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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Oct 30. 2020

10. 평점 평균 4.5가 내게서 뺏어간 것들

생존을 위한 워라밸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A+ 이외의 학점을 받아본 적이 없다. Pass/Non pass로 평가하는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에서 A+를 받았다. 학점이 좋으면 누구나 예상하는 장점이 따라온다. 교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 높아진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 전액 장학금과 학교 내에서의 좋은 평판 등. 이 글에서는 그런 진부한 얘기는 뒤로 하고, 대학을 다닌 3년 반 동안 '4.5 만점'이라는 타이틀이 내게서 빼앗아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력에 대한 인정


우리 학과는 인문계 중에서도 과제가 많기로 악명 높은 학과였다. 꼭 팀 과제와 개별 과제를 함께 내줘서 더 고생스러웠다. 교수님이 기분 좋으면 즉석에서 내주는 과제들도 있었다. 재학 중 나는 교양 과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전공과목을 위주로 수강했고 그래서 더 과제량이 많았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을 병행했었기 때문에 주 5일 아침 9시까지 학교에 등교했고, 보통 저녁 6시쯤 집으로 갔다. 따라서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일하는 것 외에 모든 스케줄을 학업에 맞췄다. 학기 중에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은 일절 없었고, 1년 중 약 8개월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학업에만 매달렸다. 

1학년 때는 할 만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나서 전공 내용이 심화되자 더 힘들어졌다. 또 나는 2학년부터 복수전공을 목표로 타 학과 전공과목도 같이 수강했었다. 1학년 때는 보통 새벽 2시경 잠이 들었다면, 2학년부터는 밤을 새우고 쉬는 시간에 쪽잠을 자면서 공부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핫식스 같은 각성 음료는 너무 자주 먹어서 항상 집에 한 박스씩 구비해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내 노력은 알아주지 않았다. 타인들의 시선에서 단순히 나는 '사람이 아닌 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 정도로 비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우리 집에서 머리가 제일 나빴다. 언니와 엄마가 나보다 똑똑했고, 특히 언니는 글도 잘 썼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학업이나 공부 같은 걸로 집중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는 언제나 언니가 점수가 더 좋았다. 바뀐 거라면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다는 점이고, 그랬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 후 최선을 다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내 모든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


"너는 좋은데 네 성적은 좀 그래". 그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어쩌라는 걸까? 저런 말을 나한테 왜 하지?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저 말이 나를 보는 시선을 설명해주는 가장 명확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친구가 극도로 적었고, 친해져도 일정 정도의 벽이 내 주변에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이 가진 다양한 면모보다는 그냥 '4.5 누구'라고 인식해버리고, 그게 마치 나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인 것처럼 평가했다. 그렇게 나는 구별당했다. 범접할 수 없는 누군가로 대상화되었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매 학기 4.5 만점을 받은 내 성적은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화젯거리였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언제나 듣기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여럿 오갔다. 몇몇은 짐짓 나를 생각해주는 양 말을 보탰다. 특히 내가 근로장학을 했던 팀의 팀장은 나에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놀기도 하고 봉사활동도 다니라고 계속 말했다. 정말 끊임없이 말했다. 하루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지가 뭘 안다고 저딴 식으로 사람한테 지 생각을 하염없이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엄마한테 울면서 털어놨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들도 나와 놀고 싶어서 했던 말이겠지만, 똑같은 말을 수십 번씩 들으니 나는 귀에 인이 박일 지경이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술 마시고 수업 빠지면서 대학을 다녔어야 했나? 나는 단 한 번도 동기들이 학업에 열중하지 않는다고, 잘못 살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대학 바깥에서 시도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입장이었다. 학교가 너의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실현시켜주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게 잘 맞아서 학점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거고, 다른 이들은 각자의 꿈대로 살고 그 결과를 만들어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각자의 삶을 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내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나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명확한 점수가 있는 만큼 평가받기가 더 쉬웠다. 쟤는 대학생활을 즐길 줄 몰라. 쟤는 맨날 공부만 해. 우리랑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 ...그래. 그렇다고 치자. 어느 순간 놔버리게 되면서 그렇게 내 대학 인간관계도 끝나버렸다.



안정적인 삶의 방식


3학년 2학기부터 나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서 손잡이를 보면 그것이 교수대의 밧줄처럼 보였다. 저기다 목매달고 죽고 싶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아침마다 했다. 저녁에 자기 전에는 누가 내 배를 찔러서 과다출혈로 죽는 상상을 했다. 그게 죽음을 생각하는 나의 하루 루틴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루에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때는 그냥 내가 요새 좀 힘들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는 또렷한 생각을 하는 걸 거부했다. 어느 순간부터 학기 중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번 마시면 진탕 취할 때까지 마셔서 집에 와서 우는 게 일상이었다. 너무 힘들다고 못 해 먹겠다고 울면서 과제를 했다. 나도 동기들과 학교의 잔디밭에 앉아서 술 먹고 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근로장학을 하러 가야 하니까, 근로장학 끝나면 또 과제하러 집에 가야 하니까 매번 갈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을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왔다.


술에 취한 상태로 질질 짜면서도 과제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대학에서의 내 삶은 내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고자 매진했고, 그 와중에 생긴 내 정신의 침전은 일종의 부수적 피해 같은 거였다. 내가 스스로 만족한 과제를 제출했을 때, 그리고 목표한 성적을 받았을 때 느끼는 희열은 일종의 마약 같았다. 내가 부서질 지라도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는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처음에는 분명 하고 싶어서 했던 공부인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이제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니까'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랬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다행히 이전에 학점을 많이 수강해놔서 4학년 1학기 때는 9학점만 들을 수 있었고, 그때 휴식의 시간을 좀 가진 것 같다. 다만 조기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버려서 충분한 회복을 할 수 없었다. 더 쉬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내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정말 하나도 몰랐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그것이 평점 평균 4.5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아하는 공부는 무조건 잘하고 싶었고, 집에 손 벌리면서 대학을 다니고 싶지 않았다. 또 근로장학은 교수님이 쟤만 이뻐하셔서 성적 잘 주는 거 아니냐는 시기 어린 말의 방패막이 됐다. 그래서 나는 일도 공부도 다 하면서 성적도 잘 받는다고, 어딜 가서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때 근로장학을 해서 모은 돈으로 매년 학과에서 진행하는 해외여행 수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 보내주는 유럽여행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근로장학을 그만둘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공부에 쓰지 않겠다. 대신 내 마음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살펴보고, 동기들과 잔디밭에 앉아 맥주 한잔 하는데 쓸 것이다. 몇 학기 정도 4.5 안 받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그리고 날 평가하려는 사람들한테 적극적으로 맞서고,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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