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의학 검사(DUTCH Test 등)를 하다 보면 임상의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리는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유리 코르티솔(Free Cortisol)은 높은데, 대사된 코르티솔(Metabolized Cortisol) 총량은 매우 낮다."
직관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코르티솔이 많으면(High Free), 당연히 대사되어 나오는 쓰레기(Metabolized)도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패턴은 '대사의 정체' 혹은 '가짜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감별하는 열쇠는 바로 대사체들의 비율(Ratio), 즉 THF(활성 유래) vs THE(비활성 유래)의 균형에 있습니다.
오늘은 이 까다로운 그래프 뒤에 숨겨진 갑상선 기능 저하와 만성 스트레스 적응의 기전 차이를 명확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오해하기 쉬운 용어부터 정리하겠습니다.
THF (Tetrahydrocortisol): 활성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간에서 대사된 형태입니다. 주의: THF 자체는 효능이 없는 비활성 대사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많다는 건 '활성형 코르티솔'이 원재료였다는 뜻입니다.
THE (Tetrahydrocortisone): 비활성 호르몬인 코르티손(Cortisone)이 간에서 대사된 형태입니다. 이것이 많다는 건 몸이 이미 코르티솔을 비활성 상태로 꺼버렸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비율(Ratio)을 통해 몸이 코르티솔을 "쓰려고 하는지(THF 우세)" 아니면 "끄려고 하는지(THE 우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청소도 느리고, 변환도 느리다."
갑상선 호르몬은 간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지휘자입니다.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면 간의 효소들도 '태업'을 시작합니다.
전체 대사 속도 저하: 간에서 코르티솔을 분해하는 효소(5α/5β-Reductase)가 느려집니다. 그래서 '대사된 코르티솔 총량'은 낮게(Low) 나옵니다.
대사 지연으로 인한 정체: 대사 지연이 생기면 혈액 속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유리 코르티솔'이 높게(High) 측정됩니다.
11β-HSD2 효소의 태업 (핵심): 갑상선 호르몬은 코르티솔을 비활성(Cortisone)으로 바꾸는 11β-HSD2 효소를 돕습니다. 갑상선 저하 시 이 효소도 일을 안 합니다. 즉, 코르티솔(Active)이 코르티손(Inactive)으로 잘 바뀌지 않습니다. 몸속에 활성형 코르티솔(F)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됩니다.
대사량 자체는 적지만, 그나마 나온 대사체들을 뜯어보면 THE보다 THF의 비율이 더 높습니다.
원인: 11β-HSD2가 일을 안 해서, 원재료인 코르티솔이 코르티손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대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염증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스위치를 끄다."
만성적인 염증(비만, 인슐린 저항성, 감염 등)이 있을 때, 우리 몸은 조직 손상을 막기 위해 '방어 모드'를 가동합니다.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습격: TNF-α, IL-6 같은 염증 물질이 쏟아져 나옵니다.
강제 비활성화 (Deactivation): 염증 신호는 신장과 말초 조직의 11β-HSD2 효소를 강력하게 활성화시킵니다. 명령: "코르티솔이 너무 많으면 위험해! 빨리 꺼!" 활성 코르티솔(F)이 비활성 코르티손(E)으로 급격히 바뀝니다.
CBG(운반 트럭) 감소: 간의 염증 반응으로 코르티솔 결합 단백질(CBG) 생성이 줄어듭니다. 전체 생산량이 줄어도, 결합하지 못한 '유리 코르티솔'은 상대적으로 높아 보입니다.
몸이 적극적으로 코르티솔을 끄고 있기 때문에, 대사체 분석 시 THF보다 THE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두 경우 모두 [High Free Cortisol + Low Metabolized Cortisol]이라는 겉모습은 같습니다. 하지만 속사정은 정반대입니다.
DUTCH 검사에서 "코르티솔 수치가 높다"는 결과만 보고 무조건 부신 억제제를 쓰는 것은 반쪽짜리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THF 비율이 높다면? 부신보다는 갑상선을 치료하고 간의 해독(Methylation, Glucuronidation)을 도와야 코르티솔 정체가 풀립니다.
THE 비율이 높다면? 이것은 부신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염증의 신호입니다. 숨어 있는 감염, 장 건강, 인슐린 저항성을 해결해야 몸이 방어 모드를 해제합니다.
호르몬의 '양(Quantity)'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대사의 '방향(Preferen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