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진짜로 다루고자 한 주제는 놀랍게도 UFO나 외계인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탐구토끼입니다.
이 매거진에는 처음으로 글을 올려보네요.
첫 타자로 리뷰할 영화는 <Arrival> 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과 부제에 썼듯이, 제가 "외계인은 페이크, 미지와 시간과 현재에 대한 영화" 라고 표현하는, 너무나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요, 한국에서는 "컨택트" 란 제목으로 상영됐습니다.
이를 두고 저는 "미끼를 물어버렸구마" 라고 한 소절 읇었는데요, "컨택트" 라는 한국 제목이 영화의 겉만 보여 주고 있다면, "Arrival" 이라는 제목은 영화가 정말로 전달하고자 했던 알찬 속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부제에서 얘기했듯이, 이 영화가 이토록 정교하게 다루고자 한 주제는 놀랍게도 UFO가 아니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영화를 분해해 보면서 같이 얘기해 봐요.
**주의**
이 글은 앞 단락에서 뒷 단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스포 정도가 심해집니다.
"본 사람을 위한 리뷰" 가 주제이긴 하지만, 아직 보지 않은 독자분들을 고려해서 각 point 마다 스포주의를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절대 뒷단락부터 보시지 마세요!
앞 단락부터 천천히 보시다가 흥미가 생기셨다면, 중간에 스톱하고 보고 오시는 걸 강추합니다.
어느 날, 세계 주요 도시에 외계행성으로부터 온 미지의 비행선, 말 그대로 UFO 가 동시에 출현합니다. 이 미확인물체의 등장에 인류는 공포에 빠지고, 각국정부에서는 이 초유의 사태에 당연히 비상이 걸렸지요. 그런 와중에 정부인사가 찾아간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언어학자인 루이즈입니다. 정부가 루이즈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미확인 비행물체에 타고 있는 외계인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의도로 지구에 왔는지를 알아내는 것. 루이즈는 바로 비행물체가 출현한 지역으로 향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근데 사실 이 매거진의 의도 자체가 내용 심층 분석.... )
루이즈가 처음 비행물체가 나타난 지역에 도착하자, 우리가 이제껏 본 적 없던 기묘한 형태의 허공에 떠 있는 기묘한 상태로 스크린에 펼쳐질 때.
루이즈가 이 비행물체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중심부로 올라갈 때.
기묘한 안개가 가득찬 방에서 외계인이 등장하기를 숨죽이고 기다릴 때.
마침내 흐릿흐릿한 안개 속에서, 형태를 띤 무언가가 천천히 가까워질 때.
루이즈가 용기를 내어 첫 걸음을 뗐을 때.
그리고 안개 속의 흐릿한 형태가 손을 쫙 뻗을 때.
지켜 보던 관객 모두가 느꼈을, 생생하고 불편한,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모든 감정들을 절대적으로 압도했던 감정이 있을 겁니다.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지와 설레임을 함께 엮은 컨텐츠를 종종 접합니다.
당장 놀이공원이나 축제, 새로나온 아동용 애니의 캐치 프레이즈만 봐도 자주 등장하는 구절이 있죠.
신나는 모험, 미지의 세계!
미지는 긍정적이며, 기대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무언가로 암시되지요.
영화는 이 개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관객들이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을 통해 전달합니다.
영화는 루이즈가 처음 미지의 것을 보고, 접근하고, 다가가려는 그 모든 시도를 극적인 전개 없이 따라갑니다.
실제로 두번째로 영화를 다시 보면, 우리가 숨을 죽이고 초 긴장 상태로 따라갔던 이 과정이 사실은 얼마나 평탄한 과정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고 나면 전혀 두려울 게 없는 장면들이죠.
영화는 공포영화에서처럼,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타인이나, 음산한 배경설명 등을 전혀 준비해 놓지 않았습니다.
있는 것은 오로지 미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상태뿐이죠.
그리고 관객들은 루이즈와 함께, 이 미지의 과정을 체험합니다.
영화는 미지에 대한 화려한 수식 없이, 관객들이 직접 느낀 그 감정 자체로, 미지에 대해 정의합니다.
우리 본능 가장 깊숙한 곳에서, 미지란 두려움입니다.
이 때 느낀 두려움은, 제가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자고 다짐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 적 없던 것을 처음 봤을 때, 거부감을 보이거나 적개심까지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른 여론은 쉽게 이들을 "꽉 막힌 사람들" 로 낙인 찍지만, 이 영화를 통해 느꼈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이를 주저하게 합니다. 저 또한 미지라는 상태가 주는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지의 것에 적대감을 나타내는게 옳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영화에서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어요.
