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렇듯이,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누구는 IR을 돌고, 누구는 벌어둔 돈을 그대로 사업에 넣고, 누구는 배치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누구는 정부사업을 알아보고, 누구는 엔젤투자를 받고, 누구는 사내벤처로 시작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길이 많았다. 문제는 그 길들이 '다 남의 길' 같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IR을 도는 동시에 정부의 창업지원사업에도 도전했다. 개인적으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과 협업해 여러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었고, 당시에는 IR 자료도 거의 찌르면 나오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사업계획서 양식에 맞게 짜임새 있게 옮기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현실은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 거에 집요함이란 정말 대단해서, 사업계획서 버전은 또다시 최종, 최최종 같은 이름으로 저장되기 시작했다. 지금 보면 파일명만으로도 정신 상태가 보인다.
그때는 창업지원사업이라는 걸 공고를 아무리 읽어도 도통 감이 안 잡혔다. 무슨 말을 원하는 건지,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대체 어떤 사람이 붙는 건지. 주변에 실제로 붙은 사람도 없었다. A와 나 둘 다 그런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으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불안했고, 불안하니 더 집착했다.
그래서 별걸 다 했다. 마포구에서 한다는 사업계획서 쓰는 강의도 들어보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만나봤다. 그런 자리에 가면 늘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같았다.
누구는 이미 특허나 시제품이 있었고, 누구는 공동창업자가 셋이었고, 누구는 무슨 연구실에서 기술이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구는 벌써 매출이 조금씩 나온다고 했다. 나는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으면서도 괜히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더 답답해졌다.
서류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슨 서류를 이렇게까지 떼야 하나 싶을 정도로, 온갖 행정기관을 돌며 서류를 준비했다. 체감상 거의 열 개는 받은 것 같다. 사업계획서 하나 잘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등본이니 사실증명원이니 뭐니,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서류들이 끝도 없이 붙었다.
당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사업은 당시 대학원생이었기에 대학발 초기창업(재학생)도 넣고, 청년창업사관학교도 넣고, 우리 비즈니스에 관광업이 조금이라도 걸쳐 있었기에 관광벤처도 넣고, 예비창업패키지도 넣고, 하여튼 넣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넣었다. 다행히 사업계획서 포맷은 대동소이해서 지원 자체가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지원만 그랬다. 붙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원아웃, 투아웃, 삼진 아웃.
정말 보기 좋게 줄줄이 물을 먹었다.
기분이 참 거지 같았다. IR도 계속 물 먹더니 이것도 실패의 연속이구나 싶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어디 가서 떠들어놓은 꿈은 많고, 정작 손에 잡히는 결과는 하나도 없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계속 안 되는 상태. 그게 사람을 제일 이상하게 만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개 이런 창업 프로그램 지원에는 MVP와 어느 정도의 유저를 확보한 상태에서 들어가야 좀 더 유리했다. 아니면 국가에서 당시 밀어주던 산업 분야, 그러니까 코로나 시기였으니 바이오나 헬스테크 같은 쪽에 가깝거나, 적어도 특허쯤은 가진 이공계 출신이거나, 아니면 제조업을 명확하게 할 생각과 설비 정도는 있어야 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당연한 말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아직 플랫폼도 없던 단계의 우리 비즈니스는 아무리 계획을 거창하게 써도 물을 먹는 게 거의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미래를 팔기에는 아직 현재가 너무 비어 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발표일이 다가오면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주 깼다. 이번엔 되지 않을까, 이번엔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어딘가엔 늘 있었다. 그날도 비슷했다.
기억으로는 발표한다고 말한 날짜보다 결과 발표가 조금 지연됐던 것 같고, 그 며칠 동안은 하루하루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메일함만 들여다봤다. 스팸메일은 왜 그렇게 성실하게 오는지. 아무 쓸모도 없는 광고 메일들 사이에서, 어느 날 모바일로 확인한 메일함에 새로운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1차 서류 통과. 발표하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기분은 좋았다. 무지하게 좋았다. 그런데 기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배치 프로그램 때도 비슷한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그들 피셜로)백 대 일을 뚫었다고 해서 최종 선정이 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머리로, 몸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은 몇 번 비슷하게 데이면 기뻐하는 일에도 브레이크를 건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아니다’라는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정말 전력으로 PPT 준비에 매달렸다. 정해진 포맷과 분량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업계획을 보기 좋게 옮기는 데 주력했다.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지, 어느 문장을 첫 줄에 놓을지, 숫자를 어떻게 보여줄지, 이 도표가 더 나은지 저 문장이 더 나은지. 그때도 제안 PPT는 꽤 많이 만들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때만큼 절박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이거 하나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발표 당일, 가장 좋은 옷을 입고 A와 청계천 관광공사 빌딩 앞에서 만났다. 그날 건물 앞 공기가 어땠는지, 내가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A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희미한데, 이상하게도 그 건물 앞에 서 있었을 때의 심장 소리는 아직도 기억난다. 발표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괜히 멀쩡한 척했다. 별거 아니라는 얼굴, 늘 하던 거라는 얼굴. 사람이 너무 떨리면 오히려 무표정해진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하지만 표정만은 최대한 무표정하게 PPT 발표를 마치고 나왔다(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비슷한 기분이 든다).
사실 그 자리에서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질문에 뭐라고 답했는지도 흐릿하다. 그냥 절박했고, 간절했다.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왜 우리여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그때의 나는 머리로 설명했다기보다 거의 마음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준비한 문장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안 된 시간들을 통째로 들고 가서 쏟아놓은 느낌에 가까웠다.
이후에는 관광공사 게시판을 매일 들여다 보는 게 일이었다. 최종 선정자 명단이 떴다.
노트북을 찾아다 Ctrl+F를 눌러 내 휴대전화 뒷자리 번호를 계속 찾았다.
어? 있네?
확인하고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짜인가 싶어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오타가 있나,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이름이 다른 사람 이름은 아닌가.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1년 가까이 꿈만 꾸던 일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