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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콜과 구공탄 Aug 05. 2023

불안정한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사람, 도전, 그리고 소통

"요즘은 살기가 괜찮나?”

"괜찮아요.“

“혹시 너무 어렵고 그러면 말해라”


이쯤 되니 아버지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탁 하이소.”

“뭐 하고 싶은 말?! 다 했는데”

“에이 아인데요. 힘들면 한국 들어오라고예?”

"머 딱 그렇다기 보담도....."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왔으나 그 말을 해주신 분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더 깊이 생각해볼 말 하나가 있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먹고 산다." 


 부모님 세대는 전후 세대였고, 새마을 운동의 주역이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꿋꿋이 IMF를 이겨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분들이었다. 그분들에게 '밤새 안녕히 주무셨어요?'나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는 지극히 한국적인 역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동반한 인사였으리라. 이런 그들에게 기술이 가진 의미는 천대받거나 홀대 당하는 사람들이 배우지 못 했던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종의 삶의 돌파구로 시작해 나아가서는 삶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승격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의미있는 '기술'의 소중함을 자식들과 후대에 설파하는 것은 일종의 숭고한 사명감과도 같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셨다. 내가 어려서는 영어는 커녕 한글 읽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그런 분이 10대부터 잔잔바리 일들을 시작으로 기계를 고치고, 어깨 너머로 익힌 연장과 도구들 다루는 법을 배워 국수 공장을 운영하고, 뒤이어 40년이 넘도록 방앗간 장사를 해오며 나름의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고스란히 보고 자란 내게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삶이란 말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너머의 뭔가가 늘 존재했었다. 


 그런 아버지는 형에게도, 내게도 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고, 어깨 펴고 살고, 사람 구실 할 수 있다고. 40대 중반에 들어서는 나는 이제 그런 아버지의 심장을 갖고, 또 다른 나만의 의미를 기술에 적용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하루하루 살면서 '삶에 필요한 것 중에 기술 아닌 것이 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인간의 본질이 불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철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하더라도 매 순간 나는 불안정한 상황과 어설프게 대처하는 내 모습을 견디며 살아 왔다. 이제까지 안 죽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불안정성을 견디고, 버티고, 뭔가의 대안을 어렵사리 찾았기 때문이리라. 이 또한 기술 아닐까? 


 그러니 해외에서 힘들게 생활하지 말고, 너무 힘들면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씀, 한국에 오면 고국인데 뭔 수가 있어도 있지 않겠냐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 되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였다. 속으로만. 내가 태어난 나라 한국이라서 삶의 기술이 갑자기 탁월해지고, 언어가 어렵고, 낯선 문화와 풍경으로 인해 삶의 기술이 빛바래진다면, 그건 그 사람의 기술이 아닐 것이다 라는게 나의 지론이다. 결국, 나의 생각은 한 가지 말을 만들어내며, 또 다른 방향을 향해 간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농구를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전 세계인들에게 농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Michael Jordan이 이런 말을 했다. 


 I’ve faile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That’s why I succeed.

 진부한 명언일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녹여낸 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부한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창의적인 것이 되는 순간이다. 3개의 over와 2개의 and가 있는 그의 말. 실패하고, 또 실패한 것이 자신이 성공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삶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살펴보니... fail과 fail 사이가 있었다. 즉, 실패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실패하기 전까지는 또 다른 시도가 있었고,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그 말을 풀어 이해한 그의 성공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것이었다. 


 시도와 도전 

 

 앞선 내 질문과 아버지의 말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조던의 말에서 끌어내보자면, 시도와 도전이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끊임없이 흔들고, 좌절하게 만들고, 포기하고 싶게 잡아끄는 상황들과 삶들. 그런 것들을 원망하고, 도대체 왜!!!!!!!를 외치는 십 수년의 시간들도 분명 내게 있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애시당초 안정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00억을 벌면 불안정한 내 상태가 안정적이 될까? 오매불망하던 직장에 입사하게 되면 나의 경력이 완전해질까? 그토록 좋아하던 여자가 나의 고백을 받아주면 인생이 마냥 블링블링해질까? 6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갈아넣은 끝에 얻은 영주권이 해외 외노자로 사는 나와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100억을 벌면, 1조에 대한 갈망이 소금물처럼 목구멍에 밀어닥칠지 모른다. 꿈의 직장이라는 철밥통에 발을 디딪는 순간, 매일이 지옥 같은 스트레스와 업무량이 나의 치사량으로 변할지 모른다. 그토록 좋아하던 여자와 연인이 되는 순간, 너무나도 다른 서로의 모습에 오히려 낯설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지 모른다. 시간과 몸을 갈아넣어 영주권을 획득했지만, 나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먼지와 페인트 투성이의 옷으로 갈아입고, 현장에서 다시 먼지에 휩싸이는 삶을 반복한다. 


