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한 달 살기를 통한 감상, 이랄까
에어비엔비라는 회사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글도 바르셀로나의 한 에어비엔비에서 쓰고 있으니 내가 바로 위선자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호텔은 너무 비싸고, 호스텔은 이젠 불편하고 - 학생 때 충분히 이용해봤다는 합리화와 함께 - 그렇다고 한인 민박은 현지 체험이라는 여행의 본래 목적이 희석되는 것 같아 주저될 때, 에어비엔비만한 게 없긴 하다. 에어비엔비를 비판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다. 바르셀로나 한 달 살기를 한 지 3주째인 지금, 여행과 해외에서 '산다'는 말의 무게에 대해, 나름의 소고를 이렇게 또 한 번 적어본다.
학부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에어비엔비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구로 광고를 시작한 것은. 두고 두고 생각해도 참 잘 만든 문장이다. 바르셀로나만 해도 사흘 나흘 일정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도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압도적인 비주얼, 가우디의 머릿속을 엿보는 듯한 카사 바트요와 구엘 공원은 물론이고, 골목마다 숨어 있는 로컬 타파스 바와 디저트 가게들. 카탈란어와 스페인어, 영어가 뒤섞인 거리와 끝없이 이어지는 광장 (러닝하기에 참 좋다), 벤치에 늘어져 앉아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 다채로운 빈티지 샵과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꽃 문양 '파놋(panot)'이 가득한 도보, 키가 큰 야자수들과 마치 한국의 붕어빵을 연상케 하는 군고구마 장사꾼들... 관광객 트랩을 피해 로컬이 가는 맛집과 작은 상점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만 보고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여행을 엑기스만 훑고 가는 '패스트 트랙'이 아니라 짙은 밀도의 체험을 통해 내 의식과 경험의 부피를 늘리는 '인텐시브 코스'로 이해한다. 물론 취향의 차이다. 사실 대부분은 몇 주 이상 머물고 싶어도 현실적인 이유로 그러지 못한다.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 런던의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어 매니저와 잘 얘기하면 모종의 '워케이션'이 가능하기에, 스페인어 어학당을 다니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앞의 2주는 재택근무를 하며 정착기를 갖고, 나머지 2주는 휴가를 내 어학당을 다니는 일정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일이 너무 많아 여기가 런던인지 바르셀로나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지금은 어학당 마지막 주 - 슬슬 돌아갈 날을 세고 있다.
굳이 한 달 살기를 택한 이유는 현지에서 스페인어 심화 수업을 2주 이상 듣고 싶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대충 며칠 머물다 가는 관광객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는 관광객이 많은 도시고, 그만큼 로컬의 피로도 크다. 그들이 싫어하는 관광객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도 그 피로에 기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바르셀로나의 외국인 문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 더 들여다보니 현실은 더 복잡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바르셀로나의 월세는 약 50~60% 상승했고, 스페인에서 가장 비싼 도시가 되었다. 단기 계약이 가능하고 구매력이 있는 외국인들이 주로 에어비엔비나 고가의 월세를 감당한다. 그라시아나 에이샴플라에 즐비한 힙한 브런치 가게와 카페들 - 누가 여기서 돈을 쓰나 했는데, 관광객뿐 아니라 미국에서 온 테크 노마드 'John'과 같은 사람들이 17유로짜리 점심을 사먹는 식이다. 좋은 일자리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expat'들이 차지하고,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온 로컬은 외곽으로 밀려난다. 꼭 사무직종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여기서 만난 카탈루니아 출신 요리사 친구는, 요즘은 낮은 시급에도 일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 좋은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돼 온 도시의 생태계가 외부인들에 의해 흔들린다는 감각, 그리고 그로 인한 반감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발리나 리스본에서 반복되는 인플루언서, 디지트 노마드 등 외부인과 로컬의 갈등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게 외국인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주택 공급 부족, 부동산 투기 등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 바르셀로나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빈 땅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로컬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친절했고, 특히 스페인어나 카탈란어를 쓰려는 시도에는 더 호의적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은 단순한 '외국인 혐오'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쯤에서 첨언하자면 이 글은 여행을 말리려는 글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그래도 사흘 여행보단 낫겠지 (나에게도, 이 도시에게도)"라는 자기위안 속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던 내가, 그 구조에 나 역시 편리하게 올라타 있었음을 깨닫고 적어보는 고해성사에 가깝다.
다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구로 돌아가서 - 그동안 나는 '살아본다'는 말을 로컬처럼 먹고 걷고 느끼는 정도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어쩌면 살아본다는 건, 그 도시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내가 그 안에서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지까지 자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게 거대한 글로벌 회사의 이 문구가 다시 와닿는 이유는 낭만 때문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한 달 살기 여행자가 그 도시에서 일하고 세금을 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할 수 있는 건,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관계를 소비로 끝내지 않으려는 태도일 것이다. 무작정 영어부터 내뱉기보다 인사말부터 배우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우리 모두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면서 크루아상조차 불어로 주문하지 못하는 에밀리를 보면서 답답해 하지 않았나. (사실 드라마 끝까지 안 봤다.)
사견으로는, 그게 더 재미있는 여행이기도 하다! 특히 혼자 여행하다 보면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과 서로 싱긋 웃어 보이고, 빠에야 식당에서 스몰 토크를 하게 된 종업원의 음악 채널을 구독하고, 벤치에서 말을 섞다 카탈란 아저씨 집에 초대받을 뻔하는 일들 - 물론 가지는 않았지만 - 이 정말이지 재밌다.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가능했던 건, 이 도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수다스럽기 때문이다.
오케이, 다음에 바르셀로나에 올 때는 일자리를 잡고 와야겠다 - 라는 멋진 결말이면 좋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또 이렇게 한 달 살기를 해봤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뭐 어쩌겠나.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맥락을 보게 되었다. '생각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 맞지만, 책임감 있게 살아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