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북두칠성이 보이니
니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난 따라가
그 길을 비춰줄게
로이킴의 ‘북두칠성’이 들려온다. 노래는 나를 8월의 마지막 날로 이끈다. ‘가을, 오겠지? 설마 안 오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품게 한 아주 더운 그날로. 모임 장소는 보성이었다. 장소를 정할 때면 늘 미안해진다. 네 명 중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목포에 산다. 내가 중간에 끼어 시간과 장소가 애매해졌다. 그러나 그 모임이 좋아서 그들의 번거로움은 모른척했다. 우리의 장거리 만남의 목적은 ‘독서’이다. 목적이 그렇다는 것이다. 만나면 책보다 사는 이야기에 빠진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린다. 도로에서 우회전하자 한옥 지붕이 보인다. 차를 세웠다. 여러 채로 이루어진 한옥 카페는 생각보다 넓었다. 담장 위에 피어난 한 무더기 능소화가 환하다. 짧은 그림자 길을 만든 소나무를 지나 카페 문을 열었다. 에어컨의 냉기가 반갑다. 텅 빈 야외 테이블과 달리 실내는 복잡했다. 밖으로 나오니 그들이 주차장에서 걸어오고 있다. 반가운 표정과 달리 인사는 점잖다. “잘 지내셨죠?” “네.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우리는 별채에 자리를 잡았다. 안부 인사 같은 어색한 공기는 서로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어느 쯤 사라졌다.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모임 전까지 내내 하나로 묶여 있다가 자유롭게 풀리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 아니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그 존재처럼 서로의 말 사이를 부드럽게 유영했다. 다른 이의 생각을 듣는 일은 즐겁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거나 내 의견이 존중받고 있는 시간은 더더욱 그렇다. 늘 열띤 토론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모임이라 저녁 먹을 장소를 정하고 툇마루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겼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어린 황쌤이 고른 식당은 모두를 만족시켰다. 수북한 상추, 오이 그리고 김 옆에 막 썬 생선회까지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다들 회라면 일가견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인데도 당황스러웠다. ‘막회’라는 생소한 이름처럼 먹는 방법도 좀 달랐다. 잘 섞어서 김에 싸 먹다보니 식당 앞에 서 있는 긴 줄이 이해됐다. 물고기 논란으로 허기진 배를 풍성하게 채우고 저녁노을이 예쁘게 지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우주 쌤이 갑자기 “우리 별 보러 갈까요? 여기 가까운 데 천문대가 있어요.”라고 했다.
별, 별이라... 별을 언제 봤더라? 기억이 안 난다. 어렸을 때 저녁 먹고 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곤 했다. 그때는 참 별이 많았다. 같이 누운 언니랑 허공에 대고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별을 세곤 했다. 세도 세도 끝이 없었다. 까만 눈동자에 맞닿은 별들은 자꾸 움직여 허공의 동그라미를 벗어나기도 들어오기도 했다.
넷을 태운 차가 어느새 천문대 숲길에 들어섰다. 짙은 어둠에 싸인 숲은 온통 검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쭉쭉 뻗은 나무 사이로 더 검은 뭔가가 웅크리고 있는 거 같았다. 가벼운 대화가 오갔지만 숲 그리고 어둠의 공포를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 했다. 가로등 불빛이 훤한 주차장에 도착하자 안심이 되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귓전을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에서 가을 냄새가 났다. 오는 내내 차를 한 대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천문대 건물 안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실내에서 오로라 영상을 보고 다 같이 야외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천체 망원경 여러 대가 각각의 별에 맞춰져 있었다. 난 한 번도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본 적이 없다. 몇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망원경을 통해 본 별은 ‘에게, 이게 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다들 자리를 바꿔가며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난 한껏 목을 꺾어서 올려다보는 별들이 훨씬 좋았다. 옹졸, 솔향, 그리고 우주. 그들과 함께라서 더 좋다.
바람이 살랑이는 8월의 마지막 밤, 우리는 별을 보고 있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라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연을 피하지 못 한 걸까? 비켜가지 않은 우연이 우주 먼지들에게 소중한 인연을 전해 준 건 아닐까? 별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