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2] 불신의 시대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by 사각사각

S는 몇 달 전 공부방을 그만두신 선생님을 만났다. 그동안 두어 번의 전화통화로 길고 긴 하소연만 하고 만나는 건 그 선생님의 계약해지 이후로 처음이었다. 회사에서도 잠깐 두번 마주친 정도여서 서로 얼굴을 못 알아볼 뻔했다.


"선생님, ㅇㅇ회사 그만두시고 얼굴이 정말 좋아지셨어요. 진짜 회사와 안 맞으셨나 봐요. 하하."


드문드문 농담을 섞어서 그간 발생했던 온갖 불미스러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회사에서 듣고 경험한 상식 밖의 말이나 행동에 관한 에피소드들이었다.


"그 일을 겪은 건 지천명의 나이에 세상을 더 배우라는 신의 뜻이었나 봐요." 쓴웃음을 보이며 K 선생님이 한탄하셨다.


"그러게요. 하늘의 천명을 알 나이에 세상 물정 몰라서 이상한 회사에서 고생하네요." S도 헛웃음을 웃고 나서 맞장구를 쳤다.


S는 회사에 큰 기대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아직 일 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정리를 한다는 게 망설여졌다. 적어도 일 년은 경험해보고 혹은 견뎌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정리하고 개인 공부방으로 전환하면 될 것이니 크게 후회될 일은 아니다. 이렇게 끓어오르는 원망을 잠재우며 애써 자기 위안을 했다.


K 선생님은 '좀비시대'라는 학습지 관련 소설을 내밀었다. 내용을 찾아보니 학습지 회사에 들어간 청춘남녀들이 무분별한 실적주의 문화에서 좌절하고 실망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야기였다.


'오죽이나 실망이 되셨으면 이런 현실과 비슷한 소설까지 찾아 읽으셨을까?'


두 시간 반 동안 회사와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모든 이야기가 오고 갔다. 요즘 학부모님들의 행태, 교육에 관한 깨달음, 학원 운영과 강사 경험 등등.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하하) 일평생 교육계에 몸담고 있으니 할 말은 차고 넘친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이 수업 시간에 조는 일이 많다고 학부모님에게 진지하게 상담을 했다가 바로 수업을 중지당했다지 뭐예요." K 쌤이 최근 들었다는 인상적인 일화를 꺼내 놓았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상담을 해도 부정적인 정보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님에게는 전달하지 않는 편이 낫죠. 저는 되도록 학부모님들과 대화 안 합니다. 괜히 솔직한 말을 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거든요. 학부모님들과는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 보더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 S는 본인의 경험을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래요. 괜히 학생의 학습 태도를 그대로 전달했다가 화만 돋우는 결과가 됐으니까요. 요즘에는 학부모들이 학교 선생님들도 아동학대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하잖아요."


"네, 교육청으로 민원이 올라가면 보통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연락이 가고 인사 등에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교사를 옹호해주는 일이 없어요. 별 잘못이 없어서 억울해도 적당히 사과하고 마무리해야죠.”


"요즘 학교를 보면 교사들도 좋은 시절은 다 갔어요."

"그렇죠. 뭐" 이런 현실적인 대화들이다.


"게다가 사교육을 하면서 수업료도 많이 받는데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고 했으니 어머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겠어요? 괜히 화를 돋운거죠." S는 농담조로 받아넣겼다.


"아, 하하. 선생님이 잘못 말한거네요." K선생님도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계속해 온 일이 가르치는 일이니 하는 거죠."


"네 아이는 일대일로 만나면 다 이해가 되고 괜찮아요. 아무튼, 사회적인 약자잖아요. 보통 어른들이 훨씬 더 상대하기 힘들어요 하하."


요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교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수긍이 되는 말들이다. 불신의 시대에 관한 일화들이 이어졌다.


"요즘에는 부부 사이도 믿지 못한다잖아요. 혹시 나 몰래 남편이 내 이름으로 사망 보험이라도 들어놨는지 확인해야 한대요. 살해당할까 봐 남편 옆에서 마음 놓고 자지도 못하고요." K 쌤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지 재미있는 말을 꺼냈다.


"큭큭. 그런 말이 있어요? 저도 점점 사람에 관한 믿음을 잃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 말을 쉽게 믿고 어떻게 보면 마냥 순진한 사람이었는데.“


‘한 침대에서 잠자는 남편을 믿지 못한다면 세상에 믿을 인간이 있을까?’ S는 문득 서글퍼졌다.


‘남편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이전 11화[회사 이야기 11] 전세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