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저작권위원회
어느 날, 해는 기울었고 빛은 조용히 바닥에 누워 먼지를 감쌌다.
바람은 느릿하게 창을 두드렸고, 그 안에서 나는
오랜 시간 묵혀둔 마음의 한자락을 꿰매고 있다.
말 없는 실, 오래된 바늘.
소리도 없이 반복되는 손끝은 차가운 판 위를 맴돌며,
나는 내가 남긴 것들을 천천히 이어붙였다.
말이 되기엔 너무 여렸던 감정들,
모습을 가지기엔 아직 젖어 있던 생각들.
누군가의 눈에는 티끌만도 못한,
어쩌면 아주 하찮고 무의미해 보였을 조각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전부였다.
뭉근하게 타오르던 가슴 속 침묵과 손끝으로 겨우 건져낸 빛의 잔편들.
나는 그 조각들을 꿰매어, 단 하나의 그림자를 완성했다.
그것은 곧, 나였다.
사람들은 창작의 고통조차도, 결국 한 번의 불꽃이 모든 것을 보상한다고 믿으며,
남의 고통이 결국엔 아름답게 포장될꺼라 착각한다.
희망 섞인 낭만이라는 얇은 종이로 조심스레 감싸고는,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삶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는 불꽃이 지나간 뒤 남은 재조차 다시 모아 꿰매는 것.
아마도, 버려두면 사라질 것들이라서 그런 맑은 종이로만 감싸기엔 너무 어렵다.
그런데, 그날이었다.
내가 꿰맨 그 그림자가, 어느 오후의 창가에서 벗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아주 정교하게, 조용히, 그리고 정확하게 내 그림자를 벗겨갔다.
나는 잠시 내 그림자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햇빛도 그대로, 바람도 익숙했다.
하지만 발끝에서부터 이상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나는 나를 따라오던 그 어둠을 돌아봤고,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것은 어디에
누군가가 내 흔적을 가져가 스스로의 발끝에 붙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던 것처럼.
그는 웃었고, 칭찬을 받았고, 박수 속에서 내 그림자의 주인이 되었다.
"그저 가벼운 생각이었을 뿐이에요."
그 말이 그렇게 깊게 박힐 줄은 몰랐다.
내게는 수만 번의 실패와 고요한 밤들이 필요했는데.
저리 쉽게.
하지만 나는 다시 꿰매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리를 더듬으며,
다른이의 손때가 묻은 내것이 아닌게 되어버린 그것을 지우기 위해.
그래서 이제는 내 그림자에도 자잘한 흉터들이 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정직한 문장이고,
잊히지 않기 위해 새겨둔 작은 상처의 기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꿰매고 있다.
그림자 하나, 내 존재 하나.
이젠 누가 다시 그것을 벗겨간다 해도, 나는 알아볼 것이다.
조용히, 그러나 이젠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