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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ug 24. 2020

혼자 잠들지 못하는 어른이 됐다

혼자 두지 말아요

작가 『김미아』


자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 두려운 생각의 먹이가 되기 가장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잠을 못 잤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잤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의 팔뚝살을 만지면서 잠이 들었다. 간혹 엄마가 먼저 잠이 들면 "엄마 먼저 자면 안 돼요"라면서 애걸복걸했다. '무서운 게 딱 좋아'같은 책을 본 날이면 제발 이 밤이 얼른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간호사 귀신, 다리 없는 귀신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으면 나는 이불을 끌어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 친구들은 모두 혼자 잔다는 걸 알게 됐다.


"MP3로 팬픽 보는 게 내 낙이야"

"부모님이 계신데 어떻게 봐?"

"......? 내 방에서 그냥 보지. 너 아직도 부모님이랑 같이 자?"

"아, 아니....."


친구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기였기에 혼자 자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저 이제 혼자 잘게요!"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 자는 날, 창문이 그렇게 두려운 존재란 걸 처음 알았다.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볼 것 같았고, 고양이 귀신이 창문을 타고 들어올 것 같았다. 밤이 무서웠다. 어둠이 언젠가는 지나가길, '이것도 곧 지나갈 거야'라는 생각만으로 항상 잠을 잤다.


밤을 무서워하던 어린애가 커서 혼자 잠을 못 자는 어른이 됐다.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혼자 잘 잘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내가 해결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처음으로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이 공간에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며칠 밤을 지새웠다. 도저히 혼자 잘 수가 없어서 공원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지하철에서 쪽잠을 자길 선택했다. 그게 훨씬 위험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사람 소리가 나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내가 두려워하는 건 귀신뿐만이 아니었다. 두려워할 건 더 많아졌다. 괴한, 낯선 이, 취업, 미래, 과거. 누군가 창문을 타고 침입해 올까 두려웠고, 도어록을 뜯어버릴까 무서웠다. 취업이 안 되면 어쩌지, 취업을 해도 내가 못 버티면 어쩌지,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했고 과거의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와 회한으로 밤을 지새웠다. 겁이 많은 난 밤에게 딱 좋은 먹이였을 테다.


사람 소리가 나지 않으면 못 자는 어른이 되어 버렸기에 나는 현실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혼자 있으면 식은땀이 나고 두려움에 죽어 버릴 것 같은 이 공포가 '공황장애'라는 걸 인정했다. 그래서 현재는 약을 먹고 셰어하우스에서 산다. 한 방에서 같이 자는 건 아니지만 사람 소리가 들리는 그 공간이 내겐 안식처다. 여성들과 함께 살며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기대어 지낸다. 여성 연대란 게 이런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괴한이 들이닥칠까 봐 걱정할 일은 없다. 취업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고 해결되지 않은 인간이기에. 언젠가 취업을 하고 다시금 이 글을 봤을 때,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라며 힘들어할지, 아니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두려워했다니'라며 웃을지 예측할 순 없다. 다만 후자이길 바랄 뿐.

같이 자자.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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