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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Sep 12. 2021

2년 만의 귀국.나도 모르게 벼락 거지가 되어있었다

코로나로 한국에 못 온 지 어언 2년.

싱가포르 정부가 'with Crona'를 선언한 덕분에 거의 2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완연한 가을 날씨, 후텁지근한 공기 대신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어 "역시 내 나라가 최고"라는 기쁨에 겨운 것도 잠시.


귀국 일주일 만에 난 나 자신이 나도 모르는 새에 "벼락 거지"가 되어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벼락 거지.

2021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신조어다.

나처럼 코로나 이후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던 무주택자들이 현금을 쥐고 타이밍을 보는 사이. 정부의 정책 헛발질로 2배. 3배로 폭등한 한국 부동산 시장의 혼란 속에 '대기 매수자'에서 졸지에 '벼락 거지'로 전락한 사람들을 일컫는 단다.


난 이전 블로그 글에도 썼듯이 작년 코로나로 한창 떠들썩할 시기인 2019년에 한국에 집을 살 계획을 갖고 있었다. 물론 당시 청약 도전은 실패로 돌아왔지만...


작년에 알아본 수도권의 모 아파트 가격은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던 미분양분의 경우 8억 원 선이었다. 실시간 부동산 가격 앱으로 확인해 보니, 그 아파트 가격은 무려 50%가 급등한 12억에 거래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종잣돈을 마련한 것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대 초반 여자로서는 많은 금액이었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친구들과 고급 레스토랑에 가거나, 비싼 명품백을 사거나, 비싼 명품 의류를 구매하거나 등등을 급 자제하고, 각종 궁상스럽다는 생활을 해나갔었다.


그 당시 전세를 끼고 2억 5천만 원에 살 수 있었던 당시 시가 6억 원의 서울 모 아파트는 현재 그의 두배가 넘는 15억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코로나가 터진 뒤 싱가포르에서 재택 감옥살이를 하면서, 나는 각종 재테크 관련 유튜브 비디오와 블로그를 섭렵하면서 부동산 지식을 쌓아가고 있었고, 코로나 이후 당연히 집값이 조정될 것으로 생각하고 현금을 쥐고 눈팅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내가 한국에 못 오고 싱가포르에 갇혀 지내는 사이, 한국 부동산 시장이 이리도 폭등을 하였단 말인가.


이제 내가 모아둔 종잣돈으로는 전세를 끼고 갭 투자를 하더라도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대출을 안 하고 집을 안 산 나는 '벼락 거지'로 전락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로, 한국의 가을이고 자연이고 나발이고...


잠도 안 오고, 이대로 영영 고국에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내 40대가 초라하게 지나가는가.... 하는 불안감과 허탈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아시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 같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싱가포르는 일인당 GDP가 한국의 두배인 6만불 가량인데, 어떻게 서울 집값이 싱가포르를 방불케 하는 것인지...이론적으로 싱가포르의 절반 수준이 되어야 적당한 것 아닐까?


결국 한국의 적정 20평형대 아파트 가격은 5억선이 되어야 GDP 대비 맞는 것 아닐까?


이제는 위화감조차 들어 한국에 발을 못 붙이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재앙의 시초에는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전세' 제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유동성 폭탄 시기, 전세를 끼고 갭 투자를 하는 투기세력들은 집값의 10%만 가지고도 소위 말하는 '영끌'이라는 명목으로 대출을 지렛대 삼아 무리해서 집을 사고, 나중에 점점 전세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부채 부담을 줄이고, 올라간 전세는 다시 매매가를 올리는 데 사용이 된다.


정부가 고강도의 양도세, 보유세를 과세하자 이들 영글 갭 투 세력들은 세금 부담까지도 전세가에 전가, 다시 이것이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전세가 마저도 90%까지 대출이고 갭투의 상당부분이 대출인걸 감안하면 현재 폭등한 집값의 절반이상은 더블대출로 쌓아올린 거품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이루려면 이놈의 화근, 전세라는 돌연변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도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내가 구매한 싱가포르의 12평 남짓한 집의 가격은 무려 6억 원에 달한다. 나는 외국인이라 공공주택 구입은 하고 민간주택만 가능하다. 싱가폴 공공주택 HDB 가격은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20평형대의 경우 2억에서 5억원 선이다. 왠만하면 구입 가능한 금액이다. 인당 GDP 6만불국가임을 감안해도 적당한 것 같다. 그래서 싱가포리안들은 왠만하면 20대에서 30대에 결혼을 하면서 공공 아파트를 한채씩 소유할 수 있다.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돈없는 2030이 피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다. 다들 최소 공공주택 한채씩은 소유하고 있다 보니 패닉바잉. 영끌바잉 이런 건 굳이 필요없다.  물론 부자들은 콘도나 주택을 추가로 산다.  


