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주재원 와이프'라는 가장 화려한 감옥에 대하여

우울은 모래알처럼 신발 속에 쌓이고

by MIA

우울은 모래알처럼 신발 속에 쌓이고

사막의 모래는 아주 작고 집요합니다. 아무리 털어내도 어느샌가 신발 안쪽, 발가락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걸음마다 서걱거리는 불쾌감을 남기죠. 이집트에서의 삶이 그랬습니다. 화려한 주재원 와이프라는 껍데기 안에서, 나의 우울은 아주 미세한 모래알이 되어 매일 조금씩 신발 속에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좁고도 단단한, 그들만의 성벽

그곳에서의 일상은 시계추처럼 정확하고 단조로웠습니다. 이른 아침, 아이의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골프장으로 향하거나 누군가의 집 거실에 모입니다. 서너 시간의 수다가 끝나면 다시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하는 오후 3시. 보호자가 없으면 하교가 불가능한 국제학교의 규칙은 우리를 더욱 촘촘하게 묶어 놓았습니다.

아랍어는 할 줄 모르고 영어도 서툰 낯선 타국에서, 누군가 내밀어주는 작은 손길은 생존 줄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순식간에 가족보다 더 끈끈해졌지요. 주말마다 가족 식사를 하고 여행을 함께하며, 우리는 서로의 안방 안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단단함은 동시에 언제든 나를 가둘 수 있는 성벽이기도 했습니다.

소문이 휩쓸고 간 자리, 사라진 이름

평화롭던 성벽에 금이 간 건 아주 사소한 속삭임부터였습니다. 한 남편의 유흥업소 출입 소문.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밥을 먹던 이들의 눈빛에 어색한 침묵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은 발이 없어도 사막의 바람을 타고 집집마다 번져 나갔습니다. 결국 그 소문은 당사자의 귀에 들어갔고, '출처'를 찾는 잔인한 추적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헛소문으로 밝혀진 뒤 소문의 발원지는 영원히 그 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승자는 없었습니다. 당사자들은 피폐해졌고, 남은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깨달은 사실은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나'라는 이름으로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 나의 작은 실수나 말 한마디가 남편의 평판이 되고, 아이의 교우관계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입힐 수 있다는 공포가 저를 잠식했습니다.


'주재원 아내'라는 편리한 유니폼

그날 이후, 저는 스스로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튀지 않게, 누구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삶. 그 배움은 서서히 저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해야 할 말을 골라냈고, 내 감정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먼저 살폈습니다.

‘주재원 아내’라는 호칭은 참 편리했습니다. 복잡한 커리어를 설명할 필요도, 나의 내면을 드러낼 필요도 없게 해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유니폼을 오래 입고 살다 보니, 어느덧 그게 제 삶의 유일한 설명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안에 적힌 행동 지침을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그 밖으로 나가는 순간 길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문득 고개를 숙여 발밑을 보았을 때,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세상의 눈치를 보며 웅크리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저였습니다.

신발 속에 쌓인 우울의 모래알을 털어내지 못한 채, 저는 그렇게 저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서걱거리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만이, 다시 내 이름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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