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행복이란 뭔가요?
행복을 예전엔 정의하려고 해봤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정의할수록 불행해지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행복을 계속 정의하지 못할 것 같아요. 행복은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하루하루 더 나아지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재미나게 삶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해서요. 비록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제 행복에 꼭 필요한 것은 가족과 건강. 이 두 가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요.
개인적으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시 여겨요. 다양한 사람, 사고, 인생 등 다양함에서 저는 영감을 얻고 또 동기부여를 얻거든요. 가끔 다양함에서 오는 갈등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면 훨씬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는 걸 경험하게 되고 다양성을 더욱 중요시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제 삶에도 적용해서 제 삶을 흰 도화지로 표현한다면, 한 개의 색으로 진하게 칠하기보다 여러 가지 색을 칠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제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지, 제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색은 몇 가지인지 계속 찾아가고 싶어요.
'행복'은 즐겁고 걱정 없는 상태로 한정 짓기 쉽잖아요, 그런데 실은 걱정이 많고 불안해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커리어적인 면에서 봤을 때, 전 지금 너무 두렵고 불안한 시기예요.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과연 맞는 길을 가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너무 행복하기도 해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행복이란 건 이런 거야’라고 정해놓으면 거기에 갇혀버리는 것 같아요. 행복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요. 제일 큰 이유는 이상하게도 ‘인생의 불확실성' 때문이에요. 사실 20대 중반까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인생이 너무 두려웠어요. 살아가는데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답’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몰라 헤매는 느낌이었죠.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전문 경력이 쌓이고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나니 인생이 서서히 안정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안정이 된다고 느끼는 시기가 되니,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 대충 어떻게 살지 그려지는 거예요. ‘남편과 싱가포르 대기업에서 인사 관련 업무를 하며 아기 낳고 살겠지’ 뭐 이렇게요.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은 그렇게 무섭더니, 앞으로 큰 변화 없이 살 거라고 예상되는 삶은 또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죠. 물론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큰 틀은 이미 짜인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30이라는 나이가 그렇게 정착을 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생각되었어요.
이제는 앞으로 계속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지 다른 나라로 갈지, 업플라이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그 이후의 제 커리어는 어떻게 될지 등 또다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이죠. 하지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지금이 불안하지만 행복해요.
저에게 행복은 ‘지금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관련된 거라고 생각해서요, 제가 있는 그대로도 괜찮고, 좋고, 가진 것들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 순간순간 즐기면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만약 ‘지금’을 벗어나서 생각한다면, 행복할 수 없겠죠. 예를 들어, 내일을 생각하고, 어제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어요. 내일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일이 될 때까지 행복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과거에 대해서도 행복해할 수는 있겠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고, 그리고 이미 지나간 거니까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었지, 나 좋을 대로 하면 되었지가 아니라, 내가 즐거움으로써 남도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런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내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내가 내 인생을 얼마나 누리면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한테 끊임없이 리마인드를 해줄 필요가 있고요. 남들도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내가 이런 사람임으로써 같이 누릴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겠죠. 행복이라는 말도 아주 상투적인 것 같지만, 단순히 우리의 일반적인 자기만족이 아니라, 이 삶을 어떻게 풍족하게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 사회라는 이야기 많이 하는데,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게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투적인 것들은 상투적인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만큼 의미 있고, 남들이 공감해서 많이 쓰이다 보니까 상투적이 되는 건데. 남들이 a, b, c, d라고 말해서 그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만족하고 자신감을 갖고 살기에는 굉장히 어려워요. 남이 정해주는 기준이라는 건 끊임없이 바뀔 수가 있는 거거든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거고, 그러면서 어떤 만족을 찾고, 그럼으로써 남들에게 내가 뭘 해줄 수 있는가를 계속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또 모든 사람이 어려운 일이 있고, 주변에 더욱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또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도 어떻게 보면 강요잖아요? 그런 걸 바라지는 않고요. 대신 좋은 걸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살다가 죽잖아요. 자신에게 주어진 걸 해서, 최대한 열심히 좋은 걸 찾고, 더 찾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그런 과정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회 분위기가 1등만 추구하라고 하면서 그게 행복이라고 역설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실 굉장히 큰 문제죠.
