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뜨거운 슬픔이 눈물까지 증발시킨 모양이었다. 앙상한 난이를 끌어안고 오열한 듯 몸을 떨면서도 희우는 울지 않았다. 앙다문 입술이 마르면서 희우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김진규 , 달을 먹다 中>
정점이던 여름이 살 푼 가라앉나 싶었다. 사방으로 열어둔 창문 만으로 뜨겁던 공기가 식었다. 어림도 없던 열기가 조금씩 꺾이나 보았다.
이번만 버티면 된다, 이것만 지나면 끝난다. 위로하듯 건네는 말들은 위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고달픈 시간 후에 찾아온 달콤한 시간은 짧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여름과 닮아 있었다. 여름은 나에게 매번 혼란과 우울을 안겨주었지만 위로하듯 설렘도 주었다. 대단한 설렘은 아니었지만 기대치가 낮은 내게는 충분한 것이었다. 직장인의 가면을 벗어놓고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 즐겁게 글을 썼다. 주말을 신나게 보내려고 주 5일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수없이 쏟아지던 여름 햇살은 손으로 아무리 가려도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얼굴을 찌푸리게 했지만 마음을 상하게 만들지 못했다. 말이 없는 계절에게 감정을 드러내 봤자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건 높아진 불쾌지수 밖에는 없었 으니까.
열람실 한쪽 벽은 전체가 창문이었고 마주 앉으면 커다란 풍경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림 속엔 내가 아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걸어 다녔다.
가을이 오면 낙엽을 담고 겨울이 오면 눈을 담으면 되겠지만 익숙한 공간에 추억과 걸음을 담으려면 방법이 무어냐고 너에게 물었다. "그냥 회상하는 거지,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 근사한 답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너무 단순했던 대답에 너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민망한 듯 피식 웃으며 나를 보던 너였다. 한풀 꺾인 햇살을 받으며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덤덤한 열정으로 살던 너를 내가 참 좋아했었지 하던 것. 마주 보고 웃었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