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기분이 들던 어느 날
하루가 길다. 올여름에도 더위와 두통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달이 지날수록 이 두 가지가 함께 겹쳐 오는 날도 잦아졌다. 상념이 길어졌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심연에 빠져있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 심연을 즐기고 있었던 터라 꽤나 많은 것들을 생각해내고, 기록해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끈한 두통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런지 영 쓸모없는 공상과 기우와도 같은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면 그런대로, 그 기분을 좋아했었다.
문득 고교시절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는지 꽤나 많은 종류의 물건들을 챙겨 다녔다. 물티슈, 비누, 드라이버, 테이프, 스템플러 등 그 나이 또래 보통의 존재와는 다른 아이덴티티를 스스로 만들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이 나로 인해 누군가가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그렇게 썩 이상스러운 고교시절을 보냈다.
'연애를 글로 배웠다'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세상을 나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낄낄거렸으나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누군가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더라.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글로 배워버린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내가 다짐한 나 스스로의 슬로건은 고교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자. 혹여 퇴사를 하더라도 나를 긍정적으로 회상하여 그리워할 수 있게 하는 존재가 되자'였다. 그래,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 취지는 참 좋았는데.
언제부터였더라? 어디에선가 이상하게 맞물려버린 나란 나사는 비틀려버린 나선처럼 그렇게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해 버렸다. 사회생활이든 인간관계든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 방향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어디에 그 부분을 적용하면 좋았을지, 나는 그걸 이제야 깨달아 버린 것 같다.
철저하게 이 세상은 혼자라는 말이 이제야 와 닿기 시작했는지 꾸역꾸역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도 복잡한 일이었던가, 나는 8월의 습한 밤공기를 마주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느끼던 심연의 색과 닮아있던 하늘은 쪽빛으로 새파랬다. 이 심연에서 벗어나는 데에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가라앉게 만들었다. 왜 사람은 이렇게 간절히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할 때,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나는 그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으나 결국 해답은 혼자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도대체 그 어떤 것을 바라 왔었나.
아직까지도 찾아낼 수 없는 답이 공기 중 습기에 달라붙어버린 듯, 눅진하게 주위를 둘러싸는 기분이다. 지난번에도 이런 기분이 들었을 때 주위의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그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고.
또 하루가 지나간다. 서로와 함께 살아간다는 말 중에서 함께라는 단어에 위화감이 든다. 우리는 그 무엇을 위한 함께였던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끝이 어딜 지도 모르는 심연에 천천히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