나는 지난해, 지난 10년간 렌트비로 허비한 금액이 무려 1억 오천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지출을 금융자산(대출)으로 전환하기 위해 집을 샀다. 그리고 80%를 대출받았다. 한 달에 나가는 돈은 180만 원 정도. 하지만 이 돈은 모두 내 대출 갚기, 혹은 저축(?)으로 나가기에 집주인의 모기지를 갚아주며 렌트비로 같은 금액을 허공에 날리며 허비할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한국의 다른 점은 싱가포르에는 전세라는 게 없다. 그래서 다주택 투기는 힘든 구조다. 다주택 중과세도 물론 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끽 해야 공공주택 (HDB)에 콘도 한채 정도를 더 사서 이 중 한채를 렌트하고 세입자들이 모기지를 갚게 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정도다. 우리나라같은 영끌은 없고 거의 불가능하다. 다달이 나가는 80%가량의 모기지 원금+이자는 렌트를 해 충당한다. 집값의 최대 70-80%까지만 25년-30년 모기지가 가능하기 때문. 시장이 호황이면 원금+이자가 렌트비보다 적게 들지만, 요즘처럼 코로나로 외국인 엑스펫들 가뭄인 불황기에는 원금+이자가 렌트비보다 많아진다. 주택 공실률도 높아서 렌트도 잘 안 나간다. 그래서 최근엔 본인 돈으로 모기지를 갚는 집주인들이 늘었다. 한국같은 투기가 불가능 하기에 현재 집값은 물론 비싸지만, 시세차익도 거의 없다. 갭 투기가 없기에 대부분 HDB 한채만 소유하고 평생 모기지를 갚아가거나, 여윳돈으로 민간주택인 콘도나 주택을 추가 구입해서 세입자가 모기지를 렌트비로 갚아주는 구조다. 한국처럼 문어발식 다주택 영끌 갭투는 불가능하다. 신규 분양을 받는 경우,시세차익도  대략 1억 있는 정도가 전부다.

 

나는 렌트비로 집주인 모기지를 갚아주던 처지였기에 집을 사는 게 이득인 게 맞았다. 하지만 전세가 없기에 한국처럼 영 끌은 불가능하고 최소 집값의 20-30%는 내 순자산이어야 한다.


근데 도대체 한국은 왜 이지경인가. 전세가가 집값의 50%를 넘어 80% 90%에 육박하니 집값의 10%의 순자산만 가지고도 주택 구매가 가능하고, 이것마저 영끌 대출로 충당하면 심지어 5% 이하로도 집 구입이 가능한 구조다.


자기 자본비율 20% (싱가포르) 대 5%(한국).


한국이 왜 부동산 투기 국이 되었는지 알 것만 같다.

싱가포르는 인구의 1/5 정도가 외국인 엑스펫들이다. 즉 집을 렌트해 주는 세입자 풀이 전 인구의 20%는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한국 시장은 대부분 로컬 수요에 의해 충당 된다.


언제까지 이런 부동산 폭등과 호황이 이어질 것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순간 '벼락 거지'로 전락하고 불만과 위화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건가?


한국은 이미 전 인구가 부동산 투기세력이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그들은 본인들이 하는 것이 투기가 아닌 투자라 할 것이다.)


앞서 올린 글에 쓴 내용처럼, 싱가포르는 부동산 투기를 위한 콘도와 주택.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국가 주택(HDB)이 나뉘어 있다. 전자는 민간, 후자는 공공 부문이다. 그래서 전 국민의 대부분이 생애 첫 주택 구입이거나, 신혼부부일 때 공공주택을 한 채씩 분양받을 수 있는 구조다. 나같은 외국인이나 이미 콘도가 있는 부자들은 이런 공공 아파트를 구매할 수가 없다. 하여, 투기는 전자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한국도 제발 갭 투(갭 투자)의 지렛대인 전세제도를 폐지하고 투기가 가능한 민간 부문과 투기가 힘들고 규제로 똘똘 뭉쳐진 공공 부문을 나뉘어서 주택 정책을 펴는 건 어떨까.


그래야 나 같은 무주택자, 열심히 종잣돈 모아서 내 집 한 채 마련할 그날만을 꿈꾸는 서민들이 부동산 투기의 광풍에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오늘도 '벼락 거지' 생각에 밤잠을 설칠 예정이다.


나이 40에도 한국에 비하면 나름 고액 연봉을 받고, 종잣돈 모으려고 지난 13년간 아등바등 살아왔던 나에게 한국에 집 한 채 살 돈이 없다니. 현실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닐까.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텐데, 그들에게 내집마련은 진정 그림의 떡, 다음 생에나 이룰 수 있는 로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체 이게 정상인가?? 아시아 최대 부국 싱가폴보다 더한 집값, 대체 말이 되는가?


한국도 영 끌의 마지노선을 최소 20% 정도는 잡아야 하는 것 아닐까.


씁쓸하다.


이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처음엔 좋다가도 결국엔 뜨고 싶어 진다.


내가 한 몸 뉘어야 할 보금자리가 하루에도 수억씩 오르내리는 '부동산 주식'의 한 종목이 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인 것 같다. 부동산은 주식이 아니다. 부동산은 코인도 아니다.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의식주 갖고 장난치지 말자.


'언제쯤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에서 이제는

'언제쯤 벼락 거지를 면할 수 있을까?'로

내 고민의 물음표가 달라졌다.


이래서 참 싫다. 한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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