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주 특별한 스물한번째 취미이야기_다도
차는 오랜 옛날부터 휴식과 사교를 대표하는 마실 거리 그 이상의 문화였습니다. 과거 유럽 사람들은 “티타임” 이라고 해서, 식사 후 담소를 나누며 차를 함께 마시는 시간을 하루일과로 정할 정도로 차를 사랑했습니다.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귀부인들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차를 즐긴 것은 먼 옛날 중국의 왕족과 귀족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2160여 년 전에 서거한 한나라의 황제, 경제의 무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차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차는 동서고금, 만인의 사랑을 받아 오며,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행위가 아닌, 교양있는 휴식과 사교의 시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채 독특한 법도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차를 마실 때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정의하는 다도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전통의 향기가 자욱한 인사동의 한카페에서, 15년 째 다도를 즐기는 박숙자 씨를 만났습니다. 어느날 일본문화원에서 열린 다도 퍼포머스를 우연히 보고는 다도에 반해 지금까지 즐기게 되었다며 호호 곱게 웃으시는 모습에서부터 차를 사랑하는 사람특유의 정갈함이 풍겼습니다.
“다도는 일종의 행위예술”이라고 박숙자 씨는 말했습니다. 얼핏 보면 다도는 차를 만들고 따라 대접하고, 다우들과 함께 화과자를 먹으며 즐기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일련의 모든 동작에는 수 많은 절도와 규칙이 있으며, 이러한 세세한 법도를 지키며 최고의 예의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접한다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 동작에 최고의 성의를 담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돕니다.
이렇게 설명했을 때 짐짓 겁을 먹을 수 있지만 사실 다도는 전혀 난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도의 본질은 가장 일상적이고 소박한 데에 있습니다. 매 순간, 주위의 모든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다도의 본질이라고 박숙자 씨는 말합니다. 박숙자 씨는 “다실안에 삼라만상이 있다” 라고 표현했는데요, 다도를 즐길 때는 차를 내온 사람이 어떤 찻잔을 썼는지, 어떤 차를 어떻게 내었는지, 차를 마신 공간에는 어떤 시각적 즐거움이 숨어 있는지, 어떤 말을 누구와 나누었는지, 어떤 생각이 스쳤는지 모든 순간에서 즐거움을 찾고 한없이 감상합니다. 주인이 벽에 걸어둔 그림 하나도 유심히 감상하며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전시했는지, 준비한 화과자도 어떤 재료를 썼는지, 왜 오늘의 차와 함께 내왔는지 그 마음을 헤아리며, 나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사람의 수고를 최대한 존중하고 감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답니다.
다도는 또한 타인을 대접하는 기쁨을 알 수 있는 착한 취미이기도 합니다. 차를 준비하고 우려서 내기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차를 대접 받는 사람들은 대접해준 분의 수고에 대해 세심한 감상을 나누며 나를 위해 얼마나 큰 배려를 해주었는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화과자에 올라온 작은 잎사귀가 계절감을 반영해서 좋았다던가, 잔이 작아서 적은 양의 차를 음미하기에 딱 알맞았다, 와 같이 세세한 배려에 존중과 감사를 표하면, 대접을 한 사람도 뿌듯해지고, 다음번에는 더 잘 대접해 주고 싶다는 봉사자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향기 나는 차를 끓이는 법을 배울 뿐만아니라, 향기 나는 말과 행동가짐도 다짐하게 되는 거죠.
다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혼자서 차를 준비하고 음미하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수도 있고, 마음이 맞는 다우(茶友)들과 함께 차를 즐기며 감상을 도란도란 나눌 수도 있고, 실내에서 방 안에 은은히 퍼지는 차향을 맡으며 즐길 수도 있으며, 꽃이 예쁘게 핀 봄이나 낙엽이 빨갛게 물든 가을에는 야외로 나가 한 잔 씩 차와 다과를 나누며 풍취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차와 함께하는 매 순간을 즐기는 데에 있다고 박숙자 씨는 강조합니다.
물론 다도의 중심이 되는 차 자체도 배울거리가 많은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차의 종류, 산지, 기후, 지역 등에 따라 그때 그때의 맛과 향이 다르고, 이렇게 손에 들어온 차를 어떻게 차려 놓는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잎차를 그대로 우려 즐기지만, 일본에서는 찻잎 가루를 타 마신다고 하니 마음이 끌리는 다도법을 습득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차를 즐길 때 함께 나오는 과자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답니다. 팥죽이나 구운 인절미 같은 계절 전통 음식에서부터 딸기, 밤, 국화 등 예쁜 모양을 한 과자까지, 차의 풍취를 더욱 돋구어 주는 배려입니다. 15년 동안 다도를 즐긴 박숙자 씨도 아직도 다도에 대해 배울 게 많다고 합니다. 비록 이전에 한 번 대접했던 메뉴라고 해도 그 날 그 날의 날씨와 계절, 분위기에따라 또 다르고, 그릇, 차, 인테리어, 과자를 어떻게 구성해서 배치하는 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니, 다도를 즐길 때마다 항상 새롭다고 합니다.
