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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pr 11. 2018

스스로 자전거를 버리다

아파트 상가에 자전거 상점/수리센터가 있다면

먼저 변명처럼 이 글의 전제 사항을 말한다. 결코 일반화 가능한 내용이 아니다. 오직 개인적 사견이자 본 경험일 뿐이다. 따라서 확대 해석은 자재해 달라.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친구가 자전거를 타는 것에 강렬한 소유욕과 경험욕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스폰서이자 보호자인 어머니 앞에 얌전히 앉는다. 그때부터 나의 자전거 인생은 시작됐다. 다행히 주말마저 뵙기 힘들던 아버지로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뒷좌석을 잡고 내가 균형을 잡을 동안 잡아 주셨다. 더 다행인 것은 잔소리 없이 잡아 주시기만 했다는 점이다. 친구들이 타는 모습을 얼마나 뚫어지게 보아 두었는지 타는 방법에 대한 강의는 필요 없었다. 단지 스스로 바퀴 두 개를 이용해 뛰는 속도보다 빠르게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무난하게 자전거를 업그레이드 해왔다. 처음엔 만화에서 나온 ‘산들바람’ 시리즈(장바구니는 앞에, 뒤에는 보조 좌석이, 바퀴는 28인치 정도지만 여성스러운 몸매를 가진 자전거; 일명 장보기용 자전거)처럼 생겼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바퀴의 인치가 커지고, 나름 두 손 놓고 타는 묘기도 익히며 고등학교에서는 사이클 형태의 경주용 자전거로 바뀌었다. 물론 경륜장에서 탄 적은 없지만, 동네 한 바퀴는 충분히 매일 돌았고, 대공원 후문의 경미한 내리막길은 두 손 놓고 (머리는 뒤로 젖히지 않았다) 타는 연습을 한 것이 전부였다. 심부름은 걸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더욱더 자전거 타기는 비밀스럽지 않은 사생활이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나이 소유욕과 경험욕은 바퀴가 네 개고 속도는 사람을 죽일 만큼 빠른 것으로 전환됐다. 더구나 ‘야! 타!’라는 말은 할 용기도 없지만 그곳의 골목을 유유히,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 네 개를 모두 내려 오픈카는 아니지만 바람이라도 종횡무진할 수 있게 다니고 싶었다. 물론, 자동차로 유혹할 수 있는 대상에 애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쳐다봐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 앞에, 아니 부모님 모두 앞에 얌전히 앉는다고 해결될 금액은 아니었다. 덕분에 ‘아는 사람’의 차는 거의 대부분 타 보았다. 오픈카를 제외하고는. 오픈카는 영화에서 보니 머리카락을 폭탄 맞은 것처럼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머리카락이 얇은 나에게는 지양할 괴물이다.


마음속에 바라기만 했던 자동차는 어느 날 무슨 대화가 트리거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운전면허를 따면 사주겠다!’ 그래서 1종에 붙지 못하고(언덕이 싫어졌다) 2종 자동으로 연습도 않고 시험장에서 기어를 어디에 두고 출발하는지 묻고는 바로 땄다. 그러나 자동차는 자전거와는 다르다. 같은 거리를 지나갈 수만 있으면 자전거보다 빨리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조수석에서는 내비게이터였던 내가 헤드라이트를 비춰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부산도 가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 문명을 변화시킬 때는 극단적 상황에 몰려 있을 때가 많았다.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결국 나는 무사히 그 골목에 도착했고 속옷까지 젖은 모습으로 등을 곧게 편 상태에서 가능한 헤드라이트 바로 앞까지 눈이 튀어 나가도록 바짝 앉은 채 천천히 골목을 지났다. 엑셀에서는 발을 때고 브레이크 만 조절하면서.


운전 경력이 20년이 넘게 된 지금까지 운전에 익숙해지면서 반경 1Km가 넘는 곳은 승용차로 이동했다. 과거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센트럴 파크까지 59분에 주파하던 나의 각력을 무시한 채로. 마트는 당연하다. 사실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바퀴 달린 트레이를 이용하면. 걷기를 운동 종목으로 정했을 때 3Km는 걸었다. 구립 도서관에도 승용차가 없으면 가기 싫었다. 대여 마감 날짜가 임박하면 싫은 듯 버스를 탔다. 탄천을 따라가면 3Km 각력이면 도서관에 다녀와 기분 좋게 담을 흘릴 수 있다. 운동할 만한 공원에 갈 때도 승용차를 탄다. 웬만하면 좋은 곳이 동기 부여에도 좋을 테니까. 집 근처에 탄천이 있어서 운동 거리는 충분히 나오는데도. 


