히 우리의 스팸메일(?)을 봤고. 본인들과 연계된 복지몰 기업에서 우리의 BM에 (당시 우리의 BM은 복지몰이었다) 관심이 있다고, 한 번 만나보자는 이야기였다.


이 기업은 우리처럼 ‘아이디어’로 준비하는 팀이 아니라, 이미 연매출이 천억 원 단위로 돌아가는 큰 복지몰이었다. 뭐랄까, ‘데려가 주세요’라고 적힌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와, 번쩍번쩍한 새 건물의 차이랄까. 나는 그 번쩍한 건물 앞에 서 있는 고양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 대표께서는 IR을 들은 후(이 시기쯤 되니 정말 찌르면 자동 재생이 됐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지분투자 대신, 이 회사에 출퇴근을 하면서 개발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공간은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잠깐 흔들리기도 했다. 유저가 확보돼 있으니 이게 더 빠른 길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결국 우리가 하나의 독립된 회사가 아니라, 그 복지몰 안에 들어가는 ‘상품팀’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조직생활을 포기하고 꿈을 꾸고 있는데, 어느 회사에 그렇게 들어가는건 옳지 않다 싶었다. 우리는 결국 그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스포일러 : 이 기업과는 그 다음 접점이 우연히 또 생긴다


그 뒤에도 몇몇 투자사들과 비슷한 피칭 기회가 이어졌다. 어디는 분위기가 좋았고, 어디는 질문이 날카로웠고, 어디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마지막 시드투자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양한 투자사에서 운영하는 배치 프로그램도 지원해봤다. 경쟁률이 100:1이라는 둥, 메일에는 늘 거창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1차 합격입니다.’ 이 문장 하나에 심장이 괜히 빨라졌다.

‘발표하러 오세요.’ 이 말 한마디에, 마치 이미 절반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마지막에서 멈췄다.


여튼 노력은 무지하게 한 것 같았다. 근데 결과는 늘 같았다. 항상 마지막 단계에서 물을 먹었다.

스포일러: 지금은 그들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알겠다.


나는 그 사이 벌어둔 것들과, 이런저런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프리랜서 일을 하며 밥벌이를 이어갔다.

(심지어 이 시기에 미뤄둔 졸업논문이 한 번 엎어지기도 했다)

낮에는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밤에는 우리 사업을 고민했다. 가끔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돈을 버는 일과, 돈을 못 버는 일을 동시에 붙잡고 있는 느낌. 경력이 이 바닥에선 나쁘지 않으니 어디 에이전시라도 들어가면 편히 살텐데.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게 우리 BM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 능력의 문제인지. 둘 다면 더 최악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이런 고민을 조심스럽게 꺼내면, 주변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이 사업 알아봐 줄 투자사 한 군데만 있으면 된다.”
“눈먼 돈 많다.”

"스타트업은 어차피 열 군데 투자해서 하나만 터지면 되는 거다. 다른 거는 안돼도 되는 거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계속 다른 생각이 돌았다. 그럼 그 ‘한 군데’는 도대체 어디 있는데. 그런데 왜 나는 안돼?????????????????????????????????????????????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저 물음표 개수만큼 답답했다.


이렇게 2022년이 지나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긋지긋한 코로나와 그보다 더 지긋지긋한 꿈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나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아 그냥 어디 회사 들어가면, 따박따박 월급이라도 나왔을 텐데.'

'인형 눈깔이나 붙일까?'


가끔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 운세는 2022년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사업이라는 걸 왜 하는지, 내가 꾸는 꿈의 방향이 맞는 건지.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계속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이 와중에도 취미에 매달렸다.

무언가를 만들고, 쓰고, 손을 움직이면 그 순간만큼은 이런 생각들이 잠깐씩 멈췄다. 그래서 더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뒤, 2023년에 작은 이벤트가 일어났다.

매거진의 이전글스타트업 초기투자를 받아보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