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생머리에 검은 반팔티를 입고 다소곳이 말하던 그녀를 유튜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안 감았다,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심지어 티셔츠에 구멍이 났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히죽 거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에게 아이 집공부에 대해 많은 걸 배우며 나도 모르게 열정적인(?)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이 교육은 엄마가 하기엔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고요. 감정이란 놈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니 이러다간 아이가 중학교도 가기 전에 의가 상할 지경입니다. 그런 파도를 신나게 타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번엔 그녀가 인스타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 새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가 이번엔 글쓰기 강의를 한다고 합니다. 글쓰기? 초등학교 이후로 해 본 적 없는 그 글쓰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뭐에 홀린 듯 결제를 하고 맙니다. 저는 왜 강의를 신청했을까요? 원래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 아니냐고요? 아니오. 사실 저는 저를 위해 돈을 잘 못 쓰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망했던 경험을 가진 저는 모을 줄만 알지 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던 제가 글쓰기 강의를 신청한 것입니다. 왜냐고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클릭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현실적인 이유를 대보라면 글쓰기 강의를 배워 아이를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미션을 잘 해내면 수강료 중 일부를 돌려준다니 '그래. 밑져야 본전이고 종국에 무언가는 남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들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몰라보게 화사하고 당당해진 그녀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 이번엔 글을 써서 작가가 돼 보랍니다. 네? 브런치 작가가 되는 프로젝트라고요? 저는 아이를 위해 글쓰기 강의를 들으러 온(굉장히 충동적이었지만) 밑져야 본전 마인드 그야말로 순도 100% 엄마입니다. 그런데 배는 이미 물 건너갔고요, 해야만 하는, 그래야 수강료 일부라도 돌려받는 미션이 시작된 것입니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그래서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운 '글쓰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글을 써 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진심으로 내 마음을 솔직한 글로 나타내 본 것은 4학년 때 글짓기가 마지막입니다. 그 이후로 글쓰기란 과제였고, 시험이었고,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갑자기 글을 쓰려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상하다고 밖에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시작은 했으니 해야 했습니다. 그런 곤욕스러운 시작이 글쓰기의 출발이었습니다. 너무나 곤욕스러워 달랑 두 편의 글을 써놓고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해 얼렁뚱땅 심사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만 덜컹 합격이 되고 맙니다.
아주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누가 쓰라고 하지 않았지만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릿속 어디에선가 말아놓은 실패가 풀리듯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내 안에 이렇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니, 스스로도 놀라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는 예상외로 어쩌면 저에게 잘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리는 없다고 여기면서도 글 쓰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즐겁다면 더군다나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직도 웃음만 나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휴지에 물이 스미듯 매일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이라는 걸 쓰다 보니 이런 나의 흔적들이 정갈하게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글을 쓴 지 이제 1년이 되어갑니다. 아직까지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뭐 거창한 루틴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저는 일 년 동안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처음과 같은 강렬한 중독의 상태는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니 괜스레 마음이 괴로운 날도 생깁니다. 마음의 일이란 제가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어쩌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에 그저 따라가야겠지요. 쓰지 않던 자가 쓰는 자가 되었고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가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제 삶은 전과 후로 나뉜 것 같습니다.
한동안 엄마의 삶에 충실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엄마인 나를 뛰어넘어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다른 도구가 아닌 글쓰기라는 도구로 나라는 사람을 낱낱이 파헤쳐보며 알아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 걸리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시작이 늦었기에 그 끝에 가 닿으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왜 이렇게 가슴 뛰게 하는 걸까요? 글쓰기 맛을 알아버린 저는 이제 예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겠지요?
그녀를 만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하게 내 마음에 파고들었던 그녀에게 문득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해 준 그녀는 내 인생의 '인플루언서'입니다. 덕분에 얼렁뚱땅 설레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