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사람들과의 인연이 갑자기 끊어질 때가 있다. 갈 때 가더라도 왜 가는 지 설명은 하고 가야 하지 않냐? 황당한 순간. 진심을 다하여 하고 있는 일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게 될 때도 있다. 타인에게 상당히 억울하고 부당한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그 평가에 반박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어디에서 시원하게 소리라도 지르고 와야 할 답답한 상황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직접 통화하여 무엇이 문제였는 지 확인하고 싶으나 상대방이 또 답변을 거부한다. 미칠 노릇.
이미 나에 대한 평가는 제 삼자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데 무슨 경우인가? 나와 한번은 대화를 하고 전달해야 하는 게 아니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대로 평가한 후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제발 앞에서 이야기를 해 달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답변을 해주겠다. 그 후에 평가를 하거나 말거나 하고. 평생 보일 듯 말 듯 먼 수평선을 향해 외로운 외침을 해오고 있는 느낌이다. 왜 대체 사람들은 당사자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진실이라고 생각되더라도 - 특히 아직 나이가 어리다면- 한 번 의심을 해보아야 한다. ‘다우트’라는 영화를 보면 의심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평가한 어떤 사건이 실제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그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평가하였다면 이건 심각한 범죄이다.
이 시점에서 ‘올드 보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 ‘오대수’는 왜 외딴 방에 십 오년을 갇혀서 군만두만 먹어야 했는가? 말 한번 잘못해서이다. 그래서 결국 자기 혀를 자르는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가? 이건 상당한 비약이지만 타인을 평가하는 건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아, 인간관계는 죽을 때까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정답이 없는 인간관계.
사람은 다 가치관이 다르고 한 사건을 두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여기에서 입장이 다른 두 사람 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소통으로 이 간극을 최대한 좁혀 볼 수밖에 없다. 소통 자체를 하지 않으면 인간 관계에는 답이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더 주는 쪽이 있고 아무런 설명 없이 관계를 잘 끊어내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가진 쪽은 항상 땅을 치며 그 관계의 끝을 애석하게 바라보고 있게 된다. 질척거리는 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바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다만 어떠한 상황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
어느 때는 훌륭한 인간으로 다른 때는 또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으로. 그래서 타인에게 어떤 평가를 받던 자존감을 지키고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일뿐!
여기에서 우리는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의 선을 분명하게 두어야 한다. 공적인 관계에서 시작하여 점차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사적인 관계로 들어선다고 해도 거기에서 멈추는 게 좋다. 공적인 관계란 우리가 이해관계를 나누는 혹은 일을 하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면 사적인 일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는 관계이다.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감정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 어떤 일에든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좋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예를 들면 퇴근해서까지- 그 일로 마음을 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감정이 섞이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원만한 관계 또한 망치게 된다. 산에 들어가지 않아도 도를 저절로 닦게 되는 인간관계의 괴로움! 득도는 언제?
인간의 인연이란 매우 소중하지만 또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60억 지구인 중에 우리가 만났다는 건 대단한 확률이지만 인생의 한 부분에서 잠시 지속되는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관계가 가능한 아름답게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찌할 수 없다. 다만 무심한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
직장에서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욕을 하던 인간도 일 이년 지나면 그 사건의 전말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건 개인적으로 지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일부러라도 덮으려는 습성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가능한 안 좋은 일들은 내 건강과 안위를 생각해서 의식적으로라도 망각해주는 게 좋다.
삶은 또 계속되고 만남은 이어진다. 인간으로 태어나고 사회에서 살기로 결심했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새로운 인간을 만나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연인이라도 되어서 세상과 단절하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현재 도무지 화합할 수가 없고 지지고 볶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조용히 끊어내는 것이 좋다. 단절할 수가 없다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사람 같은 무심함을 배워야 한다. 오지랖이라던가 의협심 따위는 당장 버리고.
오늘도 열 받는 상황을 겪어내며 한 시간 정도 한을 풀어내고 생각해보니 이 시간조차 아깝다.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어디에서 마주쳐도 좋은 관계이길 바라지만 이미 틀어졌다면 그것이 또 우리 관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사실 만난 기간이 극히 짧으니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잘 살아 봐라 어디.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