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여행

글을 아는 것

by 가브리엘의오보에

흑인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금기였던 때가 있었다.

노비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금기였던 때가 있었다.



흑인에게 글을 가르친 백인이 있었을 것이다.

노비에게 글을 가르친 양반이 있었을 것이다.



글을 안다는 것은 굳이 가서 말로 전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금기시 한 데도 이유가 있다. 침범이다.



글을 독점한 백인과 양반에게 어떤 이유가 있을까?

글로 써서 담벼락에 붙이면 모든 노비에게 지시할 수 있다.

글로 써서 한 일을 보고하면 굳이 노비가 일을 못하고 앞선 보고자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소통 도구로써 편리하므로 글이 생겨났고 글이 사용됐다.



문제는 글을 아는 이들이 백인과 양반과 같은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같은 지식을 쌓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접근 가능한 책에 제한이 있겠지만. 왕도 양반에게 금지한 책이 있듯이 말이다.

글을 안다고 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백인과 양반은 침범을 우려한 것이 아닐까?



알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알기 시작하면, 이해가 남다르다.

알기 시작하면, 불합리를 깨우치게 된다.

알기 시작하면, 스스로 서려고 한다. 통제가 기반인 신분제 사회에서 스스로 서는 사람이 많을수록 신분제는 힘을 잃는다. 피의 종류로 사회를 제어하는 틀이 깨진다. 백인의 피, 양반의 피.



합리로써 통제하고 제어한 경험이 없는 백인과 양반에게 이는 어려운 세상살이로 보였을까?

칼을 휘둘러도 '양반'이 휘두르면 제재다.

총을 쏴도 '백인'이 쏘면 자기 방위다.

칼과 총이 합리로써 사용되지 않았을 때, 이를 흑인과 노비가 알게 되면 양반과 백인은 자유를 침범 받는다 생각했을까?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지 100년이 안 됐다.

일부는 시행됐고 일부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상이라고 하지 않았나?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니 수정주의가 생겨났지만.

감당할 만큼 시행됐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공개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3개로 분할했다.

입법부의 산출물은 법이다.

사법부의 산출물을 판결이다.

행정부의 산출물은 시행이다.

하지만, 3권 분립은 책 속에 존재하는 이론이다. 지금은 의견에 가깝다. 모두 웃는 대상이 됐다.

글을 알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이해가 남다르며, 불합리를 깨우친 사람들이 실현한 3권 분립이다.

더구나, 하늘이 내린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위임이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이다.

전교 1등은 하지 않아도 연구자들이 발견한 세상을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다.

말, 숫자, 외국어, 역사, 윤리, 과학, 기술을 알 수 있다.

12년 동안 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까?

모든 시험 문제를 다 맞춘 사람이 아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다.



혹시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기득권의 자유를 침범하고 있을까?

교양 없이 권력만 손에 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을까?



내 주위에 없어서 모르겠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한다. 무의 극에 닿으면 문의 극에 닿은 것과 같고, 문의 극에 닿으면 무의 극에 닿은 것과 같다고 한다. 눈으로 보지 못해 잘 모르겠다.



백인과 양반이 글의 흑인과 백성 전파를 금기 시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상상한 미래가 자신들에게 가치가 없거나 자신들의 길을 막을 것이라 미래를 그린 것은 아닐까?



지능이 높고 이해가 빠른 사람은 집안과 환경을 가리지 않고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양반과 백인은 모든 사람이 글을 아는 세상에서 자신들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 미래를 그렸을까?

영리한 양반과 백인은 글을 아는 사람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활용 능력도, 활용할 생각도 못 한 사람은 겁만 낸 것일까?



우리는 창의적 삶을 위해 상상력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공포를 낳았다. 겁을 내고 무리한 행보를 보였을 때, 복수의 악순환은 시작된다. 내가 실례를 하고, 시례를 당한 이가 나에게 실례를 하고,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고 이에 대응을 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모두 함께 알고 모두 함께 논의하는 문화는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인가?

영웅이 나타나 활동할 동안은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영웅이 없으면 세상은 혼란 속에 빠질 것인가? 지금까지 영웅이 있었나? 존경받는 사람은 있다. 가장 나은 업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적과 맞보고 있는 국가라고 가르치고 군인은 전사가 아니다.

국민이 국가를 지키는 일을 국위선양의 경품으로 내놓는다.

국가 활동의 기반인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다.

전쟁이 없으니 평화인 줄 알고 권력 쟁투에 여념이 없다. 잘못했으니 내가 하겠다고 하고 잘못한다. 직업인 줄 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구분은 원래 없던 것 같다.

국민이 대표를 뽑고 권한을 위임하지만 이는 그저 과정 같다.

국민청원이란다. 국민 지시라 바꾸고,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면 바로 시행해야 국민의 손에 주권이 있는 것 아닌가?

모두 글을 아는 사람들이다. 해외에서 선진 지식을 얻었다고 이력서에 적혀 있다. 누구보다 시험문제를 많이 맞추었다고 이력서에 적혀있다.

그럼 합리가 세상을 뒤덮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글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의 내용을 공식 커리큘럼에 적혀있다.

커리큘럼에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교육하는 내용이 없다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단체생활에서 스스로 깨달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럼, 교육 내용이 같으니 학원을 다니고 학력 획득 시험만 보면 되지 않을까? 이는 또한 스스로 막혀 있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지원할 수 없는 대학이 있다고 한다. 문과와 이과는 속성과 특성이 달라 필요 지식과 정보가 다르다. 그런데 대학 입학 중심의 교육 체계에서 문과와 이과, 예체능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나?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그 길로 가려는 이들에게 길은 있나?



아카데미상도 스스로 알아서 타고, 세계 1위 피겨스케이팅도 자비로 준비한다. 자유이니 그런가? 단체는 많지만,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잘 되는 방향으로 서로 협력하지 않고, 선발과 선택과 실패와 성공으로 세상을 뒤덮어놓았다.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시장 경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영향력 또한 그 결과다. 그런데,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정부가 돕는다.

모두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만들고 시행하는 정책이다.

놀라운 일은 이런 세상이 된 원인을 만든 사람이 우리 모두라는 점이다. 마이크 앞에 선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 과반수 선택한 결과다.



혹시 우리는 부족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혈연, 학연, 지연,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살아남고 모르는 사람은 외계인이다.

공정한 인재 발탁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지도 오래됐다. 기준에 맞춰 사람을 뽑은 것도 오래됐다.



하지만 인간 세상이니 모든 것이 칼로 자른 듯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인간 세상이니, 유연성 있게 문제가 없도록 처리되고 있다.

누구의 세상에서 누구를 위한 유연성이 발휘되어 누구에게 문제가 없도록 처리되는 것일까? 모두 글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보디랭귀지가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말과 글이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말과 글이 없으면, 직접 행하지 않으면 전달되지도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말과 글로 대신하고 퉁 치는 일도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런 상황에는 그런 상황에서의 유연성이 발취되어 문제가 없도록 처리할 방법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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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글을아는것 #합리

Photo by Immo Weg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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