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브리엘의오보에 Nov 11. 2017

도시를 논하다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모는 시골 출신이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그대로 거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가? 시골의 장점을 망각한 것은 아닌가?

'도시'라는 단어에서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편리함, 세련됨이다. 편리함이란, 거주지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음이다. 세련됨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일하는 모습과 극장, 레스토랑, 백화점,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이다. 적어도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모습들을 도시는 부분 집합으로 보유하고 있다.

'시골'이라는 단어에서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연이 살아 있음과 농수축임광업 활동이다. 인공적 경작지가 가득하지만 그 주위를 산과 강이, 해안선에는 바다가 감싸고 있고, 자동차와 매연이 적은 녹지가 가득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식량과 자재를 생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도시에서 40년 이상을 살았다. 태어난 것도 부산이고, 아버지 근무 위치 변경으로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에서만 40년 이상을 살았다. 지금은 수도권으로 이사해 몇 년째 살고 있지만 생활환경 측면에서는 서울과 거의 차이가 없다. 가까운 곳에 백화점과 마트와 극장이 있고 30분 정도 운전을 하면 대형 서점과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가 있다. 즉, 서울이 가진 편리함과 세련됨을 그대로 영위할 수 있다. 물론 건물의 높이는 서울보다 낮지만, 서울의 높은 건물이 나와 큰 관련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도권의 생활이라 서울보다 불편한 점은 없다. 오히려 발전하고 있어서 처음 이사 왔을 때보다 편리함과 세련됨은 향상되고 있다.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국도로 접어들게 된다. 그래서 시골이 가진 살아 있는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고 농축업 활동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서울보다 자연에 가까워 양쪽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어 더 나아 보인다.

다시 말해서, 나는 상경한 사람이라기보다 위성 도시에 살면서 도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 서울을 벗어나게 된 계기는 살인적인 전세 보증금 때문이었다. 2년 계약이 완료되는 시점에 전세금이 몇 천만 원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수도권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도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한계 사항을 하나 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적어도 내가 인식하는 도시는 생산지가 아니다. 식량도, 자재도, 원재료도 생산하지 않는 소비의 세계이다. 도시는 공공 및 민간 서비스가 운영되는 서비스 세계이다. 시골과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가지고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서비스 생산 세계이다. 그러므로, 국가 단위에서 보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러한 진취성은 제한적이다.

예를 들면, 도시 거주자들은 마트에서 마련한 재료로 제한되는 생활을 한다. 인간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환경은 의식주이다. 그 중 마트는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을 유통하는 서비스 조직이다. 그들은 판매 가능성에 따라 매대에 물품을 전시해 놓는다. 대중 매체에서 호기심 끌리는 식재료나 생활용품이 나오더라도 판매 가능성이 적을 경우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다. 오히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러한 상품을 취급하는 국내외 유통 사이트를 통해 마트에 없는 물품을 구한다. 인터넷으로도 구할 수 없는 물품은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일 마트가 기능을 정지하게 된다면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전통 시장이나 소규모 점포들이 상권을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공급 물량이라는 측면에서 마트가 정지된 영역을 그대로 처리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더구나 마트보다 더 제한적인 물품을 팔정도로 그들의 재무력은 약하다. 한 달에 두 번 강제로 영업을 하지 않는 마트 휴일 정도는 이들 소상인을 통해 필요한 것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마트가 1개월 정도 유통을 하지 못하면 마트 거래 영역 내 거주자들은 필요한 물품을 구하느라 우왕좌왕 하게 된다.

지방은 어떨까? 기업 중심의 교육이 도시와 지방, 시골에서 행해지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시골은 자연의 산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산이 가까워 어느 정도의 식용 식물은 산에서 구할 수 있다. 물론 현재 마을이 없어질 정도로 인구가 줄어드니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정도를 겨우 커버할 상황이긴 하겠다. 그러나 인위적 유통 채널의 정지에도 미약하게나마 대안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지방 혹은 시골이다. 더구나 그 곳은 지방마다 생산하는 물품은 다르지만 적어도 산지이므로 특정 물품은 도시보다 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시 마트가 마비되면 저렴함은 날아가 버리겠지만.