 너무 부정적인가? 싶지만, 이것이 냉엄하고, 엄연한 현실이다. 지독스럽게 불안정해서 너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 지독스러움 반대편에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 영원한 안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불안정 속에서 가장 균형 있게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 결국은 이것이었다. 


 시도와 도전, 그리고 낯선 일에 나를 담그기 

 

 불안정은 균형이 안 잡힌 상태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자전거처럼. 일 중독자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고인 물을 마시는데 급급하지 말자는 뜻이다. 두렵지만 새로운 나만의 우물을 찾고, 선택하고, 시도해야 한다. 


 페인트를 시작하고, 2개월 중반까지는 폐인이 될 뻔 했다. 나의 이전 글들에 담긴 자괴감 철철 넘치는 심정들을 보라. 사수들은 늘 해봐야 는다며 팍팍 칠해보라고 하신다. 넵 이라는 힘찬 대답과는 대조적으로 다음 번 칠할 때는 또 다시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며 또 좌절한다. 넘치면 어떡하지? 테이프를 떼다가 샤시가 긁히면 어떡하지? 샌딩을 너무 세게 하는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내년에 이곳에서의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입학을 위해 현재 나는 IELTS라는 공인 영어 시험을 준비 중이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 찢어질 것 같은 발바닥을 주물러가며, 반복되는 롤러질로 돌만큼 딴딴해진 어깨와 등에 파스를 붙이고는 낮에 페인트를 들고 있던 손으로 밤에는 영작을 하고 있다. 뭐 하려고 이렇게까지 또 공부를 하나? 공부를 하기 위해 또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상황. 매일 저녁 정말 죽을 지경이다.


 이토록 불안정한 내 삶에서 안정이 아닌 균형이란 걸 잡아보고자 나는 도전이란 걸 해본다. 이번 주도 넘치게도 했다가, 너무 모자라게도 했다가를 반복하며 페인트를 칠했다. 사전을 찾아서 뜻을 아는데도 문장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들을 계속 읽어왔다. 최저시급으로 페인트를 칠한다고 내 삶이 뭐 그리 나아질까? 목표 점수를 받지 못 하면 입학이 취소가 되는데, 그런 영어 공부를 죽도록 매달린다고 뭐가 그리 달라질까?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이 목표였다면, 끊임없는 챗바퀴 속에서 불평과 자책으로 괴로워 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균형이 목표고, 최선이 전략이며, 성장이 방향성이기에 페인트를 어이없게 칠해도, 모의고사 점수가 바닥을 쳐도, 궁시렁 대면서 나는 다시 도전하고, 다시 시도한다. 그게 불안정한 내 삶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상큼한 방법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차가 최신이면 좋겠지만, 조건이 흙수저만 아니었다면 좋겠지만, 건강이 튼튼하면 좋겠지만... 다 소용없는 가정 아닐까 싶다. 나만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방향 설정은 나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수명만 단축되고, 매 순간이 스트레스일 뿐이다. 그러니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차가 10년 넘은 중고면 중고인대로, 흙수저라 나를 서포트 해줄 그 무엇도 가진 게 없더라도, 건강이 안 좋아 오늘 하루 괴로운 시간이 된다 할지라도, 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찾아 시도하고, 도전해볼 뿐이다. 그렇게 낯선 상황에 발을 디디며 몰랐던 나를 알아가게 됨다면, 좀 더 균형잡힌 인생이 되지 않을까? 라고 자문해본다. 그렇게 되는 현실로 답을 대신하게 되길 소망해본다. 


20230803 07:54 ~ 202308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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