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이 어울리는 건 10대일까 20대일까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내 가치관, 인생관, 정치 스탠스 등등을 정립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1020세대의 자신을 찾아 떠나는 모험.
최근에 <데미안>을 처음으로 읽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열병 같은 10대를 거치며 자신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 책이다. 보통 <데미안>은 청소년기에 읽어서 소설 속 싱클레어와 자신을 동일시할 때 가장 와 닿는다는데, 한국에서는 20대에 읽어도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사고의 힘을 기르고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10대에는 공부만 죽어라 하고 자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은 20대에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만 봐도 20대인데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 나는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내 주변의 사례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시는 ‘청춘 페스티벌’이다. ‘청춘 페스티벌’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행사로 대표되는 “너의 꿈을 찾아봐!” 라는 캐치 프레이즈들, 혹은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소셜 스킬을 키운다든지 하는 것. 나는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주로 10대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청춘 페스티벌의 주관객은 20대다. 10대에 자아 찾기를 어느 정도 마쳐야 20대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온전한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물론 자아 탐구에 끝은 없고, 정해진 때도 없다. 마흔이든 쉰이든 새로이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좀 더 젊은 나이부터 그 질문을 시작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 점이 항상 아쉽다. 모두가 자신을 알아갈 권리가 있다. 특히 한창 자아가 형성될 청소년기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파고들어 가야 한다. 자신을 알아갈 권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환경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