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정전만큼이나 갑작스러운건 ‘호출’이었다. 30대 초반, 이집트 주재원 사회에서는 한참이나 어린 ‘막내’였던 나를 향해 그들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서열의 언어는 곧 나를 어질하게 만들었다.
“어머, 이과장 와이프는 아직 애기네, 애기야. 너무 귀엽다.”
그곳은 이름 대신 ‘누구 엄마’ 혹은 ‘누구 와이프’이라는 수식어가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보살펴야 할, 혹은 가르쳐야 할 ‘어린 아내’일 뿐이었다.
그때, 법인장 사모님께서 인자한 미소를 띠며 결정타를 날리셨다. “ 우리 편하게 지내요. 나를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는 00엄마는 시누이 쯤으로 생각하면 딱 맞겠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 시누이?’
머릿속이 하얘졌다. 호의로 던져진 그 말은, 사실상 이곳의 질서를 선포하는 선언문이었다. 생판 남인 사람들과 이곳에서 다시 ‘시댁 관계’를 맺으라니, 그것은 곧 이 가부장적 서열문화에 순종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여의도 시절, 나의 상사는 업무의 성과와 논리로 나를 대했다. 하지만 이곳의 ‘상사’는 나를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서열을 매기려 들었다. 스스로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자처하는 이 기묘한 연극 속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 사모님. 말씀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구하기 어렵던 ‘한국무’를 쉽게 구해줬고, 내가 못하는 김치를 함께 담가주었다. 아이가 읽을 한글책을 줬으며, 다른 회사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과외선생님도 소개해주었다. 그들 또한 그들의 질서와 호의로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 속에서는 거대한 파열음이 들렸다. 타인의 시선이 정의하는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지키기 위해 이 ‘가족 놀이’의 울타리를 너머를 바라보아야 했다.
남편의 직급이 나의 직급이 되고, 처음 본 이들이 나의 시어머니가 되는 이 사막의 질서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이름 석자를 소중히 움켜쥐었다. 세상이 나를 ‘누구의 아내’로만 부를 지라도, 나의 이름을 잊지 말자. 이땅에서 ‘나’라는 1인분의 삶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