일부러 다우들을 위해 준비한 거리들 외에도, 다도를 즐길 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차를 마실 때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동산 하나도 그 순간의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차를 담은 찻잔에 금이 가 그 사이로 찻물이 든 모습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도에서는 이를 “차심이 든다,” 즉 차의 마음이 잔에 물들었다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실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자세입니다.
다도는 정적이고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들이 즐겨서 젊은 사람들이나 남성 분들이 즐기기에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제 우려에, 박숙자 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다도는 오히려 젊고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분들께도 꼭 권하고 싶은 취미로, 다도를 익히면 자태가 우아해지고 예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사에 감상하는 태도를 통해,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고 물건에 대한 안목 또한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물론이고요.
다도를 시작할 때는 “오늘은 차를 한 번 마셔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거창한 수련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차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본인이 행복한 방법으로 매일매일 차를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차를 더욱 세심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싶어지고, 다도의 규칙을 배워가며 마음과 몸가짐을 다듬다 보면 어느새 다도는 거창한 의식이 아닌, 일상의 극히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보기에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즐거움을 찾는 것이니까요.
다도를 처음 배울 때는 우선 우리나라의 기법을 먼저 배우는것을 추천합니다. 한국에는 한국차문화협회, 차인연합회, 명원다예 이렇게 3가지 큰 협회가 있는데요, 이 협회 아래에 수많은 개인 차회, 차학회 등 다도모임이 소속되어있으니 본인에게 맞는 모임에 찾아가 다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다도를 제대로 익히기 까지는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요, 잎차부터 말차라고 하는 가루차까지 다양한 차의 종류와 차를 우리고, 접빈하고, 감상하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후 흥미가 생긴다면 일본차, 중국차, 영국차 등 그 범위를 점점 넓히며 다도를 수양할 수 있답니다.
차 기행을 떠나는 것도 차와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중국, 일본, 스리랑카, 인도 등에 가서 차 원산지에 가서 그 원초적인 향과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고, 다도에 사용되는 기기들도 구경해 볼 수 있겠지요.
다기를 준비할 때는, 처음이라면 전문적인 고가의 다기를 장만하는 데 집착하기 보다는, 우선은 먼저 무슨 차든 마셔본다는 마음으로, 집에 있는 녹차 티백을 머그컵에 간단히 우려서 즐기며 시작해 보세요. 그러다가흥미가 생기면 형편에 맞게 찻잔도 하나씩 구비해 보면서 차차 차를 눈에 익혀가고, 나만의 다도 스타일에 대해 감이 잡히면 그 때 내게 맞는 전용 다기를 구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천이나 인사동에 가면 다양한도자기 작품과 다반, 찻잔을 구경할 수 있고, 꼭 이런 전문적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시내에도 다양한 다기 용품점이 있습니다. 가격은500원부터 몇 백만원을 호가하는 것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드는지를 살펴보고 구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기기로 다도를 즐겁게 즐기는 모습이 진정 멋스러운 다도인의 모습이니까요.
특별한 사물이 아니더라도, 차와 관련된 주위에 모든 것들의 가치에 감사하며, 상대를 마음으로부터 섬기고, 규칙을 세세하게 지키는 데서 오는 정제된 완벽함을 즐기고 싶다면, 혹은 그저 단순히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리며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감사와 배려의 마음도 함께 우려내고 싶다면, 다도를 시작해 보세요. 오늘부터 방안 가득한 찻잎향에 마음이 차분해질 거에요.
**출판소식**
10월부터 시작한 브런치북 출판작업이 드디어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출판작업을 하면서도 틈틈히 브런치 활동을 하고자 다짐했지만 ㅠㅠ 이것저것 할게 너무 많아 오늘에야 다시 브런치 활동을 재개하네요. 책 제목은 <몰입하는 시간의 즐거움 : 특별한 나를 만나는 취미이야기> 랍니다. 기존 브런치에 올린 글보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정보를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첫 책이 나와 독자분들한테 선보여진다니,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네요. 모두 그간 부족한 제 글을 응원해주신 독자님들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 곧 나올 책으로 많은 독자님들께 도움이 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