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커리어우먼의 죽음
그리고 +1의 생존업무.

by MIA

이집트 정부 청사인 ‘모감마(Mogamma)’ 건물은 거대하고 낡았으며, 기괴할 정도로 불친절했다. 비자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 사이로 먼지 섞인 열기가 내려 앉았다. 나는 그곳에서 내 생애 가장 낯선 이름표 하나를 부여 받았다.

‘Mrs.+1’

서류상 나의 존재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는 본체에 따라 붙는 부속품. 혹은 옵션. 금융사에서 일하던 ‘정과장님’의 시간은 그렇게 지워졌다. 이곳의 직원은 심드렁하게 나를 불렀다. ‘Mrs.Lee”.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나를 계속 남편성으로 불러서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대부분 외국인들은 결혼후에 남편과 성이 같아 지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이름은 Mrs.Jung라고 말해줬지만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직원은 무심하게 턱짓으로 서명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Sign here.”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아랍어와 영어,소음이 뒤섞인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나의 이름과 커리어는 환전 가치가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이로의 뿌연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나는 ‘여의도 정과장’의 장례식을 치뤘다고.

하지만 슬픔을 음미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장례식을 치른 +1에게 첫번째 업무는 다름아닌 ‘한국 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집트에는 쿠팡도, 새벽배송도 없다. 아이가 “국에서 한국 무 맛이 안나” 라고 투정부리는 순간, 나의 ‘자발적 쿠팡맨’작전은 시작된다. 40도에 육박하는 열기, 포장되니 않은 도로 위 흙먼지를 뚫고 구글맵 하나에 의존해 무를 찾으러 출동한다.

현지 마트인 ‘까르푸’의 채소 코너를 이 잡듯 뒤진다. 이집트의 무는 한국의 것과 다르다. 얇고 작으며 바람이 들어 있기 일쑤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미끈하고 굵은 무를 발견 했을 때의 희열은, 역설적이게도 여의도에서 대형 딜을 성사시켰을 때의 도파민 수치와 비슷했다.

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클릭 몇 번 이면 해결 되던 일들이, 이곳에선 온몸을 던져야 겨우 성취되는 생존 과업이 된다.


비자 서류위에서도, 먼지 날리는 시장통에서도 나는 여전히 ‘플러스 원’이었다. 메인 메뉴 곁에 곁들인 가니쉬처럼,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


힙겹게 구한 무를 닦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서류가 나를 ‘+1’이라 정의하고, 이름을 잃어버린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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