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누가 아이의 방문을 뜯었나

아이의 '심심한 시간'을 지켜줘야 하는 이유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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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의하고 설계한 'Micro block design'은 본래 ADHD 아동을 위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모든 아이에게 이 시스템을 권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에 삶의 많은 부분을 빼앗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뇌의 자원을 스스로 쓰고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미디어를 '악'으로 규정하기보다, 어떻게 '선'으로 사용할지 논의해야 할 시대가 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환경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외부의 목적을 강요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이들의 뇌를 이토록 몰아세우고 있는가?




단말기로 전락한 아이들, 방문을 뜯는 부모들


한국에는 소위 '학군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정밀한 시스템을 가진 학원들이 밀집한 이곳의 경쟁적인 환경이 과연 청소년기도 시작하지 않은 아동에게 적합한지 우리는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결과에 대한 집착은 성적을 넘어 신체에도 반영된다. 성장판이 닫히기 전 아이의 키를 분석하는 병원이 넘쳐나고 성장 주사를 맞는 일도 허다하다. 이러한 결과 중심의 사고는 과정의 비정상성을 무시하게 만든다.


한 인터뷰 내용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소위 학군지의 엄마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경험담이었다. 그녀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를 감시하기 위해 아이의 방문을 아예 뜯어냈다고 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옆에 있던 다른 엄마의 반응이었다. 해당 학군지에 방문을 뜯어낸 집은 아마 넘쳐날 거라는 추측성 발언.


사춘기를 넘어 성인기를 앞둔 자녀의 방문을 뜯어내는 행위는 그 어떤 목표를 위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모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녀의 방문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감시하는 행위는, 서울대 입학이라는 대가로도 무시될 수 없는 존엄성에 대한 위협일 수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용납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가치인가?


아이의 방문을 뜯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감시 행위를 넘어 '내 삶에 대한 결정권'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는 성인기를 코앞에 둔 자녀의 존엄을 무시하고, 그저 목표를 수행하는 '단말기'나 '도구'로 전락시키는 극단적인 폭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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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적으로 볼 때, 자율성이 박탈된 채 지속되는 감시 하의 학습은 뇌를 '생존 모드'로 전환시킨다. 이때 과다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고등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시냅스 연결을 물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반면,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만 비대하게 만든다 (Teicher, 2016; McEwen, 2013). 결국, 부모의 과도한 통제는 아이의 뇌를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주체'가 아닌, '불안에 떨며 감시를 회피하는 기계'로 개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정상적인 과정의 대가가 명문대 입학이라 한들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있을까.




심심함이라는 선물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 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뇌된 아이들은 심지어 부모에게 감사하기도 한다.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랄 수 있을까?


한국의 현재 시스템은 비정상적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대학을 결정짓는 수능에 반영되지 않는다. 학교 공부와 별도로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하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다 현 고등학교 체제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에게 진로를 정하여 과목을 선택하도록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고민할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민하고 사고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강화하는 중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AI에게 빼앗기지 않을 고유한 인간의 독창성을 개발하려면 가장 완벽한, 그리고 최상의 결과를 요구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AI는 가장 완성도 있는, 그리고 계산된 결과를 뽑아내는 것에는 최상이다. 왜 질 게 뻔한 싸움을 대비시키는 교육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뇌가 성장하는 시기에 미디어를 절제시키고 스스로 놀이를 생각하여 심심한 시간을 채우는 노력은 이제 당연한 것이 아닌 '어렵게 쟁취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아이들의 사고하는 능력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재미를 느껴 독서하게 놔둬야 한다. 독서학원을 보내고 권장도서를 들이밀고 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하기보다 독서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자극을 관리하고, 심심하게 둬야 한다. 아이들의 심심한 시간을 부모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건 그 자체로 선물일 수 있다. 심심한 시간을 미디어로 게임으로 채우는 것은 위험하다.


뇌가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심심한' 상태일 때,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가 활성화된다. 이때 뇌는 흩어져 있던 정보들을 통합하고 자기 성찰을 시작한다. 즉, 심심함은 뇌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잉태하는 '공사 시간'인 셈이다.


이미 고자극에 노출된 아동이라면 다른 저자극 활동들은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뇌의 가소성을 이용해 다시 저자극에 반응하도록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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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ADHD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미디어를 제한하고, 동시에 적절히 활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심심한 시간'을 돌려주자고 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이의 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왜 아이들은 스마트폰 앞에서 그토록 무기력해지며 자기 통제권을 상실하는 걸까?


다음 편에서는 아이의 뇌를 장악하는 '도파민'의 정체와, 우리 뇌의 대장이자 보스인 '전두엽'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