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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Sep 03. 2020

03. 일보다 중요한 사회생활

해야만 하는 인간관계, 다물어야만 하는 입

권위와 위계질서에 익숙해지기


처음 3개월 동안은 일뿐만 아니라 조직 내 위계질서에 대해서도 배웠다. 회사에서는 서로 평등을 지향한다며 다들 닉네임으로 불렀다. 그래서 나는 진짜 평등한 줄 알고 회사 대표한테도 시시콜콜한 걸 물어보곤 했다. 뭐 예를 들어 멀티탭 어딨냐고... 대표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있길래 물어본 건데, 사수가 바로 그런 건 자기나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고 언질을 줬다. "왜 물어보면 안 되는데요?"라고 질문했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차고 가버렸다. 사수는 이런 당연한 위계질서도 모르는 나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냥 넌 인턴이고, 이분은 너보다 윗사람이니까 쉽게 말 걸지 말라고만 이야기해줬어도 나는 내가 뭘 잘못 알았구나 했을 것이다. 아 여기는 평등한 곳이 아니구나 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당시 나에겐 나이를 막론한 친구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인문교육공동체에 가서 사귄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자기보다 어리건 나이가 많건 모두 서로 야, 혹은 닉네임을 불렀고 반말을 썼다. 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친구도 있었다. 나이를 잊고 사람을 대하면 예의를 모르고 나대지 않냐는 세간의 흔한 우려와 달리, 우리는 정말 평범한 친구 관계를 이어갔다. 우리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 나쁘면 싸우고, 말도 안 했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그랬다. 나이 때문에 장벽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친구가 이혼했다고 얘기했을 때는 해줄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긴 했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사람을 굳이 나이에 따라 나눠서 대한다는 게 어색해졌다. 특히나 고등학교에서도 선생과 학생이 서로 싸우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화해하고 그런 게 자유로웠던 나로서는 나이 관계없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문화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누구는 90년 12월 31일에 태어나고, 누구는 91년 1월 1일에 태어나서 언니 동생으로 나뉘고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게 정말 이상했다. 1년 위아래 나이에 따라 촘촘히 서열을 구분해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거북하고 번거로웠다. 나이 문제도 이런데, 직급 위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위계에 둔감한 나는 끊임없이 혼날 구실을 만들어냈다. 사무실이 이전하고 새롭게 자기 자리를 정하는데 내가 또 눈치 없이 두 번째로 '전 이 자리 앉고 싶다'라고 말한 거다. 막내니까 당연히 마지막에 남는 자리 골랐어야 했는데. 그 일로 사수한테 또 혼났다. 너는 거기서 네가 먼저 이 자리에 앉겠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하길래, 다른 사람은 되는데 전 왜 안 되냐고 물어봤다가 사수가 또 혀를 차고 가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사수는 나를 혼내고, 이런 상황이 매번 반복되자 나는 점점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랑 다르고 의문점이 생겨도 웬만하면 입 다물고 넘어갔다. 그게 내가 조직의 권위와 위계질서에 적응해 나가는 첫 발걸음이었다. '네 생각을 말하지 말라'. 다만 완벽히 적응하진 못 해서 참다 참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사수랑 대판 싸우기도 했었다. 지금이었다면 어차피 회사에서 계속 부딪혀야 하는 얼굴이니 따로 독대를 했을 것 같다. 왜 그러시냐, 사수님이 보시기에 제가 마뜩잖은 거 아는데 말을 해주셔야 저도 고칠 수 있다, 이렇게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등등 말이라도 해봤을 텐데. 그랬다면 뭔가 좀 달라졌을까? 적어도 끝에 가서 상처만 남진 않았을 것 같다.



옳고 그름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 새 여행상품 개발을 위한 약 일주일 간의 답사가 잡혔다. 근데 내가 사수와 한 방을 써야 된다고 했다. 사수가 남자였기 때문에 듣자마자 깜짝 놀라서 방은 당연히 따로 써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회사 사람들 전부가 웃었다. 우리는 성별 따라 따로 방 쓸 돈이 없다고도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당사자인 내가 싫다는데 굳이 남자 사수와 한 방을 써야 되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싶어서 대안프로젝트 멘토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멘토가 바로 정색하면서 회사 측에 미팅 요청을 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얘 아직 청소년이라고. 미성년자라고. 이거 문제 되면 어떡할 거냐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회의가 끝나고 사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걸 프로젝트 멘토에게 얘기하면 어떡하냐고 했다. '...? 그렇게 당당한 문제인데 왜 내 멘토에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그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사수는 멘토에게 말하지 말라며 일정의 절반은 자기랑 다니고 절반은 여자 담당자들끼리 다니라고 했다. 방은 결국 따로 잡지 않았다. 진짜 직원에게 쓰는 방값이 정말 정말 아까운 모양이었다.


어떤 문제는 회사 내부에서는 옳지만, 회사 외부에서는 그릇된 것이 된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회사 내부 실정에 맞느냐 아니냐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되기도 하고, 이상하고 제거해야 할 것이 되기도 했다. 열아홉의 나는 회사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내 여행을 기획해보지도 않았고, 일 시작한 지 4개월 남짓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하나만 입 다물면 모두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웃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불편한 건 내가 이상한 거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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