영화 속에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루이즈가 느꼈던 것과 같은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죠.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역시 적대감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미지의 존재를 파괴하고 제거하자는 데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루이즈와 이안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이 미지의 존재를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지는 분명히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지만,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래 point 2 는 정말 진짜 대박 스포이니, point 1에서 흥미가 이셨다면, 영화 꼭!! 꼮!! 보고 오세요!! 진짜 제발 흑흑
외계인들이 대체 왜 왔는가가 밝혀지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음...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이 영화를 안 봤던 독자분들이, 위에서 멈추시고 이 영화를 보시고 오셨다고 가정하고 저는 꿋꿋이 글을 쓰겠어요. (아무도 나를 막을수 없으셈)
외계인들이 온 이유는 아득히 먼 시간이 지난 후, 이 외계인들에게 큰 위기가 닥치는 데, 이 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대충 다룹니다. (관심없어 돌아가) 저도 보다가 엥?! 이게 다야?! 했을 정도로 휙 지나가고, 결국 끝까지 정확히 무슨 위기인지는 밝혀지지 않지요. 그건 제가 부제에서 강조했듯, 영화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저 외계인들은 대체 뭐고 무슨 일을 겪었고 왜 여기 왔지?!' 가 아니라, 외계인들을 통해 전달하는 어떤 개념에 있기 때문입니다.
넹. 저는 질질 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개념이란 바로 "순차성이 없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알쏭달쏭한데, 천천히 풀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인식하는 시간은 linear, 즉 쭉 뻗어나가는 선을 따라가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개념입니다. 저는 linear 라는 말이 정말 우리가 보는 시간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점에서 출발해서 한 방향으로만 쭉 뻗어나가는 선에서처럼,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에서는 오직 선상에서 먼저 일어난 사건들만이 나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선을 잘개 쪼개면 점들의 집합이 된다는 점에서, 점이란 순간순간의 사건들로 비유할 수 있겠는데요, 만약 선의 중간에 있는 점을 지워버리면, 이 선은 두 개의 분단된 선분이 되지, 애초의 하나의 선이 아니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선의 끝부분을 지워도, 이전까지의 점들은 함께 하나의 선을 이루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에서도, 10년 전의 일이 현재에 영향을 미칠수는 있어도, 10년 후의 일은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더 정확히는,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 수 없기에 영향을 받지 못합니다. 未來(미래), 한자 뜻이 말하는 것처럼,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 그대로죠.
이러한 순차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시간이 존재하기에, 원인은 결과보다 선행한다는 개념이 생겨나고,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요? 순차성이 무시된다면? 현재에서 미래를 단순히 예측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있다면? 심지어 경험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미래는 더 이상 “미지의 것” 이 아니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게 되겠지요.
미래는 반대로 이미 도래(到來)한 것이 되지요. 마치 영화의 제목, Arrival 처럼요.
그리고 과거-현재-미래로 삼분되던 시간의 개념은 파괴됩니다.
외계인들이 살고 있던 시간은 바로 이런 시간이었던 겁니다.
이 외계인들이 대체 어떻게 미래에 그런 엄청난 위기가 있을 거란걸 알았냐 하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기 보단, 미래를 "이미" 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간의 개념을, 영화에서는 다양한 단서에 심어놨는데요, 제가 소제로 골랐듯이, HANNAH 와 원이 그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첫번째 단서, HANNAH
영화에서 이 복선을 가장 잘 암시하는 장치는 바로 루이즈의 딸, HANNAH (한나) 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며, 루이즈가 그녀의 딸 한나와 어떻게 함께 했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순차성을 토대로, 이 장면이 과거의 장면이라고 생각하지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과거에 발생했던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루이즈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 아픔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은, 사실 루이즈가 영화 내내 끊임 없이 회상했던 이 장면은, 순차성의 시간에서, 그녀가 미래에 겪게 될 일이라는 점입니다. 루이즈는 딸은 커녕 아직 미래의 남편의 손도 잡지 못했었던 거십니다!
그녀는 외계인들이 떠난 후, 여기에 와서 만난 물리학자 이안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이안과 이혼하고 딸과는 사별하게 되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래를 캠프에 와서 끊임없이 회상하죠. 이는 루이즈가 외계인들과 만나 외계인들이 사는 순차성이 없는 시간을 (대체 어떻게인진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받아들이고 각성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회상한다니 정말 이상하죠. 과거와 미래, 미래와 과거가 딱히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그녀가 미래에 만날 딸, 한나의 이름은 바로 이 점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딸, HANNAH(한나)의 이름은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습니다. 순차성이 파괴된 시간에서, 앞에서 뒤로, 즉 우리가 늘 그랬듯이 과거에서 미래로 해석하든, 뒤에서 앞으로, 즉 정반대로 미래에서 과거로 해석하든, 모든 것은 똑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루이즈가 새로운 시간의 개념에 눈을 뜨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그녀의 딸, 한나와의 미래에 벌어진 추억이지요.
