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과 암의 연결고리: 메틸 기증자 경쟁 모델과 유방암

1. 면역대사(Immunometabolism)의 새로운 패러다임

암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현재 흥미로운 가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암은 유전자의 병이기 이전에 대사의 병이다"라는 관점입니다. '메틸 기증자 경쟁(Methyl donor competition)' 모델은 이 관점의 핵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세포 내에서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후성유전학적 조절(Epigenetics)에는 SAM(S-adenosylmethionine)이라는 연료가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이 연료가 무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성 염증은 세포 내 한정된 자원인 SAM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유발하며, 이 과정에서 유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암이 태동하게 됩니다.


2. 메커니즘: 만성 염증은 어떻게 유전체를 파괴하는가?

만성 염증이 암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단순한 세포 손상이 아닌, '대사 자원의 고갈로 인한 시스템 붕괴'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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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DNMT의 폭주와 자원의 독점

만성 염증 상태(감염, 비만, 흡연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IL-6, TNF-α 같은 사이토카인은 세포 핵 내의 DNA 메틸화 효소(DNMT)를 과도하게 발현시킵니다. 급증한 DNMT는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세포 내의 SAM을 독식합니다.


② 국소적 과메틸화 (Focal Hypermethylation): "경찰서 폐쇄"

폭주하는 DNMT는 SAM을 이용하여 종양 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s)의 프로모터를 집중적으로 메틸화시킵니다. 암을 막아야 할 유전자들이 이 과정에서 강제로 '침묵(Silencing)' 당합니다.


③ 전반적 저메틸화 (Global Hypomethylation): "감옥 문 개방"

DNMT가 특정 부위에 SAM을 낭비하는 사이, 정작 유전체 전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SAM은 고갈됩니다. 그 결과, 평소에는 메틸화로 굳게 잠겨 있어야 할 반복 서열(LINE-1 등)과 전이 인자들의 빗장이 풀립니다. 깨어난 이 '유전적 기생충'들은 DNA 곳곳을 끊고 이동하며 유전체 불안정성(Genomic Instability)을 극대화합니다.


④ 원료의 소각 (The Burnout)

설상가상으로, 염증 반응에 동원된 호중구(Neutrophil)는 활성산소와 클로라민을 생성하여 SAM의 원료인 메티오닌(Methionine) 자체를 산화시켜 없애버립니다. 즉, 소비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끊기는 '이중고'가 발생합니다.


3. 적용 사례: 유방암(Breast Cancer)에서의 비극적 시나리오

이러한 메커니즘은 유방암, 특히 예후가 나쁜 케이스에서 뚜렷하게 관찰됩니다.


A. 전이(Metastasis)를 위한 통신망 조작

유방암 세포는 메틸화 불균형을 이용해 이동 능력을 획득합니다.

CXCR4 (수신 안테나): SAM 부족으로 인한 저메틸화로 과발현됩니다. (안테나를 켬)

CXCL12 (유도 신호): DNMT의 공격으로 과메틸화되어 꺼집니다. (자체 신호 차단)

결과: 암세포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신호(CXCL12)가 풍부한 폐나 간으로 이동하는 전이 성질을 갖게 됩니다.


B. 삼중 음성 유방암(TNBC)과 효소 납치

삼중 음성 유방암에서는 염증 신호인 IL-6가 STAT3 단백질을 활성화합니다. 이 STAT3는 혼자 작동하지 않고 DNMT1을 납치(Recruit)하여 특정 암 억제 유전자 부위로 끌고 갑니다. 이는 SAM을 낭비하는 동시에, 암세포의 생존을 돕는 유전자들만 선별적으로 켜지게 만드는 정교한 전략입니다.


C. 회복 불가능한 흉터

기저양(Basal-like) 유방암에서 염증 인자(NF-κB)는 잘못된 메틸화를 지우는 효소인 TET1을 억제합니다. 즉, 염증은 DNA에 잘못 쓰인 낙서를 지울 지우개마저 없애버려, 암세포가 면역 감시를 피하도록(Immune Evasion) 돕습니다.


4. 결론: 상위 원인(Upstream)을 차단하라

이 모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이미 망가진 유전자를 하나하나 고치거나, 이미 폭주한 효소(DNMT)를 억제제로 막으려는 시도는 부작용이 크고 한계가 명확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 전략은 "염증이라는 화재 진압"입니다.

자원 보존: 만성 염증을 차단하면 DNMT의 과발현을 막아 아까운 대사 자원(SAM)이 낭비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정상화: SAM이 골고루 분배되면, 암 억제 유전자는 다시 켜지고(탈메틸화), 위험한 전이 인자들은 다시 잠기게(메틸화) 되어 유전체 안정성이 회복됩니다.

임계점 관리: 암으로 가는 유예 기간 동안, 생활 습관 교정과 항염증 치료를 통해 메틸화 흉터(Epigenetic Scar)가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결국, 암과의 전쟁은 암세포를 죽이는 것만큼이나, 내 몸의 대사 자원이 엉뚱한 곳(염증)에 낭비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병참전'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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