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장인 영어 콤플렉스 극복기

feat. 현재진행형인 임포스터 신드롬

by mia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해외에 사는 사람이 '저 영어 좀 해요'라고 말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수준이고, '영어로 먹고 살긴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해요'라고 하면 실은 진짜 잘하는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석사 시절에도, 지금 직장에서도 나는 매일 새로운 표현을 배우니 지식으로만 따지면 내 영어 실력은 365일 발전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매일 내 한계를 체감하고, 좌절하고, '그래 배우면 됐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 과정을 반복한다.

아, 그러니까 영어 진짜 잘한다고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진짜 아님). 어쨌든 제법 하니까 해외 직장 생활을 하는 거겠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왜 늘 부족한 느낌인지. 오늘은 그 자책과 좌절 속에서 마주한 나의 임포스터 신드롬*을 용기 내어 고백해 보려 한다.


*가면 증후군: 자신의 기술, 재능, 성취를 의심하고 사기꾼으로 드러날 것을 속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지속될 때의 심리적 현상


king’s college library, cambridge. 2023.




대충 알아듣고 생활하는 수준이라면 '나 좀 하는데' 하고 스스로를 칭찬해도 되겠지만, 일터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환경에서는 정확한 청해와 표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적당한 유머와 슬랭까지 필요하다.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동료들과 스몰토크에 뛰어들 줄도 알아야 한다. 회의 중 멀티 태스킹을 하면서 대충 한 귀로 듣더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 전두엽이 기억을 '자동 저장'해 주는, 모국어의 그런 편리함 따위는 없다. 중요한 어젠다라면 초집중 상태로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하다 못해 녹취나 메모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특히 내가 리드하는 회의라면 더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주제가 있으면 전날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정말 중요한 회의는 미리 연습까지 한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집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나서야 뇌와 함께 온 근육에 힘을 꽉 주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래도 워라밸은 좋은 편이니 몸이 피곤한 거야 집에 와서 쉬면 되는데, 문제는 마음이 지친다. 실수할 때마다 자책이 밀려오는데, 이게 참 기분이 안 좋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임을 알면서도, 영국인 동료가 청산유수로 회의를 이끌어 가는 걸 보면 '나도 저거 반만 하면 좋을 텐데', '오늘은 저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하며 비교와 후회의 굴레에 스스로를 던져버리고 만다.




유학생이나 해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게 임포스터 신드롬이다. 나의 경우 그 뿌리는 다름 아닌 영어였다. 솔직히 말하면 영국 사회에 동화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원어민처럼 말하고 싶다는 순수하고 재미난 욕구였는데, 언젠가부터 그건 '티 나지 않는'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은 모종의 욕심으로 바뀌었다. 동화되고 싶은 욕심에 대해서는 지면 부족 이슈로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하고, 어쨌든 그래서 석사 시절 의외로 내가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건 다른 사람들이 내 영어를 어떻게 평가할지였다. 읽기와 작문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발표나 세미나 같은 것만 하면 질문 하나를 던질 때도 머릿속으로 더 '고급진 표현'을 찾고 정제해서 말하려 했다. 그 습관이 임포스터 신드롬과 맞물리면서 '내 영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으로 고착화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가엽고, 뭣하러 스스로에게 그리 가혹했나 싶은데, 그땐 그저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king’s college, cambridge. 2023.





그래서 나는 이걸 어떻게 극복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은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케임브리지 석사 시절에는 학기 말에 점수를 받기 전까진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지금 직장에서는 매일 미팅이 끝날 때마다 성과가 보인다. '이달의 우수사원'까지는 아니어도, 성실하고 일 잘하는 동료로 인정받고 있다. (아마... 한국인 근성이면 모두 인정 받을 거다!) 즉 '피드백'을 통한 '객관화'가 큰 도움이 된다. 임포스터 신드롬은 결국 내 안에서 온다. 자기 성찰과 비판은 때론 도움이 되지만, 과한 눈치는 실은 전부 허구일 수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작년 초 교수님과 학우들 앞에서 연구계획을 발표하던 날이었다. 내 발표가 끝나고 한 교수가 정당한 질문을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얼어 버렸다. 덜 정제된 영어로 어찌저찌 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이 교수는 내가 영어도 못하면서 케임브리지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발표가 끝난 뒤 너무 속상해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주저하다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오히려 놀라며 말했다.

Mia,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너의 문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그냥 긴장한 티가 조금 났을 뿐이야. 누구도 네 '영어'를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장담해.


그말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늘 쓰고 있다고 생각한 가면은 허상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 내가 높게 잡은 기준을 향해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남들도 나에게 그 기준을 들이대고, 그를 토대로 날 평가하고 있다고 믿은 건 내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건 자의식 과잉에 가까울지도...? 이런 깨달음을 거의 처음으로 마주했던 것 같다.




한순간에 임포스터 신드롬을 극복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남들이 날 어떻게 볼지 두렵다면, 그냥 물어보자.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 '나 잘하고 있어? 솔직하게 말해줘.' 그 객관적 피드백이, 내가 하는 걱정이 현실적인 문제 - 즉 해결할 수 있는 불안 - 인지 아니면 내가 창조해낸 그림자 속 불안인지 구분하게 해준다.


그리고, 영어든 뭐든 스스로를 의심할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 있다.

If you're in the room, you belong there.


특히 여성으로서, 외국인으로서 '내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려 한다. 이미 이 조직의 일원이라면,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인 거다. 하기야 정말 크리티컬한 실수를 했다면 내가 날 자책하기도 전에 매니저가 먼저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남들도 나를 믿어주는데, 나만 나를 믿지 못할 이유가 있나. 그러니 제2외국어로 밥벌이하는 모든 해외 직장인들이여,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임포스터 신드롬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지라도(날이 갈수록 내 기대치도 높아지니까), 그때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보듬어주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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