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눈이 엄청 내렸다.
눈이 없는 세상에 살던 나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눈을 밟는 소리도 좋았고,
나무 위에, 낙엽 위에, 자동차 지붕 위의 쌓인 눈도 참 보기 좋았다.
난생처음 손녀와 눈사람도 만들어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를 연신 외치며 까르르 웃어대는 4살 배기 손녀는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피터팬 같았다.
눈사람을 만들어 줬는데,
눈과 코가 없단다.
눈 사람 만드는 것은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눈 오는 날이 행복했다.
그리고 입원이다.
캐리어 가방에 짐들을 잔뜩 싣고 기차를 탔다.
다시 병원 버스에 환승하고, 몇 분 후 병원 본관 앞에 섰다.
입구에 들어서니 병원 설립자의 숭고함이 담긴 글이 벽에 새겨 있었다.
이 그룹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출과 카드의 영업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도 신세를 졌는데, 이렇게 몸이 아프니 또 신세를 지러 오네.
기업의 도덕성을 얘기하며 조금은, 정말 조금은 비난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미안합니다'라는 마음속 인사를 드리며 '잘 살펴 주세요.'라는 비굴해 보이는 말까지 덧붙였다.
한참을 기다렸다.
딸아이의 이런저런 얘기가 듣기 싫어 일부러 일찍 나온 탓이다.
오후 4시 반이 입원 수속 시간인데, 딸아이 집에서 10시에 출발했으니 한 시간 남짓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5시간을 넘게 기다렸지만, 느긋한 마음이라 그런지 지루하진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다양하게 그리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아픈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보호자 없는 환자는 잘 안 보인다.
나는 왜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해결하려 할까?
고집스럽다고 야단을 맞았던 내가, 남들과는 다름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인정을 해야겠다.
병실에 입실!
2인실인데 좁다.
수술 후에 간병인과 같이 있기엔 숨이 막힐 것 같겠다. 가족이면 좀 덜하겠는데...
그렇게 수술울 위한 입원은 시작되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호텔이 아닌 병원이지만 '호캉스가 따로 없네. 이것도 호캉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제 좀 쉬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