최근 도시에는 발코니 밭이나 옥상 밭에서 야채를 키우는 사람들이 4~5년 전보다는 늘어나고 있다. 취미든 생활을 위해서건.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건물 옥상에서 벼도 재배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상대적으로 건강한 식재료를 구하고 싶은 이들이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 주변에 가족 텃밭을 구매해 주말 농장을 운영하는 가구도 일부 존재한다. 레스토랑 중에도 소용되는 식자재를 직접 농장을 운영해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곳도 존재한다. 전체적인 비율은 미약할 수 있어도 도시 내 생산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시 생산 환경은 일부 재배에 성공한 사람들의 유희로 취급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의미적 측면에서는 진지하게 고려할 부분이기도 하다.

서비스 기업을 통하지 않고는 필수품을 구할 수 없는 세계가 도시이다. 따라서 내가 노동하여 마련한 재원을 가지고 그들의 고객이 되는 외연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 도시 내 의식주의 주도권은 유통 기업이 좌우한다.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정부 기관의 노력도 존재하지만, 모든 도시 내 마트가 협력하여 바질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도시인들이 바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질이 없다고 발코니에서 기르기 시작한다해도 성장에 필요한 시간이 소요된다. 

봄에 산에 올라 쑥을 캐서 떡을 하거나 국을 끓이는 일을 도시에서는 할 수 없다. 지방으로 시골로 내려가야 구할 수 있지만, 국립공원처럼 자연 산물을 구할 수 없게 제한된 곳에서는 지천에 널려 있더라도 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우리는 쑥을 구할 수 있다. 계절마다 나는 나물류를 국립공원을 침략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는 것이 시골이다. 이런 면만 본다면 도시는 과연 편리함이란 이미지를 앞으로도 가져갈 수 있을까? 마치 유통 기업에 지배받는 모습이지는 않을까? 그들의 사업성 판단에 따라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자재가 제한되거나 사전 통보 없이 바뀌고 있다. 내가 돈을 내지만, 원하는 물품을 신청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유통 기업에 의해 내려진다. 그런 면에서 도시는 편리할 수는 있어도 자유롭지 않다.

시골이나 지방은 아직도 품앗이가 성행한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는 추세라, 노인들만으로 농사를 진행해야 하니 한 마을이 뭉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집성촌이 아니더라도, 혹은 너무 우리 집에 대해 노출되는 점이 많더라도 그들은 지역사회라는 협력 네트워크를 자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도시는 단위 면적당 거주 수용력은 대단하지만 점차 1인 가구가 늘고 개인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도시는 외롭다. 다양한 문화 시설로 외로움을 지워나가긴 하지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보다 내가 사정해야 할 사람을 찾아야 할 판이다. 매우 부정적 시각의 글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기도 해서 외로움이 증가하고 있다.

어제도 그제도 시시덕거린 이들은 많고, 술에 취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 고마운 사람들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나와 힘을 합쳐 줄 사람을 도시에서 구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마트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골이나 지방은 거주 연령대가 높고 경제적 여유가 없다보니 기대하는 만큼의 큰 도움은 받을 수 없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이긴 해도, 무상으로 산양유를 제공하는 출연진에게 마을 사람들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야채며 달걀 김치 등을 넣어주는 모습은 매우 흐뭇하다. 모든 시골과 지방이 다 그렇지 않다고 할 분들이 많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본다. 도시에서도 그렇게 품앗이를 잊지 않고 행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발견하질 못했다. 직장 동료들 간의 협업이나 협력, 그들과의 사적인 교류는 내가 직장 안에 있을 때였다. 그 직장을 벗어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사람들 간의 연을 다시 맺어야 한다. 지난 동료들은 가끔 만나 술을 마시는 정도, 헤어진 후의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사람 농사에 실패하셨네요. 전 안 그런데."

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 기업 전체가 도시 안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기업부터 스타트 업까지 도시에는 직장이 존재한다. 대학을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몰려든다.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에서 일하는 것이니 도시인이라 말하겠다. 

지방이나 시골은 농사일을 할 젊은이들이 부족하다. 제주의 어떤 귤 농장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 장기 작업이 가능할 경우 왕복 비행기 표까지 주고 일이 끝나면 제주 관광도 시켜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농사일을 예로 들어보자. 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매일 같이 논과 밭에 나가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한다. 1년 동안 생산한 것으로 1년 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 휴식 때 즐길 문화 시설도 부족하다. 매일 작업복만 입게 되어 세련된 옷을 입을 여유도 없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소득 증진을 위해 방안에 허리를 굽히고 앉아 또 일을 해야 한다. 전혀 세련된 일이 아니다.

