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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11. 2023

내가 너에게

"이 제대로 닦았어? 그렇게 닦으면 이 썩는다!"


이 말을 하루라도 안 할 수는 없을까. 너에게 칫솔을 건네주고 이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싫다. 그런데 안 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실은 나도 언제부터 이를 닦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에게 사실을 고백하진 못했지만 음... 나 스스로 이를 닦기 시작한 건 아마도 5학년 때쯤? 그전에는 이를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혀를 닦기 시작한 게 5학년부터니까. 이걸 왜 정확하게 기억하냐면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이를 막 닦기 시작한 어느 날, 친구가 혀를 닦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니까.


"넌 혀도 닦아?"

나의 물음에 뭐 이런 황당한 소리냐는 듯한 그 친구의 눈빛을 기억한다. 말끔한 옷을 입고 양갈래로 단정하게 머리를 고 다니던 친구였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만 닦는 게 아니라 혀를 닦아야 하는 거구나. 그런데 왜 엄마는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그날부터 난 혀를 열심히 닦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 거 있지. 친한 친구가 공부를 잘하면 나도 따라서 잘하고 싶은 심리 같은 거. 나에겐 그게 혀 닦기였다는 이야기다.


엄마가 된 나는 아이가 제 칫솔을 들고 이를 닦기 시작한 날부터 혀클리너를 사주었고 이를 닦은 후엔 혀를 닦도록 강조하는 엄마가 되었다. 물론 치실도 잊지 않았다. 그런 교육을 한 지가 3년째인데도 너는 왜 아직 그 모양인지. 언제쯤 나는 이런 잔소리를 그만하게 될지.


2023.11.11



그렇게 깔끔을 떨던 엄마가 언젠가부터 씻지 않는다. 바닥돌돌 말린 먼지가 날아다닌 지 꽤 오래되었다. 집에만 오면 짜증이 난다. 엄마는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강조했었다. 이를 닦을 때도 매일 잔소리를 했고 머리를 감을 때도 잘 헹궈야 한다고 몇 번이나 체크를 했었으니까. 그런 엄마가 언젠가부터 잘 씻지 않는다. 씻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청소도 안 한다.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던 말. 청소기를 돌리고 난 후 맨질맨질한 바닥이 발바닥에 느껴지던 감각을 기억한다. 집이란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피곤한 몸이 되어 안겨도 언제나 말끔한 얼굴을 보여주는 해사로운 감각.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는지 모르겠다.  말갛던 집안 풍경은 언젠가부터 잿빛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엄마도 잿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인 걸까. 멀뚱히 창 밖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엄마의 생각을 알고 싶다. 미주알고주알 모든 걸 꺼내어 내 밥 위에 올려주던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그날의 엄마가 그립다.


"엄마, 오늘은 좀 씻어요. 이제 조금 냄새가 나려고 해요. 이는 닦았어요? 이 깨끗이 닦아야 해요. 알죠? 혀도 깨끗이 닦아야 한다는 거. 엄마가 나한테 계속했던 말이잖아요."


이 말을 하자 엄마가 희미한 웃음을 보인다. 엄마의 머릿속엔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했길래 웃는 것일까.


2060.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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