다양성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그죠. 서로 존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옳고 그름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기준으로 접근해야 되는데. 달라도 괜찮다, 내지는 달라서 좋다고 하면, 좀 더 즐거운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행복은 큰 데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작은 순간들에 있어요.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거나, 돈을 많이 번다 거나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요, 미셸 씨도 혹시 히든 싱어를 보시나요? 오늘도 애들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같이 히든 싱어를 보면서 어떻게 산 ‘플라스틱 마이크’로 서로 노래 부르고 했는데 그런 순간들이 다 행복인 것 같아요. 또 저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인데, 저는 감사하게도 그게 일치하잖아요. 그렇게 하는 데에는 선천적인 것, 후천적인 것, 운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는 감사한 부분이라.
제가 이렇게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애들한테도 본보기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고 그래요.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딸내미와 아들을 볼 수 있고, 회사에 가면 또 친하고 좋은 동료들이랑 일할 수 있고.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회사 가는 일이 힘들지 않아요. 가면 또 서로 웃고 떠들면서 재밌게 일할 수 있잖아요. 저를 믿고 따라주는 회사 동료들이 얼마나 고마운데요. 저는 항상 행복해요. 사실 행복이 너무 복잡한 게 아니어서요. 저는 초콜릿 하나만 먹어도 기분이 좋고요. 여기 옆에서 따뜻한 데서 자고 있는 딸내미를 봐도 기분이 좋고요. 전 제가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절대로 큰 데 있지 않아요.
또 재밌었던 건요, 제가 세포라에 왔더니 너무 친구가 없어서요. 저와 같이 일했던 인턴들, 예전에 일하면서 너무 예뻐했던 디자이너들-한국애들-이 다 저희 팀에 와 있거든요? 한 10명 정도. 그런데 어느 날 불러 모으니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미국 애들도 많지만 팀이 70, 80명으로 커지면서 한국 사람들을 또 모아놨더니, 나중에 회사 가서 한국말로도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재밌고, 아이들이랑도 재밌고, 세포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복은 전혀 커다란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저희 아까 저녁으로 태국 음식을 먹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행복은 진짜 간단한 데 있어요. 아주 작은 데에.
제가 사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가정이 마음 속에 있었고, 그 가정에 딱 맞는 답을 찾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저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 간단한 가정은 위 분들의 답변을 통해 처참히 깨졌습니다. 아니, 처참히 깨지다는 좀 오버고, 깨달음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게 낫겠네요.
하버드 대학교는 75년에 거쳐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무려 75년에 걸쳐!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연구에 따르면 좋은 삶의 조건은 많은 사람들의 목적인 부도 명예도 아니었어요. 그 어떤 조건보다도 바로 ‘관계’ 덕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튼튼하고 깊은, 좋은 관계."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연결은 유익하되 고독은 해로우며, 관계의 양보다도 질이 중요하고, 심지어 좋은 애착 관계는 뇌도 보호해준다고 했습니다. 결국 좋은 관계가 좋은 삶을 만든다는 뜻이었지요.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서처럼 저는 자아실현이 행복의 궁극적인 실현을 위한 도구가 아닐까 인터뷰 여정을 지속해 왔었는데, 보영 님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이 행복 연구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보영 님도 말씀 속에서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 참 좋다고 하셨지만, 그보다 더 특별했던 건 보영 님으로부터 불어오는 다른 방향의 '행복'이었기 때문이에요. 보영 님은 보영 님이 받은 도움과 여러 인연에 감사하며 행복해하고 계셨고,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들과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찾고 계셨으니까요.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내가 믿고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일까요? 점점 혼밥, 혼술이 늘어나는 요즘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부터라도 그 방향을 뒤집자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는 방법이 있습니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전 세계에 카펫을 까는 것보다 푹신한 실내화를 신는 것이 쉽다'고 하셨는데요, 평안을 원한다면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고맙게도 남동생이 좋아하는 글귀를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조금의 의심도 없이 완전히 믿으면 그 결말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일생 최고의 인연을 만나거나 일생의 최대 교훈을 얻거나.'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찾기 위해 평생에 걸쳐 헤매는 것도 뜻깊지만, 건강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나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설령 나의 가족이 나에게 따뜻함을 주지 못했더라면, 나를 응원해줄 수 있는 안전망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며 성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점점 마음을 열기 어렵기도 하고, 마음을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때로 상처도 입겠지만, 우리의 주변을 우리가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로 채워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일이 어쩌면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찾는 것 그 이상으로도 중요한 일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