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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Feb 21. 2024

완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아

P들의 여행


5년 전, 친구와 스페인 여행을 가려고 계획한 적이 있다. 스페인 포함 3개국 10개 도시, 9박 10일간 가는 패키지여행 상품을 눈여겨보고 예약을 하려고 했다. 당시 직장인이던 나는 연차를 길게 내기 회사에 눈치 보여서 결국 여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5년 후, 가족과 함께 2개국 7개 도시를 여행하는 자유 여행을 떠났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을 경유한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우리는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 한국 단체 여행객을 많이 만났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 공항까지, 이스탄불 공항에서 프랑스, 영국, 독일로 갈아타는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길게 늘어선 한국인들의 행렬을 마주쳤다. 피도가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야.”

“응? 갑자기 왜?”

“저 사람들은 패키지 여행 가는데 우리는 자유 여행이잖아. 왠지 막 우월감이 느껴져.”


유럽 첫 여행은 패키지 여행으로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유럽 가는 사람들은 계획 세우기도 만만치 않고 유럽의 교통시스템, 언어(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 많다), 숙소예약 등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상사 눈치 보며 어렵게 얻은 길지 않은 연차를 한치의 실수 없이 일정을 꾹꾹 눌러담아 소화해내려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를 하거나, 그게 자신 없으면 패키지 여행을 가는 게 효율적인 거라는 얘기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귀한 돈과 시간을 우왕좌왕 헤매면서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가족은 무얼 믿고 완벽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준비도 미흡한 채로, 패키지 여행은 어쩐지 재미없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자유여행을 떠났을까. 패키지 여행의 유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패키지 여행을 가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고, 나에게도 그런 유형의 여행이 잘 맞을 때가 반드시 생길 거다. 결코 패키지 여행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P들에게는 안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계획 안(못) 세우는 P들은 남이 계획과 준비를 해주면 좋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P들은 틀에 짜여진 일정보다 자유롭게 다니고 예상하지 못한 우연한 풍경과 사람에 더 즐거움과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IP들은 E나 J에 비해 마음과 몸의 속도가 느려서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억지로 따라가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을 갔다가는 그들의 속도에 따라다니는 데에 급급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여행이 더 우월한 방식이라기 보다는 P들에게는 오히려 자유여행이 맞는 방식이다. 잇팁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정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겁도 없이 첫 유럽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왔어.”


이 사실이 유치하지만 여행 내내 나와 피도에게 좋은 에너지를 공급해주었다. ‘완벽한 여행’보다는 ‘느슨하고 어딘가 엉성하지만 온전히 내것이 되는 여행’을 우리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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