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le Rose of Cairo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85), 우디 앨런

by 연경

후기에 스포가 존재합니다.



영화광인 시칠리아는 영화를 보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불쑥 말을 걸어오는 영화 속 탐 벡스터. 스크린 속에서 그는 불쑥 걸어나온다. 늘 낭만(이상)이라 꿈꾸던 것이 현실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던 낭만적인 판타지는, 막상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무능력했다. 근사한 식사도, 어딘가에 마땅히 머무를 곳도 없는 판타지는 보장되지 않는 미래만을 기약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말을 보고 난 이후, 현실을 선택했던 시칠리아를 마냥 답답하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었다. 나 역시 현실을 선택했고, 오로지 이상적인 낭만만을 선택할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선택한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영화관에서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는 시칠리아의 아련한 표정, 그리고 옅은 미소는 이 영화의 결말이 마냥 철저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결말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낭만이 현실이 되는 것보다는, 현실 속에서 낭만을 찾을 때에 비로소 낭만이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뚜렷이 나누기 보다는, 나는 이 영화에서 낭만으로 인해 그녀가 변화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영화 속 탐 벡스터로 인해 그녀는 폭력적인 남편을 버리고 집에서 도망칠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영화로 인해 "감명(Inspired)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변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쩌면 낭만은 그래서 더욱 현실보다는 현실 너머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 낭만과 같은 것들이 공허한 우리들에게 삶의 이유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우리는 비참하고 고단한 현실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실을 택했지만, 그녀의 현실은 곧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영화 속 편집된 세상은 안정되고 보장된 세상을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주체적으로 자신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에. 또 현실에서도 낭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즐길 줄 아는 시칠리아이기에. 오히려 그녀만의 주체적이고 보장되지 않은 삶 그 자체를 오롯이 꾸려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Tom Baxter : [pauses after kissing Cecilia] Where's the fade-out?

. Cecilia : What?

. Tom Baxter : Always when the kissing gets hot and heavy just before the lovemaking, there's a fadeout.

. Cecilia: Then what?

. Tom Baxter : Then we're making love in some private, perfect place

. Cecilia: That's not how it happens here.

. Tom Baxter : What, there's no fade out?

. Cecilia : No, but when you kissed me, I felt like my heart faded out. I closed my eyes, and I was in some private place.




덧붙여, 벡스터도 섀퍼드도 그녀의 곁에 남지 않았다는 결말이 참 좋았다. 결국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현실을 살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 섀퍼드도 현실을 택했고, 그녀 역시 현실을 택한 것이기에. 세 인물 중 아무도 자신의 이상을 이룬 사람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꿈꾸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아닐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명확히 구분되었지만, 그녀가 영화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표현한 만큼 결말 이후 그녀의 삶에 주체적인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마음껏 즐기게 되기를.




* 눈에 띄었던 장면 :

영화 속에서 도망간 톰을 기다리며 연기자들이 "여기가 현실이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 앞에서 순응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들도 불안하고 막막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정말 현실인지 '자각'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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