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브리엘의오보에 Mar 18. 2020

무법지대

최근에는 해당 사항이 없을까, 아닐까?


오전 3시에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철야 중인가? 어제에 이어? 아니면 벌써 3일째 인가? 씻기는 했나? 밥은 먹고 있나? 가끔 걸어 다니며 굳은 머리와 몸을 풀어주고는 있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타트 업이든, 일이 바쁘게 돌아갈 때면 야근과 철야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된다.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시장이 어렵다고 한다. 영업은 하나라도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념이 없고, 영업이 일을 가져오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완료해야 한다. 바로 다음 일이 턱받이고 뒤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든 재택이든 철야 작업 공간은 어떤가? 지금은 실내 흡연이 없지만 사발면 냄새, 삼각 김밥, 편의점 샌드위치에 우유 곽, 쌓여가는 커피 컵은 있을 수 있다. 매번 잘 정리한다고는 해도, 이빨은 자주 닦는다고 해도 체향은 나기 마련.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1주일 내외의 재택근무가 실시되는 회사가 필자의 눈에도 띈다. 재택근무라 하여 철야가 편하지는 않다. 옆자리에 있어 고개만 돌려 논의하던 것도 이젠 음성, 문자, 혹은 화상으로 통화를 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 팀장의 일 소나기를 피할 수 있을까 싶지만, 원격으로 불쑥거린다. 


네무 요코 Nemu Yoko의 ‘오전 3시의 무법지대’는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전문대 디자인과를 나와 빠진고 가게의 입간판, POP, 광고지 등을 디자인 제작하여 납품하는 소기업이다. 실내 흡연이 만연해 머리엔 온통 담배 냄새가 배었다. 탕비실에는 샴푸와 린스가 놓여 있다. 다용도실 바닥에는 간이 매트리스와 빨지 않은 이불이 깔려 있다. 다행히도(?) 영업 담당자는 일 의뢰서를 다발로 던지고 간다. 마감은 거의 내일이나 2~3일 후. 하나의 일을 마치기 전에 신규 건이 들어오니 철야는 생활이 됐다. 

이 작품에서 필자가 주목한 점은, 회사원들의 평일 라이프 사이클이다. 철야, 야근의 일, 없는 시간을 쪼개 만나는 연애, 그리고 겨우 끼니를 챙기는 식사, 마지막으로 쪽잠. 일, 연애, 식사, 잠으로 회사원의 하루 일과가 구성된다. 작품에는 아이가 있는 부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싱글이거나 이혼을 앞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매일 철야에 애인 집에는 새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일을 반복하는 주인공. 남자 친구는 학교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후배와 바람이 난다. 우연히 이를 발견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외면하고는 다시 철야에 집중하는 주인공. 나중에 전 남자 친구에게 ‘상처 받았었다’고 소리소리 지르지만. 그런 주인공을 위로하는 옆 사무실(다른 회사) 남자. 알고 보니 별거를 앞둔 사람.


주인공은 짬을 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하더라도, Work-Life Balance(워라벨)를 어떻게 할지보다 바람피우는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이나 새로 만나는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둥의 연애 이야기를 주로 한다. 직장 동료들은 새로 들어온 주인공이 힘든 일과 실연으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지 전전긍긍이다. 위로라고 하는 일이 충격 폭로가 되기도 한다.


순정 장르의 만화이므로 사건 구성이 이럴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 우리들의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 아닌가? 몇 가지 추가한다면, 상사에 대한 뒤담화, 상황을 이해 못하는 고객사에 대한 성토, 적절한 지원을 하지 않고 일만 맡기는 회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같이 고생하는 전우끼리 어떡하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그나마 건강을 지킬 수 있을지,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의 정보나 체험 공유는 잘 없다. 직원 1인당 다른 일이 맡겨지니 지원 부서 외에는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대기업이든, 외국계 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타트 업이든 근무처와 무관하게 바쁜 회사원들의 생활은 작품 속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이미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일을 다시 보는 것이 무슨 재미일까? 그러나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철야를 하더라도 더 나은 진행과 결과를 얻기 위한 정보 공유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내 체험도 이야기하고 니 체험도 듣는 그런 정보 및 체험 공유.

○ 팀장에게 휘둘리기만 했는데, 내가 회사 돌아가는 것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지는 않았을까? 탕비실에서 커피 한 잔을 하거나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울 때 나와 가까운 회사 상황을 알려고 했다면 눈치껏 일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적어도 저녁은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았을까, 매일은 아니더라도 그 때보다는 자주.

○ 내 역량을 낮게 보는 사람에게 기분이 상했지만, 내 역량이라는 수준이 철야를 하지 않을 정도로 능숙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즉, 복수의 일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도록 30분 정도 검토 시간을 가졌어야 하지 않을까? 일찍 퇴근하는 날, 주말 저녁 등, 지나서 하는 말이긴 해도, 시간을 내려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연애 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한 ‘오전 3시의 무법지대’는 필자에게 이런 생각을 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을...’의 형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때가 완전 늦은 반성을 해본다. 더 나은 근무 환경의 회사를 찾으려 시간을 쪼개지 않고 술을 마셨다. 더 나은 일 처리 방법을 고안하려 시간을 쪼개지 않고 술을 마셨다. 다음 날 깨질 것 같은 머리, 무거운 간을 이고지고 다시 출근해 무법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지난 날.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져 뇌수막염으로 3주간 입원을 하고도 나는 다시 무법지대에서 허우적거렸다. 이제 생각해 보면, 3주간 멍하니 입원실 천장만 바라보고 불만만 키웠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음주나 다른 방법으로 힘듦을 잠시 잊는 것은 결코 도움 되지 않는 시간 사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구의 Set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