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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아 Aug 19. 2024

과자의 유혹

소풍날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용돈 천 원을 주셨다. 딱 천 원이다. 동생과 내가 살 수 있는 과잣값이다. 집 앞 가게로 달려가 과자를 맘껏 고르고 싶지만 소풍 가방에 최대한 빵빵하게 들어갈 부피가 큰 과자를 선택해야 했기에 가게를 몇 바퀴 돌면서 신중하게 과자를 골랐다. 


“양수야, 부피가 최대한 큰 걸로 골라.”


동생과 내가 고른 과자가 무슨 과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풍 가방을 꽉 채우지 못해 늘 아쉬웠던 기억만 난다. 

아버지는 미화원 일을 끝내고 틈틈이 종이박스를 주워 용돈벌이를 하며 알뜰하게 생활하셨다. 그런 아버지한테 과자를 사달라고 떼를 쓸 수 없었다. 피부병을 앓았던 나는 3학년까지 19kg밖에 되지 않는 빼빼 마른 아이였다. 김치를 전혀 먹지 못해 밥에 간장을 비벼 먹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집에 간식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어서 도둑질을 해서라도 과자가 먹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동네 언니가 옆 동네 새로 오픈한 농협 슈퍼로 과자를 사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그 언니는 연탄집 딸로 욕을 잘하고 동네에서 기센 언니로 소문이 나서 할머니는 그 언니랑 함께 어울리지 말라고 늘 당부했다. 그때 언니에게 배웠는지 시장통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 욕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린 시절 난 욕을 잘하는 아이였다. 언니와 나는 1시간 넘게 걸리는 농협 슈퍼로 향했다. 우리 동네에 없는 과자들이 많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 연탄집 언니는 나를 데리고 과자 원정을 떠난 것이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농협 슈퍼에 도착하자 언니는 

“미아야, 네가 먹고 싶은 거 골라. 그리고 가방에 담아.”

난 너무 신났다. 소풍날도 내가 먹고 싶은 과자를 담지 못하고 부피가 큰 과자를 담았는데 내가 먹고 싶은 걸 사준다니 너무 좋았다. 그렇게 먹고 싶은 과자를 가방에 담아 나오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나와 언니를 불렀다. 


“야~ 너희들 과자 훔쳤지? 어린것들이 벌써부터 도둑질이야. 안 되겠네. 여기 입구에서 손들고 서 있어!”

나는 정말 몰랐다. 언니가 과자 값을 계산한 줄 알고 나는 당당하게 가게를 나오는 거였는데 도둑놈이라니. 아니, 사실 언니가 돈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돈이 생겨서 나에게 과자를 사주나 보다 생각했다. 새로 개업한 농협 슈퍼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오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며 나와 언니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어이구, 쯧쯧.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도둑질하면 못쓰제.”

개업식이라 파란 풍선이 날리는 게 보였고 사람들이 웃으며 우리를 비웃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에 없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내 머릿속에서 지웠는지 모르겠다. 농협 슈퍼는 내가 어른이 돼서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어린 시절 과자가 먹고 싶어 도둑질했던 내가 떠올라 눈을 꼭 감아야 했다. 나의 식탐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도둑질로 더욱더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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