새로운 시간의 개념은 또 다른 단서에서도 암시됩니다.
두번째 단서, 원
영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루이즈가 만난 외계인들은 실로 기묘한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촉수처럼 생긴 손 끝에서 먹물같은 부유 물체를 뿜어내, 아래와 같은 원 형태의 문양을 표현하는데, 우리의 루이즈는 이걸 또 해석해냅니다. 사스가 천재...
그런데 잠시. 왜 굳이 원이었을까요.
가장 안정적이라는 도형 삼각형도 있고,
뭔가 외계인으로서의 위엄을 높일 수 있는, 복잡하고 세련되 보이는 고대상형문자 같은 문자도 있을 테고,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은 하트라던ㄱ... 죄송합니다.
쨌튼, 왜, 하고 많은 선택지 중에, 영화에서는 원을 외계인들의 언어로 지정했을까요.
저는 이 원이야말로 외계인들이 사는 순차성 없는 시간을 잘 나타내는 도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순차성이 존재하는 시간이 선이라면, 영화가 외계인을 통해 전달하려는 시간은 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루이즈는 미래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꾸려고 하거나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여타 시간을 주제로 한 다른 영화들과는 굉장히 다른 점이지요.
<백투더 퓨처> 와 같이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불행한 미래를 목격하고 다시 현재로 와 이러한 미래가 오지 않도록 다른 선택을 해, 미래 자체를 바꾸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미래가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선택이 모여 새로운 미래가 된다고 설정하거나, 어떤 영화에서는 이전에 있던 불행한 미래는 그대로 이어지고, 다시 내가 돌아와서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새로운 미래가 생기며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가 생긴다는, 평행 우주 개념을 이용하죠.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시간을 “선” 개념으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주인공이 어쩌다가 선의 끝부분에 갔다가, 다시 현재 지점으로 돌아와, 현재 지점에서 선의 끝 부분까지의 선을 모두 지우고 다시 현재지점에서 기존에 가던 방향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전혀 다른 꺾인 선을 그려나간다는 개념이고, 후자는 현재로 돌아와, 내가 서 있는 하나의 점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방향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방향의 무수한 선을 긋는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루이즈와 외계인이 사는 시간은 선이 아닌 원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행위는 불가능합니다.
루이즈의 시간을 원에 비유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선에서는 내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지만, 원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원 위에 어떤 점을 찍어도, 이를 조금씩 회전하면 결국 같은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루이즈가 서 있는 지점은 정확히 시간의 어떤 지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되고, 아직 오지 않은 사건은 미래가 아니라, 애초부터 내가 사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일이 과거이자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과 달리, 원의 경우, 그 일부를 지우고 이전과 다른 행적을 기록하게 되면, 이 도형은 더 이상 원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가 수학시간에 배웠듯, 원은 한 점으로부터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원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루이즈는 그녀에게 주어진 사건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루이즈가 경험한 미래는 결코 밝고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만난 이안과 결혼하지만 결국 이혼하게 되고, 사랑하는 딸 한나를 낳아 행복한 한 때를 보내지만 결국 그 딸을 다시 병으로 잃는, 괴로운 미래를 알면서도, 다른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처럼, 이러한 미래를 고치는 것을 택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택할 수 없는 거겠죠. 이는 그녀의 현재가 애초에 과거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그녀가 한 경험 덕분에, 현재의 루이즈는 외계인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었죠. 그녀의 현재는 주어진 미래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그녀가 사는 시간 내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와 미래에 벌어질 무수히 많은 사건들로 인해 존재하기에, 루이즈는 현재를 바꾸는 게 불가능합니다. 원과 같죠.
또한 원은 선과 달리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이는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의 장면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모두, 루이즈는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던 한나를 회상합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우리는 현재의 루이즈가 있는 건 그녀의 딸 한나와의 과거때문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실, 오히려 미래에 그녀가 낳게 될 한나 덕분에 현재의 그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반대로, 현재의 그녀가 없다면, 미래에 그녀의 딸 한나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요.
이처럼 영화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작중 행적 때문에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 결말에 이른 것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결말이 있었기에 작중 행적이 있던 것도 맞는 말이지요. 결국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은 파괴되고, 그녀의 삶의 모든 순간, 영화 속 모든 순간이 원인이자 결말이 됩니다. 머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유명한 둥근 뱀이 떠오르는 것도 우연은 아닐 듯 합니다.
