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곤 해. 부모님의 신체적, 언어적 폭력, 형제간의 차별, 처절한 가난 같은 것들을. 이 상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있고 성인이 되어도 치유를 받지 못하기도 해. 이런 부당함에 대한 끝없는 피해의식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으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
이 부분이 안타까운 거야. 우리는 모두 부모님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 태어나 보니 지금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거지. 각자가 처한 가정의 경제 상황, 부모님의 양육 태도, 형제자매의 구성, 이건 우리가 정하지 못한 것들이야. 그리고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 이십 년 가까이는 이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으며 성장하게 되지.
자, 그리고 이제 스무살 성인이 되었어. 그러면 우린 부모님으로부터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해. 부모님과 우리는 다른 독립된 인격체야. 부모님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혹은 신념에 따라 살아가고 우린 그 부분을 바꾸기가 어려워. 이미 수십년 동안 거의 평생에 가깝게 굳어진 생각을, 그에 대한 내 마음을 토로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쉽게 바꿀 수가 있겠어.
그 부모님 또한 비슷하게 힘들고 부당한 환경에서 자라온 게 분명해. 올바른 양육관을 가지지 못한 채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우리를 길러냈을 테고.
당신의 괴로움과 힘듦을 이해해. 부모님은 가혹하게 우리를 대했고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부모상은 아니야. 어떻게 보면 다른 집의 부모님들은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정서적인 양육을 한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해.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해. 우린 다른 사람들이야.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과 비교되어서는 안돼. 우리는 제각기 다른 존재이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낼 뿐이잖아.
항상 현재에 살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길 바라. 우리 각자는 환경도 성향도 꿈도 재능도 모두 다르게 태어났어. 이제 우린 우리의 삶에 책임을 지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가야해. 부모님은 이미 우리가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길러낸 것으로 본분을 다한 거야. 무엇을 더 기대할 필요가 없어.
부모님들도 자녀를 낳아서 충분히 힘겹고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살아왔으니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비난을 멈추고, 그저 조용히 거리를 둔 상태에서 연민을 가지고 다른 개체로 바라보는 게 어떨까.
아, 혹시 당신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불행을 모르는게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어. 글쎼, 불행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지금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사람들과 나의 불행을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만 이야기하자면 나의 부모님은 늘 불화가 있었고 아버지와는 대화가 거의 없었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자유방임 스타일의 가정이었지. 봐, 그래도 잘 살고 있잖아? 다만 나는 부정을 빨리 털어내고 긍정의 측면만을 보는 타고난 성향이 있어.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해. 우리 모두는 사회에 내던져져서 안간힘을 쓰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삶이 녹록치 않다고 말할 거야. 이건 돈이 많고 적음과도 그다지 상관이 없어.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더 많이 가지고 유지하려고 타오르는 욕망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워지거든. 지금 수십억을 가지고 있어도 수백억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 동경하는 게 인간이니까.
음, 또 너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네. 어쨌든 우리가 부모님에게 받아야 하는 건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이며 앞으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는 말. 이것이 우리가 부모님에게서 받아야 할 유일한 유산인데 우리는 너무나 다른 교육에만 치중하고 있어. 물론 좋은 교육을 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 각자의 독특한 재능이 인정받고 사회에서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게 부모님의 역할인 것 같아. 나의 기대와 바람이 아니고 자녀의 성향과 의지와 꿈을 지지 해주면서.
이 편지를 쓴 목적은 당신이 오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당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유일하며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오늘도 마음껏 주어진 삶과 행복을 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