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어릴 적의 기억으로 귀가 간지러운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고, 더 자라선 인적 드문 제주 골목에서 책방을 하는 사람. 지금의 나에게는 작가라는 별칭이 더 익숙한 인물이다. 그녀의 직업들을 아울러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 표현하면 어떨까. 세상에 존재하는 사금 같은 이야기들을 모아 청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람. 그런데 요조에게는 이 일련의 일들이 실패를 사랑해야 행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생경한 제목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은 인간 신수진 (요조) 과 직업인 요조 사이의 일화들을 담백하게 풀어나간 책이다. 요조는 직업이라는 단어에 성과도, 성공도 아닌 실패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나의 시야에서 그녀의 직업은 꽤 멋들어진 일이었기에 이런 제목이 의아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골똘히 고민하며 책을 살피다 첫머리의 문장을 발견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을 것이다. 망할까 봐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패배감이 두려워 잘하는 것만 찾는 시간. 호기롭게 실행하는 일이 불안하게 느껴져 성장이 더딘 날들 말이다. 노래를 만들며 서툰 첫 녹음본을 듣는 것처럼, 글을 지으며 부족한 초고를 읽는 일처럼. 일을 향한 뭉근한 사랑은 실패를 응시하는 것에서 온다는 걸 요조는 알았나 보다. 책을 읽다 보면 서툴지만 계속하는, 그렇기에 끝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요조는 분명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기보다 다가가는 직업인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탁월하지 않은 시간을 견뎌야만 탁월해질 수 있다. 실패는 일의 완성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믿으며 말이다. 모르니까 다가가고, 호기롭게 넘어지는 것이 근사한 일이란 걸, 난 이제 요조를 통해 안다.
책 속의 문장
ㅡ 9p. 글을 쓰는 일 뿐만 아니라 읽히는 일에도 타지와 타인이 필요하다.
ㅡ 62p. 난 왜 '질 수 없다'고 생각하곤 했을까. 생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중력의 흐름을 따라, 상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갈 뿐이지만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중하다 여기는 삶의 흐름은 그 반대일 때가 많아서였을까. 그래서 우리들은 '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각자의 신발을 신고, 끊임없이 이 반대 방향으로 헤치고 나아가면서, 가끔 신었던 신발을 남기기도 하면서. '나'는 아마도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저 막상막하로 있을 뿐이야.
ㅡ 96p. 심보선 시인은 시는 두 번째 사람이 쓰는 거라고 했다.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거라고. (...) 김완의 시를 경청했다. 그는 내 바로 앞에 앉아 있었지만 목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내가 있는 곳과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ㅡ 102p. 대체로 그림에는 입이 있다. 그래서 말한다. 가치관, 세계관, 시선과 꿈, 욕구와 불만을 있는 힘껏 표현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해도 그 없음을 말한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경청한다. 어떻게든 작품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보통 작품과 감상자가 맺는 관계일 것이다.
ㅡ 157p. 모든 걸 이렇게 하자. 책방도 음악도 글도, 내 나머지 인생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렇게 하자.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