여러 가지 단서로 설명했지만, 루이즈의 시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결국 "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에서 저는 루이즈가 굳이 불행하다고도 볼 수 있는 미래를 바꾸지 않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외계인들이 사는 시간에서, 모든 사건들의 촘촘한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여기서 가장 감명을 받았던 점은 루이즈가 이후 불행이 닥칠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런 자신의 삶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명백히 다른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 영화는 이후 외계인들이 인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득히 먼 미래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외계인들이 인류에 경고한 희귀 질병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외계인들이 상륙해서 루이즈에게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일깨운 것은 그 모든 사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추측만 가득하다는 점에서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닫힌 결말도 없다고 봐요. 루이즈는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녀처럼 정확히 어떤 결말을 맞을지 확실히 알고 있는 주인공도 전무후무할 거에요. 순차성의 시간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가 현실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누구나가 열린 결말을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죠. 하지만 루이즈는 압니다. 그녀의 삶처럼 닫힌 결말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루이즈는 이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이미 아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을 선택합니다.
저는 루이즈의 이런 선택이, 단지 목숨이 아까워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바로 현재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아무리 미래와 과거가 분간되지 않는 루이즈라 할지라도, 순차성이 있는 시간을 사는 우리들과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그녀가 지금 당장 살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점은 현재뿐이라는 점입니다.
순차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현재는 소중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이유를 과거나 미래에서 찾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내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에 이러이러한 일을 했고, 이러이러한 것들을 달성했고, 이러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혹은
"지금의 내가 중요한 것은, 내가 미래에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거기 때문이지!
라고 말하지요."
과거와 미래를 이유로, 우리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과거와 미래를 가지고 있는 루이즈도 현재가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루이즈는 이미 자신이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이 될지 알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처럼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는 개념의 현재란 있을 수 없죠.
또 과거의 업적이나 추억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도 딱히 공감하지 못할 거에요.
그 과거를 통해 쌓인 내가, 또 쌓여서 된 미래의 나는, 다시 내 과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럼에도 현재가 루이즈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저 현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발에 밝히는 잔디의 까슬한 감각, 막 사랑에 빠졌을 때 연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 하늘 높이 메아리치는 사랑하는 딸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당장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현재뿐입니다.
루이즈는 바로 그 현재를 살아가기로 한 거에요.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의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제가 여태까지의 삶 중에서, 수많은 현재를 거치면서, 그 현재 그대로를 살아 본 적은 얼마나 될까요.
늘 과거를 살고, 미래를 살며, 정작 오롯이 제가 지금 당장 발을 딛고 있는 현재에 집중해 본 적은 얼마나 될까요.
영화의 마지막에서, 헤어짐을 알면서도, 이안의 등을 감싸안으며 미소짓는 루이즈를 보고,
뜨거운 전율이 척추를 훑어 내려가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중, 외계인들이 처음으로 지구에 온 목적을 밝힐때, 처음 외계인들의 목적을 루이즈는 “무기 제공” 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루이즈는 이가 보다 정확히는 “gift," 즉 선물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지요. 이 선물이 외계인들이 루이즈에게 힘을 준 것을 의미하는지, 이미 그녀 안에 존재하던 힘을 일꺠워 준것인지, 루이즈를 통해 인간에게 미래를 대비할 준비를 시킨 것인지, 혹은 전혀 다른 시간의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킨 것인지. 영화에서는 정확히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적어도 루이즈에게 있어서 이 선물이란 “현재” 가 된 것 같습니다. 선물의 또 다른 영어표현인 "present"가, "현재"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걸 강조하면, 너무 끼워맞추는 것 같으려나요? ㅎㅎ
이제 제가 왜 서론에 "미끼를 물어버렸구마" 라고 한 소절 읊었는지 아실거에요.
"컨택트" 라는 제목은 외계인과 지구인 루이즈의 만남과 접촉이라는 소재에만 집중한 느낌이 든다면,
"Arrival" 이란 제목은 미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도래와, 새로운 시간 개념의 도래, 그리고 수많은 시간 중, 결국 현실의 우리가 루이즈와 함께 도래하게 된 현재라는 중요한 개념들을 모두 포용하는 폭넓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오프닝 줄거리에서처럼, 외계인의 갑작스러운 도래....를 메인 소재로 하는듯 페이크를 걸고 사실은 미지와 시간과 현재 같이 심오한 개념들에 대한 통찰을 전달하려던 영화였다고 저는 감히 주장해 봅니다.
그래도 뭐 이해는 합니다...
"어라이벌" 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은근히 알아듣기 힘들고, 한국어로 "도래" 라 그러면 뭔가 한국액션영화 같자나요?
이해해요 이해해 꿍얼꿍얼꿍얼꿍얼
... 쨌튼 다음 리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 이 영화 다시 보세요. 세 번 보세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