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0시간 비행 끝에 만난 1988년

화려한 사막의 낭만은 인스타그램에만 있었다.

by MIA

인천에서 두바이를 거쳐 카이로까지, 환승 대기 시간을 포함해 꼬박 20시간. 카이로 공항의 묘한 냄새가 코를 마비비셨고, 후텁지근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떡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고, 기내 압력에 퉁퉁 부은 발은 신발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낯선 풍경에 감탄할 새도 없이, 우리는 남편의 회사 동료 가족들이 모여 있다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환영한다는 그들의 호의는 감사했지만, 사실 내게 간절했던 건 축하의 만찬이 아니라 고요한 시간 속에 몸을 눕힐 침대였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첫날인데 환영식은 해야죠.”


남편 회사 상사의 호탕한 목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감사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시차 때문이 아닌 또 다른 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그곳에는 기이한 ‘홍해’가 갈라져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 어느 지점으로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남자들, 반대쪽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정확한 분리였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무리로 섞여 들어갔고, 나는 쭈뼛거리며 여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법인장 사모님 옆자리를 시작으로 서열대로 늘어선 여자들의 식탁. 그곳의 언어는 명확했다. 아이들의 교육, 한국식재료, 메이드 이야기. 나는 그저 누군가의 아내이자, 새로 들어온 ‘막내’로서 식탁 가장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 잡았다.


입안에서 모래알 같은 밥알을 씹으며 남자들의 테이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은 내가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점유 했었던 ‘나의 언어’가 흐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속한 식탁에서 나의 언어는 금지된 외국어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놓을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이 낯선 땅의 식탁 가장 끝자리에 앉아 ‘누구의 아내’,’누구의 엄마’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고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주재원라이프? 우아한 사모님? 화려한 사막의 낭만은 인스타그램에만 있었다. 그날 밤, 이집트의 지독한 소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내 자리는 가장 구석지고 좁은 곳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남편의 회사 가족들이 모두 모인 그 환영식 자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고독’을 맛본 자리였다. 사막의 밤은 생각보다 더 춥고, 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