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받고 있어

첫사랑의 상대가 되다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예전의 당신이 아니에요! 예전엔....”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을 받고 있다. 누군가가 마음속에 처음 품은,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첫 사랑을 내가 받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다. 왜 나지?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아니 그 누구도 달뜬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내 앞에, 어린 저 아이가 서 있다. 끝없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것이 온통 아이의 뇌리에 새겨질 것 같다. 꼼짝도 못 하겠다. 적어도 내가 어른인데, 아이는 다소 긴장되어 보이지만 떨지 않는데, 난 이대로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호흡도 잘 되지 않는 듯, 온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동생과 나는 4살 차이다. 그 아이와는 7살 차이다. 4살 어린 동생도 어린아이로만 보고 툭하면 무시하곤 하는 나인데, 7살 차이인 아이에게 꼼짝 못 하고 서 있는 내가 이상하고 신기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게는 꿈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겨, 마음이라도 상할까 봐 내 앞에서 조심하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물론 연애라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해서 교제라는 것을 했었다. 교제가 별 것인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교제 아닌가? 시간을 공유하며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누군가 내 옆에 있고, 어깨가 닿아 한겨울 눈발마저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경험.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이건 아니다! 아이를 설득하자! 상처만 남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이 아이가 보내는 눈길은 포근했다.


상대가 7살 어린 아이이든, 동갑이든, 이런 눈길, 시선의 온도는 싫지 않다. 아니 바라던 바다. 다만 내가 가진 사회적 관념과 상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긴장하는 걸까? 아니면, ‘나에게 아직 누군가로부터 따스한 시선을 받을 요소가 존재하는 것인가!’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 지도.


“커피, 한 잔,...”

“그래, 그러자.”

‘이 만남, 얼마나 가게 될까?’


모든 것이 서투르다. 아마 긴장을 해서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도, 우리 성인들이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항목들을 처음 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부분도 있다.


“뭐 드실래요? “

“분위기는 어때요?”

“오늘 이쁜데요!”


마지막 친구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외출 준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진 않을까? 나 역시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 않을까? 조금씩 마음을 잠식해 들어오는 아이의 행동이 좋다가도, ‘어린 아이야!’라는 생각에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내 모습이 신선하다. 서툴게 다가오는 아이가 신선하다. 저녁 카페 골목을 아이와 함께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려서인지, 아이의 열정은 파릇했다. 내가 불편하지 않게 신경 쓰는 모습이 아이 같지 않은 점도 신선했다. 그 사이사이 불쑥거리는 서투름도 신선하다. 삐뚤어진 목도리를 바로잡는 내 손길에 꼼짝도 못 하는 아이가 신선하다. 나와 보조를 맞춰 커피를 마시는 아이가 신선하다. 티끌 하나 없는 녹색 불꽃이 너무나 신선하다.


약속 시간에 일부러 늦게 나간다.


“아니,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요.”


이런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곳을 좋아해요?”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신선하다. 상대가 아이가 아니라 내가 젊어진 느낌이다. 무엇을 해도 즐겁고 재미있다. 같이 있는 사람으로 인해 평소 일상이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며 새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때로는 먼저 전화를 건다.


“어! 안녕.. 하세요.”

“이젠 말 높이지 마. 우린 친구잖아!”


이런 밀당, 나에겐 처음이다.


높임말을 금지하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내게 활력을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근이 있을 때면 전화가 없어도 회사 앞에 서 있는 아이. 손에는 언제나 따스한 라테 한 잔. 어느새 알았는지 샷이 두 번 들어간 진하지만 부드러운 라테. 그 아이가 주는 감정이 이렇게 진하고 부드럽다.


‘이대로는 안돼!’


어쩌면 이 아이가 앓고 있는 첫사랑의 열병이 사실은 내가 앓고 있는 첫사랑의 감정은 아닐까? 혹시 이 아이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그런 감정과 기분이 내게도 처음이기 때문은 아닐까? 되뇌어보다 그만둔다.


‘이대로는 안돼!’


내게 소중해지는 만큼 더 이상 가까워지면 안 된다. 눈은 내릴 때 아름답지, 내리고 나면 거리는 현실로 돌아간다. 지나가는 차에, 사람에 밟혀 새하얀 눈은 진회색 진창으로 변한다. 밤새 얼어붙은 눈은 얼음이 되어 굳는다. 겨울에 봄의 기운을 느끼고 그 포근함에 감싸여 있는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지금은 겨울’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7년이란 세월을 먼저 태어나, 얼어붙은 사회를 체험한 어른이 주어야 할, 마지막 선물은 아닐까? 뜨거운 열정과 파릇한 신선함을 내게 선사하고, 누군가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던 기억을 남겨준 이 아이에게 줄 마지막 선물은 아닐까?


“어떻게 이래요? 그러지 않았잖아요! 이젠.. 제가.. 싫어요? 싫어졌어요?”

‘아니, 사실... 이것이... 내 모습이야. 널 만나기 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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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기억은 누구나에게 크던 작던 마음 한 구석에 묻혀 있다. 첫사랑의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도 크던 작던 마음 한 구석에 사랑받은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도 있지 않을까? 나의 첫사랑은 어떻게 느꼈을까? 끝까지 내가 아이 같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