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은 본격적인 학교 생활을 앞두고 있는 나이라 이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이의 초중고 학습이 결정되고 대학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7살 엄마들끼리 모이면 국어는 어떻게 하고 수학은 어떻게 하고 영어는 어떻게 하고...
국사, 한자, 중국어, 음악, 미술, 태권도, 발레 등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명문대를 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를 시키는 편이다.
우리 아이는 말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느렸고 하는 행동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어리다.
나는 그 원인이 성향적인 것도 있지만 어릴 때 마냥 이쁘기만 해서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그냥 예쁘다 하며 키웠던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 주는 대신 스스로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산에 데리고 가서도 나뭇가지를 주워 솔방울을 쳐보고 바닥을 파보고 돌을 던져보고 그냥 하고 싶은데로 실컷 놀기만 하다가 데려왔다.
그때 산에 대한 책도 읽어주고 나무가 배경인 책도 읽어주고 솔방울이 왜 떨어지는지 알려주면서 데리고 다녔다면 이렇게 느리진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데리고 나가서도 뭘 설명해 주는 엄마는 아니었다.
설명해 준들 아이가 알겠나 하는 생각이 제일 컸던 거 같다.
지금 세계문화 동화책을 읽으면 예전에 여기 가서 이렇게 놀았다고 사진을 보여 주어도 그저 과거의 이야기 일 뿐이다. 물론 기억은 조금씩 있기에 아~여기서 이렇게 논거 재밌었는데... 하고 더 호기심을 갖기는 한다.
전혀 안 데리고 나간 것보다는 나았겠지만 좀 더 아이에게 구체적인 자극을 못 준 것이 아쉽다.
그래서 7살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극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나를 보는 관점은 3가지이다.
"잘해 주고 있네"
"그 정도는 기본이지. 좀 더 추가로 이런걸 해 줘야 해"
"뭐 벌써? 너무 극성이다. 명문대 보내려고?"
극성이다라고 하는 세 번째 사람들은 내 아이와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뭐하는지 엿보았던 사람들이 주로 하는 애기다. 열심히 놀기만 했던 우리 아이는 다행히 엄마와 하는 공부를 재미있어해 준다.(물론 힘들어서 오래 걸리는 과정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sns에서 보게 되거나 함께 놀다 보면 보이다 보니 어떻게 해주는지 물어보고들 한다.
딱히 비밀로 하거나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하는 과정을 설명 해 주곤 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가 본인 아이와 해 보고 나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내가 2~3년에 걸쳐 우리 아이와 쌓은 것이 몇일만에 그 집 아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내가 꼭 아이를 강제로 책상에 앉혀 놓고 공부를 시키는 엄마처럼 충고를 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공부한 아이들이 막상 공부해야 할 중고등학교 때는 지쳐서 못하더라"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인성이 된 아이로 키우고 싶어"
반대로 기본만 하고 있다고 좀 더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로 우리 아이보다 더 큰 아이들을 키우는 언니들이나 중고생 엄마들이다.
다들 이때 좀 더 이런 걸 해 줬다면.. 하는 후회에서 충고들을 해준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앞에도 말했다시피 좀...... 느리고 어리다.
잘해준다고 하는 사람은 주로 나와 뜻이 맞는 엄마들이다.
우리는 아이를 명문대 보내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게 있고 원해서 소위 명문대라는 곳을 가서 전문직을 가진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 아이가 힘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지금 조금씩 하는 것이 아이에게 훗날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 품에 안겨서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것도 몇 년 안 남았기에 아직도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을 본다.
처음 품에 안겨 읽었을 때는 손바닥만 한 보드북이었는데 요즘은 독서대에 세워서 보는 페이퍼북이다.
예전에 한 페이지에 의성어 한 두 개 있던 책이었다면 지금은 한 페이지에 그림과 글자가 반씩인 책이다.
그렇게 단계를 밟으며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도 항상 고민이다.
지금 이 아이에게 이걸 해주는 게 맞는지.. 혹시나 과하게 시키는 건 아닐지..
한 때 적기 교육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선행을 하지 말고 아이의 때에 맞는 학습을 시키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마다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데 어디까지가 적기고 어디서부터가 선행일까?
지금 7살이지만 아이가 느리다고 마냥 크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아이는 좋든 싫든 올 연말이 되면 취학통지서를 받고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우리 아이의 적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언어가 느렸지만 영어를 재밌어하며 잘 따라 한다.
그래서 아빠와 놀 때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물론 원어민처럼은 안되지만 영어 잘하는 한국인 아빠랑 몇 마디씩 하며 논다. 이제 7살 아이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며 노는 건 선행이지 않을까?
판단은 엄마와 아빠가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를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만해서도 안되지만 지금 이 아이를 제일 잘 아는 것은 엄마와 아빠다.
나는 지금 내가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준비학습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배우게 될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준비.
아이가 접했을 때 이거 본 적 있는데 하며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한 준비.
시험 기간에 안간힘 쓰며 외우지 않고 봤던 책을 복기하며 암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