아침에 지옥철을 타더라도,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하는 모습, 반듯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보고를 하고 PT를 하는 모습, 크던 작던 할부 가득하긴 하지만 자가용을 끓고 출퇴근이나 근교로 여행을 가는 모습,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큰 맘 먹고 데이트를 하는 모습, 도시적 패션으로 치장하고 다이어트로 날씬하고 세련된 모습을 한 남자와 여자들이 없는 시골이나 지방의 생활이 싫을 지도 모른다. 답답할 지도 모른다. 온 마을이 시어머니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할 곳이 많고 상대적으로 청정한 환경이 있으며,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귀가하는 생활이 좋아 보이는 것은 아직 시골이나 지방 생활을 못하고 야근과 철야로 점철된 도시 생활만 해서일까?

시골이나 지방은 휴가 때 밀린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곳일까? 서점에는 2,000만원으로 지방에 내 집을 지었다는 은퇴 저자의 책도 꽂혀 있다. 이러한 불완전한 도시에서 나름대로 노력하여 노후 자금을 모아 내 집을 짓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밟아야 할 인생의 경로일까?

스타트 업은 정보 기술이나 디자인 제조업에 국한되는 것일까?

마스나가 게이코의 '로컬 지향의 시대'에는 시골이나 지방의 폐가 혹은 버려진 건물을 활용해 그 지방에 경제적 활력을 더하는 스타트업의 사례가 소개된다. 그러한 성공 사례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도시와 지방의 인터넷 속도가 동일하다는 환경적 조건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KT의 과거 CM을 보면 지방의 젊은 농부가 생산한 채소를 인터넷 쇼핑을 통해 직거래 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엔 산지 직거래 사이트가 꽤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제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 새로운 생활의 장으로 떠올라야 되지 않을까? 점점 높아지는 집값으로 고통 받는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폐가를 이용하고, 산지의 생산 활동을 기업화 하면 도시보다 살기 좋은 거주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는 한, 베스트셀러 작곡자가 되지 않는 한, 지방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소수의 세계일뿐이다. 오히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시골로 지방으로 내려가 노인들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기술로 보완해 보다 건강한 생산을 하는 것이 불완전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나은 삶은 아닐까? 기존 1년 내내 노동하여 1년에 한 번 소득을 얻는 체계를 다양한 밭작물이나 특수 작물을 통해 수입 획득 기회를 늘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은 아닐까? 도시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긴 서비스를 지방이나 시골에서 창출해 고객을 끌어 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회사원 기술만 몸에 익은 내가 과연 산지의 기술을 배워 사업화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시간보다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두서없는 글이 탄생한 것은 도시 생활에서의 한계를 직접 몸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내가 한계를 느끼지 못했다면 이런 글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방이나 시골로 귀향 혹은 귀농을 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사례들도 읽어 보았다. 아마도 내가 그 실패군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가리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에 너무 빠져든 것은 아닌가?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잊지 못해서는 아닐까?

새로운 일은 도시든 시골이든 쉽지 않다. 해보지 않은 일에의 도전은 익숙해지기까지 수많은 상처와 좌절을 겪을 것이다. 도시 생활의 한계를 느낄 정도의 상처와 좌절보다 더 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마을에 섞이지 못하고 도시보다 더 외롭게 살지도 모른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탈이 안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불완전하다. 적어도 내게는 불완전하다. 완벽하다거나 완전한 세계가 지방이나 시골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안으로서, 성공할 대안으로서, 지방과 시골을 보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지방과 시골에서의 새로운 출발이 자꾸 눈에 밟힌다. 뭔가 내가 효용 되는 분야가 반드시 있을 것만 같다. 부족한 노동력에 손을 보태는 내가 환영받을 수도 있겠다 상상하게 된다. 마트에 없는 식재료를 쉽게 들에서 산에서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제 소를 잡았다며 고기 덩이를 주는 이웃을 있을 것만 같다. 어제 거둔 가지라며 큰 봉지 하나 가득 주는 이웃이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도시는 외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법을 찾을 것인가, 마감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