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찍어 넘어간 나무 있다?

오만한 년의 창업기

by 미미

우리가 관광벤처 예비창업에 선정됐단 연락은

기쁘기보다는 정말 신기했다. 우리 사업계획서가 정말 선정됐다고?


몇십 대 일의 경쟁률? 알 바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거절 뒤에 이어진 이벤트라 감격보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메일을 몇 번이나 다시 열어봤다. 내가 뭘 잘못 본 건 아닌지, 혹시 아래쪽에 ‘죄송합니다’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그쯤 되면 기쁨도 바로 오지 않는다. 사람은 너무 많이 까이면 좋은 소식 앞에서도 한 번쯤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때 투자사들이 하던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MVP 만들어 오세요.”

말은 쉽다.

근데 대체 기업 복지서비스의 MVP는 어떻게 만드는 건데요. 제조업이면 샘플을 만들고 B2C면 뭐라도 해봤겠는데. 우리 서비스는 BM자체가 MVP를 만들 방도를 몰랐다.라면도 아니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3분 뒤에 나오는 게 아닌데. 머리가 좋지 못한 우리는 그걸 축약형으로 구현하는 법을 끝내 잘 모르겠더라. 결국 플랫폼을 만들고, 부딪혀 보고, 깨져 보고, 다시 고치는 것 외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그리고 최종선정협약 후 (내 인생)두 번째 법인을 만들었다.

창업을 하다 보면 회사를 키우는 건지, 서류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다 보니, 서비스를 개발하려면 개발사가 필요했다.


문제는 그걸 어디서 구하느냐였다.

위시캣(말도 안되는 견적을 디민 업체들 잊지 못한다)부터 몇 군데를 컨택해 봤으나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아주 상세한 기획안을 디밀었는데, 처음엔 적은 금액이길래 오프라인 미팅 했더니 두 배를 부르더라. 우리는 주변의 수많은 공대 출신들에게 거의 다단계 연락을 돌렸다.

“자니?”
“니네 혹시 웹 개발 하니?”
“아니, 우리 포인트 운용해야돼서 아임웹 못쓴다고.”
“이 예산에 해줄 수 있는데 없어?”
“디자인 내가 할게. 기획도 돼 있어.”


지금 보면 거의 새벽형 구인 문자였다.

그렇게 감언이설을 총동원한 끝에, 한 지인의 지인과 일을 하게 됐다. 그 팀은 서버, 프론트, UX를 하는 투잡 친구들이었다. 스타트업도 역시 소개의 소개를 타고 굴러가는 세계였다.


평생 어도비와 아래한글, MS오피스만 써봤지 피그마는 그때 처음 제대로 배웠다. 하나씩 눌러보고, 또 잘못 눌러보고, 나름 디자인과 출신의 짬바(?)를 살려 이래저래 요리조리 우리 서비스의 화면(구성)을 그렸다.


내가 낮에 화면 구성을 만들면 저녁에 디자이너가 그걸 바탕으로 화면을 뽑아왔고, 화면이 나오면 프론트가 구현을 했다.

말로 하면 참 간단하다. 실제로는 늘 모든 IT 서비스 개발 과정이 그렇듯 지난했다. 하나를 고치면 둘이 틀어지고, 둘을 맞추면 셋이 어긋났다. 마지막엔 QA를 하며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는 어른의 노력이 이어졌다. 안 붉힌 척하는 것도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런데 우리 서비스 오픈에는 웹만 있다고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큰 산.


가.입.약.관.

진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서비스가 많지 않은 데다가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로 없었다. 하필 그때는 ChatGPT가 등장하기 전 시대였다. 그러니까 사람이 직접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며 삽질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이건 법률 검토까지 받아야 했다. 건너건너 아는 변호사 분께 자문을 한번 받고, 관광벤처를 통해 연결된 변호사님께 다시 크로스 자문을 받았다.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참 복잡한 걸 하시네요.”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법에 저촉되지 않을 약관을 만들었다. 사람은 몰리면 못 할 게 없고, 대신 그 과정에서 수명이 좀 깎인다.


그 다음은 PG사 가입이라는 난관이 있었다.

당시 우리는 복지포인트를 운용하지만, 이 포인트 외 차액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카드결제가 필요했다. 카드결제 도입은 카페24나 아임웹,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사용한다면 프리패스지만, 우리같은 별도개발 서비스 플랫폼이 PG를 가입하는 일은 거의 낙타가 바늘구멍에다 머리를 넣고 다음 혹까지 쑤셔 넣어야 하는 일이었다.

PG사 몇 군데에서 이유 없는 거절(업종 자체가 폐업률이 높아서 안 된다는 아직도 이해 안가는 말을 남기며) 을 당하고, 결제대행사 포트원을 통해 담당자에게 하소연 섞인 랩을 한 결과(감사합니다) 한 PG사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포트원과 OO페이먼트 담당자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2020년대를 지났는데도 종이로 수십 장의 서류를 내밀어야 하는 금융권 서비스에 대한 놀라움을 체감하며 거절 기간까지 합쳐 체감상 약 50일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집을 지어뒀으니, 이제 안에 가구를 넣어야 했다. 우리는 이 플랫폼에 직장인들의 ‘버킷리스트’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A와 나는 서로 유니크한 프로그램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가장 잘할 강사, 그러니까 서비스를 찾았다. 그 뒤엔 그냥 깡이었다. 다단계 도를 아십니까 급으로 전화를 돌리고, 가능한 분들은 모조리 오프라인 미팅 약속을 잡았다.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났다. 어떤 때는 이 사람이 자기 일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구나 싶어 감동받았고, 어떤 때는 존경심이 들었다. 세상에는 자기 분야를 오래 파서 결국 하나의 세계를 만든 사람들이 있더라.

반면 어떤 때는 미팅까지 잘해놓고, 우리가 법률 검토까지 마친 계약서를 보시더니 플랫폼의 횡포(?)에 분노하시며 계약하지 않겠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반응이 참으로 다양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 세상이 넓어진다기보다, 세상엔 정말 많은 결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상세페이지를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 그냥 적당히 받아서 올리면 될 일 같지만,

우리는 꼭 인터뷰를 하고 나서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왜 하는 건지, 어떤 사람이 들으면 좋은지, 실제로 뭘 얻게 되는지, 왜 이 강사여야 하는지. 하나씩 듣고, 정리하고, 문장을 다시 쓰고, 사진을 고르고, 톤을 맞췄다. 정말 멍청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효율만 따지면 진작 다른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땐 그렇게 해야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게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관계를 맺었던 강사님들과의 인연은 후일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 서비스를 만들고, 개발하고, 집에 가구를 하나씩 채워 넣듯 서비스를 들이고, 또 고치고, 또 채워 넣으며 해가 지나갔다. 뭔가 대단히 거창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삽질을 아주 정성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둘 다 맞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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