운동을 할 것인가, 편하게 빠르게 다녀올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문제는 물론 아니다. 요점은 반경 1Km에 있다. 1,000m. 내 보폭을 60cm로 가정했을 때 1,600~1,700 걸음에 갈 수 있는 거리. 등을 자연스럽게 펴고 턱은 약간 당기고 팔은 자연스럽게 흔들면서, 발끝이 양쪽으로 벌어지거나 무릎 간격이 넓어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가능한 발끝으로 몸 전체를 탄력있게 올리며 걸으면 효과는 증가된다. 달리기에서 흘리는 땀과 장거리 걷기에서 흘리는 짬은 성분이 다를까? 슬퍼서 울 때의 눈물 성분과 기뻐서 울 때의 눈물 성분이 많던 적던 다르다던데. 운동 효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반경 3Km로 승용차 금지 거리를 정한다면 내 몸 상태는 좋아질 것이다.


노동과 운동은 효과가 다르다고 한다. 체육관에서 공원에서 탄천에서 운동하는 것과, 장 본 20L(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2 봉지를 1층에서 계단으로 옮기고, 거실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청소기를 돌리고, 하루에 1~2회 설거지는 서서 하고, 간혹 손 빨래를 하고, 간혹 유리창을 닦고, 젖은 이불 빨래를 들어 올리는 활동이 말이다. 움직이는 형태는 다르지만 활동임에 분명한데. 몸이 알고 있는 것인가, 하나는 축적의 활동이고 하나는 소모의 활동이라는 것을. 두 활동 모두 칼로리를 소비하지만.


우리는 승용차를 통해 생활 편의, 시간 절약, 공기 오염을 이루어 왔다. 반경 1Km 이내는 주차 시간을 포함하면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반경 3Km는 걷기엔 귀찮고 멀며 승용차를 타기엔 가깝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보충하거나 핸들 높이를 조정할 곳이 없다. 아니 공유 자전거의 확산 속도가 너무 늦다. 우리는 스스로 편한 것을 선택하고 불편한 것이 사라지게 했다. 덕분에 몸에 좋은 활동은 멀어지고 몸에 좋지 않은 활동을 가까워졌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공유 자전거가 설치되거나 자전거 스토어가 설치된다면 어떨까? 단위 면적 당 거주 비율이 높은 아파트가 주거 단위가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주택지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상권도 형성된다. 학원 가는 아파트 근처에서 융성 된다. 아직 언덕 위에 있는 학교가 꽤 되지만 평지에 위치한 학교도 있다. 체육 시간과 학교 행사 때는 운동장이 부족하지만, 주당 혹은 월당 활용 시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가 자전거의 거점 혹은 정비 포인트가 되는 것이 적당하다 생각했다. 아파트 상가의 특징은 마트에서 승용차로 공수해 오는 물품은 판매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은 집 안에 커피 메이커를 갖추고 있어서 카페를 이용하는 빈도도 적다. 세탁소도 약국도 모두 마트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농구공에 바람이 빠지면 마트까지 가야 한다. 자전거에 바람을 넣으려면 자전거 상점을 찾아 다녀야 한다. 한 번 구매하면 다시 찾을 일이 없는 핸드폰 가게는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데 말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필수 구매를 보다 잘 해보려고 노력한다. 필요한 것이 곁에 있으면 자주 이용한다.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한다. 굳이 어깨에 가방을 매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보관대에서 교실까지, 자전거 보관대에서 아파트 자기 방까지 옮기면 된다. 가방 무게로 척추의 모양이 변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사물함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꼭 공부 못하는 얘들이 온갖 참고서를 가방에 넣어 다닌다.’ 아파트 단지 내 자전거 상점에서 장 볼 때 가지고 다닐 바퀴 달린 트레이도 취급했으면 좋겠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것은 부담스럽거나 부족하다. 걸을 이유를 건강에서만 찾는다면 부족하다. ‘이 정도는 걷지’라는 마음이 뉴욕에서처럼 떠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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