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투자의 정석-
숫자라는 상징 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해석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해석된 숫자를 분석가나 경제전문가가 또 해석을 합니다.
그들의 해석을 우리 일반인은 또 해석합니다.
이 과정을 내러티브로 관점에서 본다면 언급했듯이 기업 활동을 숫자라는 상징으로 이야기(a story)를 이야기(telling) 한 것이고, 그 해석된 이야기를 채택해서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이지요.
그러므로 나와 대중은 반드시 해석의 과정을 또 거치는데 여기서 투자 유무가 결정되겠지요.
나에게 맡겨진 해석을 새로운 관점 찾기(해체; De-construction)로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러티브에서는 해체주의주와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복잡 체계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해체적 관점을 끌어들입니다.
이 글에서 해체주의를 ‘새로운 관점 찾기’로 제가 명명한 이유는 단어가 풍기는 느낌이 부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보수적 관점이나 모더니즘 기반의 학문에서는 해체주의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해체주의가 발화된 동기는 문헌들을 연구하다 보니 참고하고 첨삭되고 또 참고 되면서 어느 순간 원문의 본뜻은 온데간데없고 참고 문헌만 파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문으로 돌아가 보자(un-due)는 운동이 일었습니다.
엉뚱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여러분이 2천 년 전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똑똑하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대에 소크라테스를 불러오는 이유는 뭘까요?
그분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겠지요.
지금 여기의 눈으로 그가 말한 부분을 다시 보기 하는 거죠.
우리가 그의 말을 잘 못 이해해서가 아니라 지금 뭔가를 하다가 잘 뚫리지 않을 때 고전이나 원전을 보고 새로운 관점을 찾아보는 거죠.
새로운 관점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우리 어렸을 “뒤집어라 엎어라! 성내면 안 붙이기”라고 하는 놀이를 했던 것처럼, 해석된 해석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제가 쓴 책 중에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익숙하게’라는 부제를 단 것이 있습니다.
즉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당연시하지 말자는 겁니다.
당연시한다는 것은 그것의 다른 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면을 보지 않는 ‘뇌’의 게으름이지요.
어떤 것의 이면,, 의외적인 사건, 예외적인 것들, 사소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뒤져보는 작업을 ‘뇌’에 지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러티브투자자가 가져야 할 해석학적 자세입니다.
내러티브는 새로운 관점을 찾는 것을 의도적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