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뒷좌석의 상전, 사막의 드라이버

사막의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 사연

by MIA

이집트 카이로의 도로는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였다. 차선은 장식일 뿐이었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는 도시의 배경음악 같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뒷좌석에 앉아 기사 '아흐메드'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한국에서 나는 직접 차를 몰고 출근을 하고, 외근을 나가며,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향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아흐메드가 오지 않으면 목적지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뒷좌석의 상전'으로 전락했다.

"마담, 어디로 갈까요?"

그의 질문은 친절했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그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존재임을 매번 확인시켜 주었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를 데리러 갈 때도 나는 늘 태워져 다니는 존재였다. 차 안의 공기는 늘 그가 선택한 라디오 채널의 소리로 채워졌다. 뒷좌석은 편안했으나 지독하게 수동적이었다. 내 삶의 속도가 내가 아닌 타인의 엑셀러레이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모욕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운전대를 뺏기로 결심했다.

주재원 와이프가 스스로 운전을 하는일, 그 별 것 아닌일이 그 사회에서는 위험하고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다.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나는 기사에게 의존하는 대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을 때의 그 서늘한 감촉을 잊지 못한다. 뒷좌석에서 볼 때는 그저 무질서해 보이던 도로가, 운전석에 앉자 비로소 내가 정복해야 할 '길'로 보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엑셀을 밟는 순간, 꽉 막혀 있던 가슴 속 응어리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것.

그 지극히 당연한 자유가 이토록 달콤했던가. 사막의 도로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아내'도, '뒷좌석의 손님'도 아니었다. 나는 내 목적지를 스스로 정하고, 그곳까지의 속도를 조절하는 내 인생의 유일한 드라이버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막에서 운전하는 게 위험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게 진짜 위험한 것은 거친 도로가 아니라, 누군가가 운전해 주는 차 뒷좌석에 앉아 내 삶의 근육이 퇴화하는 것을 지켜만 보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사막의 베스트 드라이버다. 비단 도로 위 에서만이 아니다. 경력의 단절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는 다시 내 삶의 운전석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웠다. 비록 그 길이 모래바람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 손이 핸들 위에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프리카의 석양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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