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을 만들면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_김정운

by 강미

김정운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의 강렬한 '마스크'와 헤어스타일로 누구인지는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교수이고,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썼다는 것. 그런데 그가 안정적이던 교수직을 50살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그림 유학을 떠난 것도 모자라 한국에 돌아와서는 여수에 내려가서 살고 있다. 그것도 여수에서 한 시간이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섬에! 여수에 정착하면서 겪은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왜 버리고 떠나고, 외딴곳에 정착했는가?

'지난 오십 년'은 밀려 살았으니, '앞으로의 오십 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교수를 그만둔 지 벌써 팔 년째입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미술 전문대학을 마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수로 들어왔습니다.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걸까요? (247p)
'공간 충동'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248p)


이 책의 부제는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슈필라움이란 '놀이'와 '공간'이 합쳐는 말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한국어에는 슈필라움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다. 그 의미는 우리에게 그런 공간이 없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타인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12p)


+공간의 역할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203p)
은은하게 조명을 밝히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도 쭉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206p)



그런데, 여수의 버려진 창고라니???

사용가치 vs. 교환가치

저자는 자신의 '슈필라움'으로 여수의 외딴섬에 버려진 '미역 창고'를 샀다. 그것도 시세보다 두 배나 줬다. 게다가 그 섬은 여수에서 또 한 시간을 배 타고 들어가야 해서 공사비도 예상보다 두배나 들었다.


공사 전, 사방에서 말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를 진행한 이유는 '사용가치' 때문이다. 내가 직접 사는 공간, 시간에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환가치'로 생각하는데 익숙하다. 아파트만 봐도 차액을 남길 여지가 없다면 구매가 꺼려진다.

이 나이에도 내 '사용가치'가 판단기준이 되지 못하고, 추상적 '교환가치'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아주 잘못 산 거다. 추구하는 삶의 내용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60p)


좋은 삶?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111p)
'좋은 삶'이 어떤 것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좋은 것'은 항상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좋다'고 하는 거다. 그러나 '싫은 것',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다.(111p)


SBS 스페셜 <時리얼>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 중 시인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여러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다 '모호'한 것이었어요. 미래야말로 정말 모호하잖아요. 사랑?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그 모호한 존재를 가장 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게 말하는 거라고 시인들은 생각하는 겁니다."


좋은 것, 중요한 것, 소중한 것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모호하고 애매하다. 어떻게 정의하거나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저자는 나쁜 것은 정의하기 쉬우니 이를 제거하는 방법을 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취향이 분명해야 가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시선의 자유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TOP 10안에 매년 꼭 들어간다는 <나는 자연인이다>. 이 프로그램이 이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자유', '시선의 자유'다. 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자연인'과 같은 삶이 로망처럼 다가올 수 있다.

'관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볼 수 있는 자유'가 행복의 핵심이다. '시선'과 관련해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조망-피신'이론을 주장한다. '먼저 보고, 도망칠 수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생존 원칙이 인간의 모든 미학적 경험에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214p)
산 위에 올라가거나 한없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행복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조망-피신'이라는 원시시대의 본능 때문이다. (214p)

나는 여행을 가면 전망대를 꼭 들린다. 어느 지역이고 일단 전망대가 있으면 일정에 집어넣는다. 하루에 3개씩 갈 때도 있다. 전망대는 대중교통이나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힘겹게 발로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제일 높은 전망대뿐만 아니라 그보다 낮은 전망대도 찾아간다. 전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단순히 '올라가고 나면 기분이 좋아서'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조망-피신 이론이 숨겨져 있었나 보다!



불안과 나쁜 이야기

우리는 '나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왜냐면 원시시대에는 '나쁜 이야기'가 생존에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사방에 나쁜 이야기뿐이다.

'나쁜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불안한 인간이 너무나 많은 까닭이다.(140p)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144p)



시진핑식 표정, 인정투쟁

내 주위에는 자신의 '존귀와 위엄'을 지키느라 그 어떤 정서적 단서도 제시하지 않는 '시진핑식 표정'이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진 재산이 삶의 전부인 줄 아는 그 사장만이 아니다. 멀쩡한 이들도 권력만 쥐면 신기하게 표정이 바뀐다. 방송이나 학술 토론장에서 어쩌다 부딪치는 '나름 지식인'들도 죄다 '시진핑식 표정'이다. (165p)

너무나 공감한다. 특히 회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땅을 보고 걷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그중에 고개 뻣뻣하게 들고 나보다 직급이 낮거나 모르는 사람이면 절대 인사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그 표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다른 길로 간다.


서구사회에는 리스펙트 정신이 있다고 한다. 존경, 존중이라고 하면 어딘가 상하관계가 내포된 것만 같은 한국과는 달리, '수평적 상호작용'으로서 열린 소통의 규칙이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 '리스펙트'는 제도와 관습으로 구체화되었다. 홉스는 개개인들의 '생존 투쟁'으로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근대에 와서 헤겔은 공동체 안에서 상호 작용하는 개인의 '인정 투쟁'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보았고 근대 시민사회의 법과 규칙들이 이 같은 상호 인정의 토대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전례 없는 압축성장으로 이 상호 인정의 규칙을 건너뛰었다. 근대 시민사회의 근본 원칙의 부재가 '갑질', '무시', '모멸감'이라는 긴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매너와 교양으로 미처 자리잡지 못한 리스펙트의 규칙은 오늘날 아주 희한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어머 오빠!'라는 싸구려 감탄사에 사내들은 밤마다 지하에서 지갑을 열며 어처구니없는 '인정 투쟁'을 하게 된 것이다.(168p)


상하관계가 분명한 한국 사회에서는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만 리스펙트를 보낸다. 실제로 리스펙트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래야 하니까 한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리스펙트는 일상생활에서 상호 인정의 부재를 만든다. 아예 상호 리스펙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황장애

오늘날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들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도박이나 마약, 탈세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더라도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중의 관심의 사라지면 다시 나오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영원히 연예계에서 퇴출될 기세다. 공인의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경향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있겠지만 사소한 일에도 악플을 달거나 개인사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다.

'오늘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폭력적 '가학 놀이'의 희생양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고통 내러티브'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 폭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다 '나도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으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호소다. 해당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가 '꾀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내놓고 고백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장애는 모두가 숨기려고 했던 치명적 약점이었다.' (157p)

감정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 과잉도 있다. 미담도 수시로 올라온다. 감정의 스펙터클 사회다. 사람들은 강력한 정서적 자극을 찾아 우르르 몰려다닌다.


'프랑스혁명 이후, 절대왕정이 끝나고 시민사회가 급성장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는 미숙하고 유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감정의 온순화 과정'... (160p)

감정 과잉과 감정 폭력은 어떤 식으로든 '감정의 문명화 과정'이 일어난다고 한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저자가 자신의 슈필라움을 만들면서 왜 떠나야 했고, 어떤 삶을 바라고, 한국의 어떤 모습이 피로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우려에 어떤 뚝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했는지 잘 나와있는 책이다. 저자의 취향이 잘 드러나있는 책은 매력적이다. 말뿐인 취향보다 실행하는 취향이 진짜다. 책에 잔뜩 실린 사진과 그림은 그 취향의 근거를 더해준다. 이 책은 '공간 충동'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