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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Aug 31. 2020

00. 열아홉부터 스물아홉까지

대안학교 졸업 후 진로 실험 기록

처음 글감을 저장해둔 것이 지난 2019년이다. 글 쓸 용기와 에너지, 모두 없어 망설이던 것이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조금이지만 글로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쓴다. 나의 시행착오에 대한 기록이 누군가의 초행길에 작은 불빛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쓴다.


이 글은 대안학교 졸업 후 대학에 바로 가지 않았던 내가 겪은 진로 실험에 대한 기록이다. 열아홉부터 스물아홉까지, 일 경험과 학업 경험들을 모두 포함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것으로 먹고살고 싶은지 찾아가는 과정들을 서술하고자 한다. 나는 그동안 학업과 병행하며 공정여행사 인턴, 계약직 연구원, 집필 프리랜서, 여러 가지의 아르바이트 등을 해왔다. 


스물아홉, 올해로 졸업한 지 꼭 10년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꼽으라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안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을 꼽을 것이다. 나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중학교 때 얻었던 만성적 우울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가 기숙학교로 운영되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개성 강한 친구들과 3년 동안 기숙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다양성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볼 때 내 기준에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보다는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안학교들도 학교들마다 커리큘럼과 분위기 등의 차이가 크다. 나는 인가형 대안학교를 졸업했다. 인가형 대안학교는 교육부에서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비인가 대안학교들 보다 학비가 좀 더 저렴하다는 점, 그리고 졸업하면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비인가형보다 수업 커리큘럼의 자율성이 떨어져서, 한 학기를 통째로 외국을 여행하며 소위 '길 위의 공부'를 실천하는 등의 교육은 실시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학교들에 비하면 교육과정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수업은 주로 자기 주도형 체험식으로 진행되었고, 학생들 스스로 프로젝트를 짜서 실행하고 합평하는 시간 속에서 선생도 학생도 성장해나갔다. 문제가 생기면 3주체 원칙에 따라 선생, 학생, 학부모가 모두 모여 격한 토론을 벌였고, 다들 치열하게 다투고 화해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지금의 내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첫째, 너의 옳고 그름은 절대 진리가 아니며, 공고한 논리적 사고체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호불호에 가깝다. 둘째,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 평가보다는 관찰을 지향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다 좋은 길이다. 셋째, 입시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앎을 탐구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정말 좋다. 넷째, 권위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다섯째, 친구가 되는 것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등등.


선생님들로부터 대학을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삶,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말 많이 고민하고 실험해봤다. 원래는 스스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만 알았는데, 여러 가지 학교 행사들을 기획하고 제안하고 실행해가면서 내가 생각보다 활동적이고, 종합예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을 관련 과로 지원했는데 뭘 몰랐던 나는 수시를 1개만 써서 똑 떨어져 버렸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참말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내가 대안학교를 다니던 2007년부터 2010년 당시만 해도 대안학교 졸업자들의 대학 입시 외 졸업 후 진로를 지도해줄 선생님이 없었다. 학생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갓 졸업한 열아홉이 더듬더듬 찾아나가긴 벅찬 실정이었다. 그때 나는 운이 좋아서 바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모집하는 대안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운이 나빴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한 공정여행사에 인턴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살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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