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 관찰기
나는 큰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복잡하고, 달성하기 어려워보이는 과제가 눈 앞에 주어지면 그 어려움만큼 흥분된다. 당연히 그런 과제에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모시려면 듣는 귀를 여는 것이 필수적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나도 말이 적은 편이 아니다. 20대 초반까지는 "나 이거 하고 싶어" 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상대방의 얘기는 들을 줄도 모르면서 혼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누가 함께 일하고 싶어할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은 '협업'이 기본인데.
팀으로 일한다는 것에 관해 몇 번의 고꾸라짐을 겪고 나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협업'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했다. 일단 눈을 들어 항상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몇 가지 특징들을 정리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상부터 부드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줄 것 같은 보살 같은 느낌적인 느낌.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적절한 눈 맞춤과 리액션을 선 보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느낌이 굴종적이거나, 아랫사람 같지 않고 말 그대로 친근한 이웃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는데, 그들은 뭔가를 주장할 때 명확하고 판단지향적이고 효율적인 문장 구성보다는 우회적이고 제안지향적이며 정성이 느껴지는 문장을 주로 썼다. 예를 들어, "그 논리에 따르자면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제가 파악하기로는 지금은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도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문장으로 대화의 서두를 열었다.
일 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요이땅 하고 곧바로 일 얘기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좋죠.', '주말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등의 적절한 스몰토크 주제를 모임 앞에 깔아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시작했다. 사람들의 긴장을 한 번 풀어주고 일적 대화가 지나치게 날 서지 않게끔 한 것이다.
같이 일할 때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특히 대화 중 거절과 반박이 지속적으로 오고 가면 일을 떠나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 문제로 번지기 십상이다. 이 때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는 '너와 나의 말 중 누가 맞는 지 옳고 그름을 따지겠어!'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아닌, 대단히 수용적으로 보이게끔 상대방의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았다.
그들은 일 외에 다른 주제로도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새 업무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부터 시작한 대화는 종종 사적인 고민 상담의 자리까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일 외에도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당신이 어려움을 겪을까 염려한다는 것을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할 줄 알았다.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면 그들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기억이 없다. 간혹 내 고민과 결이 비슷한 자신의 고민을 공감조로 털어놓는 정도였던 것 같고, 대화가 끝나고 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해서 속이 후련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은 것은 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리액션과 동조, 각종 제스쳐로 내 이야기에 반응 하느라 바빠보였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들이 했던 것은 함께 일 하는, 또는 일 할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여는 작업이었다. 함께 일 하는 사람들끼리 신뢰, 존중, 연대감이 먼저 쌓이지 않으면 긴 호흡의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선구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오히려 신뢰, 존중, 연대감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의 긍정 경험이 쌓이면, 일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필요한 신경전을 줄이고 상대방을 의심하느라 정신력을 소모할 필요 없이 일을 쭉쭉 잘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곁에는 항상 함께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목표에만 매몰되고, 성과를 보여주는 것에만 집착하다보면 내가 조직에서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관찰했던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더 멀리 가고 싶다는 것을 되새긴다. 내가 다른 이들과 손 잡고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들이 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듣는 귀를 더 열고, 말은 더 신중하게 하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30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