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앓던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생미셸 Jul 14. 2021

용꼬리와 닭대가리 사이

"용 꼬리가 되느냐 닭 대가리가 되느냐?"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어온 비유다.

골자는 공부 잘하는, 잘 나가는 학교에서 꼴찌를 할 것이냐, 아님, 속된 말로 '똥통'(참 오랜만에 써 보는 비속어다) 학교에서 일등을 할 것이냐.


딱 25년 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에도 이런 고민을 했더랬다.

당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서울의 모 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녔더랬다.

중학교 때 미처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한 채, 단 두어 달을 힘들게 보습학원에서 밤을 새 가며 벼락치기로 준비한 나였지만, 참으로 운 좋게 붙었던 그곳.

그렇다고 가고자 했던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남들 다 부러워하던 외고생이 되었다.


하지만,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이 딱히 높지 않은 나에게 외고는 잘 맞지 않는 명품 재킷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금수저'란 단어조차 없던 그 시절, 그 숱한 '금수저'들을 나는 그곳에서 무수히도 많이 만났다.


외고에 다녔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세상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누구누구의 딸, 아들들이 외모, 집안, 공부 뭐 한 군데도 빠지지 않는다는 '넘사벽'  현실만을 깨우쳤다.


결국, 자존감이 자존심을 이기지 못했던 17살의 나는 내로라할만한 자랑거리였던 외고생 이름표를 떼 버리고 일반 여자고등학교로 돌연 전학을 떠났다.


용 꼬리를 견디지 못해 닭 대가리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이랄까.


그때의 패배주의적이고도 무모했던 과감함이 결국엔 내가 원했던 대학교에 진학하는 데에 보탬이 되어 주었지만.


그 뒤로도 내 긴 인생에서 몇 번은 그토록 어렵게 성취했던 것들을 돌연 벗어던지고, 바닥부터 시작하는 선택종종 해왔다.


그래서 지금 남들과 다른 인생을 외국에서 살고 있는 것 인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바로 그 '용 꼬리'와 '닭 대가리' 사이에서 또다시 갈등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내려졌던 근신 처분을 4개월 만에 이겨 내고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았지만 (참고: 코로나 백수가 된다는 것), 이 거대한 조직에서 용 꼬리로 추락했다는 패배감과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HR에서는 "우리 조직에서는 PIP(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을 받은 사람들 중에 성공적으로 졸업하고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러 번 강조했지만. 실제 팀 내에도 누구 한명이 있는걸로 알고 있지만...


그런 말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난 7년간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상도 받고 연수도 갔다오고 승진도 했던 나인데,  그런 자부심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말 잘 듣는 부품이 되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니,  뭔가 내 자신과 색깔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길을 잃었다.


지난 14년 남짓한 내 커리어 기간 동안 난 참 열심히도 살았었기에.


이번의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너네가 어떻게" "내가 왜 이런 처분을?" "일만 열심히 한 나에게 니들이 왜 이래?" 하는 억울한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직 놀이'인데...


한국에서 5년간 일을 하고 유학길에 오른 뒤 다시 싱가포르에서 재취업을 한 2012년 이래로 난 조직에서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력서를 날려댔다.


'아직 이 취업 시장에서 건재하다'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 나만의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른다.한국이나 일본처럼 아직 평생직 개념이 강한 곳에서는 커리어를 망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노조 설립 자체가 허용이 안 되는 신자유주의의 총아와도 같은 나라이기에 해고와 이직이 흔하디 흔한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사는 직장인들은 항상 업데이트된 이력서를 지니고 다닌다. (요즘은 링크드인 업데이트)'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말레이시안 차이니즈인 남자친구조차 '직장은 또 구하면 되는건데 뭘 그리 끙끙 앓느냐'며 회사와 자아정체성을 동일시하는 날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하튼, 그렇게 시작된 이직 랠리 끝에 150군데에 이력서를 보내고, 10군데가 넘는 곳과 인터뷰를 하고 겨우 하나의 오퍼를 받아냈다.


코로나19 탓에 싱가포르 잡 마켓도 양질의 일자리 가뭄이 시작되면서 평소보다 더 오래 걸린 탓도 있었겠지만, 이번엔 전보다 꽤 오래 그리고 많이 이직을 알아본 것 같다. 오퍼를 받는 데까지 딱 8개월이 걸렸다.


근데 문제는 내가 새로 잡 오퍼를 받은 곳이 설립한 지 6년밖에 안 되는 스타트업 기업이라는 거다. 가는 분야와 범위가 넓어지고, 연봉을 현재와 비슷하게 맞춰 주는 것에 감사하며 과감하게 사표를 날리고 떠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매출이 수직상승 하며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외부 펀딩이 주요 수입원이기에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대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내가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던 경쟁사까지 사들이며, 덩치를 키우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시장 지배적인 기업이다. 그리고 파키스탄계 매니저와 궁합이 안 맞아 사단이 벌어질 것뿐, 회사 전체적으로 큰 불만은 없다. 한 마디로 지금 회사는 나에게 일말의 자신감, 어쩌면 허영심을 수혈해주는 명품 가방 같은 느낌이랄 까. 하지만 이 팀에서 나가야 한다는 건 명백한 결론이다. 팀을 옮기거나 이직을 하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고급 노예가 되어 용꼬리로 남을 것인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닭대가리로 살아갈 것인가.


혹자가 보면,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오퍼도 받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 놀 때, 남들 쉴 때, 남들 티브이 볼 때, 남들 놀러 다닐 때, 남들 잠잘 때,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노력해 가며 살아온 내 인생이기에, 어렵게 성취 용꼬리를 선뜻 잘라 버리기에는 2% 부족한 닭대가리 자리가 딱히 성에 차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렇게 아등바등 악바리처럼 살아온 인생이기에, 어느 어느 회사를 다닌다는 자부심은 그나마 열심히 살아왔다는 걸 증명해 주는 '인생 성적표'와도 같은 것이라 쉽게 포기가 안된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직장 타이틀과 내 자신의 자부심, 혹은 자의식, 혹은 자 아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혹의 나이. 나는 아직 남편도 없고 도 없고 돈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직장 네임밸류에 목을 매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이런 혼돈 속에서 지난 3일간 밤잠을 설쳤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고해성사하듯, 지식인 질문하듯, 취업 상담하듯 끄적거리며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겸허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용 꼬리 자리에서 인내할 것인가.

지난날, 공든 탑을 무모한 자신감으로 무너트리며 바닥부터 시작했던 닭대가리의 삶을 다시 선택할 것인가. 선뜻 그 선택이 쉽지 않은 건 나이 탓일까.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일말의 부심버릴 것인가

일말의 부심수혈받기 위해 자존심과 자존감을 양보할 것인가


오퍼 수락 기한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모레는 또 다른 작은 회사와 인터뷰가 잡혀 있다.


오늘도 잠 못 드는 고민의 밤이 이어질 것인가.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을 지혜로운 해답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백수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