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Oct 29. 2023

독감을 예방하는 양파

매 년 가을이 되면 독감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들른다. 올 해는 조금 늦게 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대기인원이 60명이나 되었다. 독감주사는 꼭 맞아야만 하는 것일까. 독감주사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지 그전에는 독감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생김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이점이 있다.


나이는 먹었지만 초보 엄마였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무서웠다. 작은 생명을 몸에 밀착시켜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게 영 불안했다. 이런 건 나이가 아무리 든다 해도 무섭긴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병원에 가서 그 작은 팔뚝에 주사를 맞힌다는 건, 겁이 나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혼자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해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댈 언덕이 있다면 마음은 자연스레 그 언덕에 기대게 마련 아닌가.


그 당시 나의 기댈 언덕은 엄마였다. 엄마를 의지해 소아과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아 진료를 보면 나는 그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거나 동영상을 찍는다. 뭐 이런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 그때는 꽤나 진지했다. 아이의 모든 처음은 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덕분에 첫 예방접종의 귀한 동영상이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엄마는 아이의 첫 감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지만 결국 100일 밖에 안 된 아이에게 해 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이고 이 약을 다 먹이면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새근거리는 아이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데 늦은 오후 엄마가 아이를 보러 집에 오셨다. 


그때 아이의 상태는. 간간히 누워서 먹었던 분유를 게워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얘, 병원 데려가야겠다. 심상치가 않아."

"진짜?"


내 아이지만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결정한다는 것조차 스스로 의심스러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나였다. 그렇지만 아이를 셋 키워 본 엄마가 심상치 않다 하니 당장이라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오후 4시가 넘어 소아과에 도착해 진료를 보니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큰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 그때까지 큰 병원이란 곳은 가 본 적이 없었다. 진료의뢰서라는 걸 받아본 적은 생전처음이었다. 그것도 100일 된 아이의 진료의뢰서를.


그 길로 대형병원 소아과에 달려갔다. 가까스로 마지막 오후 6시 타임에 진료를 본 결과는 입원이었다. 100일 된 아이를 데리고 6인 병실에 입원을 했다. 머리에 뭔가를 맞은 것 같은 멍한 상태에서 아이의 자리가 정해지고 그 작은 발에 바늘이 꽂혔다. 순둥이로 태어나 울거나 소리를 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나.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아이가 5일 만에 퇴원을 하고 매년 봄이 되면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이가 자는 방에 양파를 놓아두라 했다. 양파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든 바이러스를 잡는다나. 믿거나 말거나. 밑져야 본전이었다. 


커다란 양파 두 개를 어디에 두어야 바이러스를 잘 잡을까. 방 안을 둘러보는데 장롱 위가 눈에 띄었다. 팔이 닿는 나지막한 장롱 위에 양파 두 개를 나란히 올렸다. 양파 냄새가 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려 누우면 양파가 보였다. 저러다 썩는 건 아닐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양파는 그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문득 양파를 보니 언제 싹을 틔웠는지 대파처럼 긴 대가 자라나 있었다. 물도 안 주는데 신기한 노릇이었다. 공기 중에서 무얼 먹었길래 저렇게 쑥쑥 자라는 것일까. 바이러스?


양파 덕분인지 그 해 겨울엔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석 달만에 내려 본 양파는 신기하게 무르지도 썩지도 않았다. 그저 대파 같은 줄기만이 삐죽 자라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해 경험으로 양파를 신봉하게 되었다. 양파가 공기 중의 바이러스를 다 먹어버렸다고 믿게 된 것이다.

심지어 썩지도 않았다니. 


거기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석 달 동안 바이러스를 잡아먹었던 그 양파를 깨끗이 씻어 먹어버렸다. 무슨 요리를 해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삐죽 자라난 줄기는 파요리까지 해 먹었다.  


요즘 같이 독감시즌이 다가오면 바이러스 양파를 먹어버렸던 나를 떠올리곤 한다. 그 양파가 아직도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난 그 양파를 왜 먹었을까. 웩.


작가의 이전글 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